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 실력도 기술도 사람 됨됨이도, 기본을 지키는 손웅정의 삶의 철학
손웅정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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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정 감독의 유퀴즈 영상을 보고 이 분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읽어본 책. 본인의 축구선수 시절부터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은퇴 후 이야기, 이후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이자 축구 지도자로서 살아가는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축구를 사랑하는, 한때 축구선수였으며 지금은 월드스타 축구선수를 키워낸 한 아버지의 삶의 태도에 대한 책. 허세나 꾸밈 없이 ‘담박하여‘ 깊은 울림이 있었다.

소유가 아닌 본질을 생각할 것, 운칠기삼을 새기며 겸손할 것, 매일매일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것. 저자가 직접 삶으로 체득하고 경험한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말로 내뱉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것들을 직접 솔선수범해온 이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그중에서도 ‘비움‘이라는 키워드에 꽂혔다.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소유당한다는 것이다‘라는 말. 물건도, 돈도, 심지어 책도(!) 마찬가지다. 독서를 통해 삶을 배웠다는 저자이지만, 그는 좋은 책도 세 번 읽고 독서노트에 단권화하며 체화한 다음에 미련없이 처분해버린다고 한다. 너덜너덜한 책을 누구 빌려주기도 뭣하지만 책을 쌓아두면 잘난 체하는 것처럼 보일까 염려하여 그런 것이라고. 고개를 이리 돌려봐도 책, 저리 돌려봐도 책 뿐인 그야말로 책에 파묻혀 사는 나로서는 상당히 충격으로 다가온 구절이기도 했다. 저들끼리 무한증식하는 것이 분명한 책들을 어떻게 내 손으로 처분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안일한 마음으로 몇 년을 살았더니 책들이 생활공간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새 출발하기 좋은 새해. 비우는 삶, 살아보자. 안 읽을 것 같은 책들을 솎아내고, 재독하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비워내다보니 하루가 금방 갔다. 처음에는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었는데 깔끔하고 단촐해진 방바닥(책장 정리는 시작도 못했다)을 보니 후련했다. 뭘 그렇게 이고 지려고 했는지 몰라.

책 속에 나온 이야기 중 또 한 가지 마음에 새긴 것은 ‘번 돈을 그대로 다 쓴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건 행복과 성장‘이라는 말이다. 쾌락과 사치를 위해 소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투자할 줄 알아야한다는 말로 읽혔다. 이를테면 축구선수로서 경기장에서 행복하게 뛰고, 관중들과 함께 그 행복을 나누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니, 큰 돈을 들여 전문 마사지사를 모시는 일도 아깝지 않았다는 손흥민 선수의 독일 시절 일화처럼. 최근 읽은 <평균의 마음>에서 인용된 보드리야르의 소비론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결국 돈을 ‘써야’ 환대든 포만감이든 돌아온다는 말. 그러니 돈이 주는 즐거움은 벌 때가 아니라 ‘쓸 때‘에 있다는 말. 막연히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왜 더 많은 돈이 필요한가 하는 물음에는 딱히 할 말이 없는 나. 돈에 대한 관념과 사고방식을 점검할 때가 되었는지 유독 비슷한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명실상부 월드스타가 분명한 손흥민 선수를 두고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치는 저자의 말이 과한 겸손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러한 겸손과 조심스러움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돈이나 인기, 명예가 아닌 행복에 삶의 초점을 둘 수 있도록 계속해서 마음을 단련하기에 그토록 겸손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 좋아하는 일-축구-을 매일 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온전히 행복하니 성공같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일 뿐. 행복한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겸손하다.

‘행복에 초점을 맞추면 승패에 연연하는 마음을 초월할 수 있다. 오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해도 오늘 축구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줄 아는 선수. 오늘 경기가 잘 풀렸다면 그 행복감을 만끽하는 선수. 돈과 명예를 떠나 공을 찰 수 있음에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선수. 멀리 봤을 때 나는 이것이 답이라 생각한다. (201)‘

이 말을 확장시켜보면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우리는 지금 바로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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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작업 -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돌봄과 작업 1
정서경 외 지음 / 돌고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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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책과 함께 시작한 새해. 시작이 좋다.

아이를 돌보는 일과 창조적인 작업 사이에서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하며 나아가는 열한 명의 여성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돌봄과 작업>. 이 책은 어머니이자 창작자인 여성들의 성장담이다. 일 욕심 많은 밀레니얼 세대 여성으로서 선배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었다. 그 누구도 정답을 모르는 문제 앞에서는 다른 이의 경험담이 동앗줄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아이와 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사이에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가장 좋았던 건 다양한 양육 상황과 직업을 가진 이들의 구체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는 점이었다. 아이가 한 명 혹은 두 명인 경우, 입양한 경우, 프리랜서인 경우 등등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돌봄과 일을 병행하고 있는 여성들. 이들은 아이를 통해 ‘해일과도 같이 모든 것을 쓸어가버리는’ 사랑과, ‘속세의 어떤 사랑이나 권력과도 비교 불가능한 충만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시간과 에너지의 가난’을 감수하고 ‘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놓아야‘함을 고백한다. 돌봄과 작업이라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때로는 좌절감을 주지만 그 이상의 행복을 준다. 놀라웠던 건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가진 열 한명의 필자들이 말하는 것이 결국 같다는 것이었다. 자기 발견과 사랑. 아이를 향한, 내 일을 향한, 나 자신을 향한 사랑. 사랑은 지난한 길을 헤쳐나가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하고,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사랑을 통해 사랑을 깨달아가는 여정은 결국 자기 발견의 여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비단 육아와 일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삶의 균형을 잡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책 속에 언급된 인정과 타협이라는 키워드가 특히 그렇다. 이를테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상태를 인정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드러내는 것, 완벽하지 못할 수 있고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아는 것. 편집자 노트에서 언급된 ‘돌봄’이라는 단어의 확장성처럼 이 책은 워킹맘들의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함께 연대하며 우왕좌왕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며 헌신하는 일은 자신을 먼저 건강히 돌보는 시간이 없다면 견뎌내기 힘든 과정이다.’(1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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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 낮은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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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 ‘아, 좋다.‘ 소리가 절로 나왔던 책. 확신의 좋은 책.



