위대한 영화 - 전2권 세트 위대한 영화
로저 에버트 지음, 최보은.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1895년 프랑스의 한 극장에서 기차의 도착이라는 영화가 상영됐을 때,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기차를 보겠다고 몰려드는 인파들 속에서, 한편에서는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놀라기 이전에 이것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걸 간파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양면의 동전과도 같은 오랜 물음이기도 하다. 영화는 과연 예술인가 산업인가? 자동차 몇 백 만대를 파는 것과 맞먹는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는 한 편의 영화는 ‘영화’라는 산업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지만, 영화는 늘 자신의 본질이 예술이라는 걸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느 장르보다 대중과 가깝고 대중을 필요로 하는 영화는 예술로서도, 오락으로서도, 산업으로서도 서 있는 위치가 참으로 고달프면서도 그 어느 분야에서도 필수불가결한 독특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왜 영화를 보는가? 「위대한 영화」의 저자 로저 에버트는 ‘관람 주체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점으로만 보면 영화는 가장 강력한 예술’이며, ‘위대한 영화는 관객들을 더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위대한 영화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또한 실토한다.   

이 책을 읽는 건 그다지 녹록치 않다. 2권으로 나눠진 책의 양도 그렇거니와 각각 100편씩 모두 200편이라는 소개된 영화의 목록만으로도 본격적으로 책을 펼치기도 전에 상당히 위축이 되고 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영화들은 할리우드 최신 개봉작이 아니다. 오랜 무성영화부터 지금은 거의 들을 수도 볼 수조차 없는 이름의 감독들과 배우들이 거론되는 꽤나 두꺼운 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영화평론가의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 목록이 구성되고 그 영화를 소개하는 「위대한 영화」를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영화의 질이 아닌 마케팅 능력으로 관객을 모아’ 영화를 산업으로만 취급하는 현실과 재밌고 기교가 빼어난 영화만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라는 예술적 장르가 지닌 철학과 가치를 담아 전하고자 한, 영화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이 만들어낸 더 없이 소중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소개된 200편의 영화는 결코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들도 아니다. 어떤 영화는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로 시들어 가던 KKK단의 활성화를 불러 오기도 했고, 또 어떤 영화는 어린애들 얘기처럼 멍청하고 일요일 동시상영 영화처럼 깊이가 없다. 어쩌면 200편의 영화 모두 저마다 가진 흠결이 적지 않은 영화들인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영화이다.
[쉰들러리스트]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악에 저항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런 저항이 성공할 수도 있다는 최소한 한 가지 사례를 찾으려 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깊은 절망의 수렁 속에 빠져들고 말테니까. [라쇼몽]은 우리는 우리가 봤다고 믿는 것조차 의심해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이키루]에서 늙은 공무원의 유족과 친구들은 자신들이 그의 전락을 목격했다고 생각하지만, 목격한 것은 자아 발견과 구원의 과정이었다.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는 무신론자에 마르크스주의자이며 동성애자였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멜 깁슨이 그리스도의 고초를 인생에서 가장 압도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는 반면 그는 영화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가르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루이스 부뉴엘 감독은 우리 인간을 위선자들로 봤고, 그 자신도 그런 존재라고 인정했으며, 아마도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존재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그가 만든 영화들은 영화의 첫1세기에 가장 특색 있는 작품군 중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렌즈 선택이 영화의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는 감독들을 위한 교과서 역할을 한다. 히치콕은 테이블 밑에 있는 폭탄이 터지면 그건 ‘놀람’이고, 테이블 밑에 폭탄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언제 터질지 모른다면 그건 ‘서스펜스’라는 정의를 내렸다. 요즘의 슬래셔영화들은 놀람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창]은 영화 내내 서스펜스에 충실하게 투자하면서 우리의 기억에 서스펜스를 저장해놓는다. 그런 까닭에 최후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면 성적 전희와 맞먹는 스릴러가 되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신문만으로도 우리는 하루에 수십 편의 영화에 관한 글을 보지만, 당당히 책으로 묶인「위대한 영화」는 영화에 대한 글로서도 순수한 책읽기로서도 두 가지의 목적을 충족한다. 영화평론가로서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만만치 않은 글 솜씨와 나름의 철학을 지닌 저자는, 여기 200편의 영화를 통해 위대한 영화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함과 동시에 영화라는 예술적 장르가 전할 수 있는 혜안의 세계를 맛보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그의 제안은 아마도 성공적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기꺼이 그의 지극한 정성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각종 영화관련 잡지에서, 혹은 비디오가게에서「위대한 영화」에 거론된 영화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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