진정한 강함은 쓰러지지 않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면 쓰러지는대로 다시 일어나면 일어나는대로 내맡길 수 있는 유연함에서 온다고 믿는다. 고통은 저항에서 오고, 행복은 받아들임에서 온다. 어쩔 수 없는 삶의 파고 속에 그저 몸을 맡기는 것 - 그것이야말로 바로 진짜 강한 것이 아닐지. 그런 의미에서 시사 IN 장일호 기자의 에세이 <슬픔의 방문>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년시절의 가난, 여성이기에 겪은 일들, 주간지 기자로서의 직업정신 등 저자가 삶에서 직접 겪어온 이야기가 단단한 문장으로 담겨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크고 작은 슬픔들을 통과해낸 사람의 이야기다.



가장 좋았던 글은 지금의 남편 분과 결혼 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주고받자고 했다는 이야기. 책을 읽는 지금이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그런가 유독 이 이야기에 혹했다. ‘한 사람의 독서 목록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책 선물‘은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내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선물로 보낼 책 목록 안에 일정 부분 담기게 되리라 여겼다.‘(31p) 아, 이거다. ‘몰랐던 책을 알게된 기쁨이 더 컸다‘는 문장에서는 역시 독서가들의 마음은 다 똑같구나 싶기도 했다. 책은 ‘슬픔이 쉴 자리‘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매개체이기도 하고, 꾸준한 기쁨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슬픔의 방문>은 읽는 사람의 이야기. ‘책 앞에 선 사람의 이야기‘(추천사 중에서).



연약한 부분조차 감추는 것 없이 솔직하면서도 담대하고, 현실에 발 디디고 선 이의 단단함까지 갖춘 글들. 아끼는 에세이들만 모아두는 칸에 살며시 꽂아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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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과 줄리엣 - 희곡집 에세이
한송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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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은 손꼽게 아끼는 연극 작품 중 하나다. 2018년 초연 이래로 재연, 삼연을 전부 관람한 연극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틀어 줄리엣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렛의 사랑이야기로 재해석한 이야기.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가짜고, 두 여성 줄리엣 몬테규와 줄리엣 캐플렛의 사랑이 진짜라면? 너무나 낭만적이고 동시대적이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 덕분에 수 년간 앵콜 공연을 거듭해온 이 연극을 드디어 희곡과 에세이로 만난다. 한송희 극작가 겸 배우의 <줄리엣과 줄리엣>.

원작 희곡과 더불어 작가가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을 탄생시키기까지의 일화가 자세하게 수록되어있어 그냥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다. 연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각색 과정에서 어떤 부분들을 고민했는지, 왜 마지막에 스님이 등장하는지, 공연을 거듭하며 왜 젠더 프리 배역이 생기게 되었는지 등등.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관극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그 때의 감흥을 되새기며, 이 책으로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마치 한 편의 연극을 같이 올리는 것처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공연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저자가 연극인으로서 가지는 마음가짐과 지금껏 지나온 길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어 무척 좋았다.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관객석에서 무대로 여과 없이 전달되는 에너지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공연을 거듭하며 ‘우리의 줄리엣들‘로부터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대목에서 괜히 뭉클했다.

사상 첫 퀴어 희곡집 에세이 <줄리엣과 줄리엣>
˝멈춰지지 않아, 지워지지 않아, 이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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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김소영 지음 / 책발전소X테라코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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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발전소 김소영 대표의 에세이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종이책 구독 서비스 ‘책발전소 북클럽‘에 동봉되었던,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편지들이 실려있다. 책발전소 북클럽은 구독자가 수 천명에 달한다고 알고 있어, 무척 신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서비스다. 간혹 좋아하는 책이 북클럽 에디션 한정판으로 표지를 갈아입고 출간될 때 책만 구해서 소장하는 편(<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북클럽 에디션 정말 예쁩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궁금했던 것은 편지였다. 어떤 내용이길래 그토록 좋은 후기가 많은건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다들 좋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 책을 읽으며 저자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단정하게 쓰여져있는데, 개인적인 경험들이 함께 소개되어 있어 무척 공감하며 읽었다. 소설을 읽으며 가슴 아픈 내용에 멈칫하면서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던 일화라던지, 어학연수 시절 느꼈던 감정이라던지 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특히 좋았다.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값진 것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이입하고, 에세이를 읽으며 저자의 견해에 공감하고, 인문서가 알려주는 새로운 깨달음에 기뻐하는 것.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을 함께 나누어받는 것, 이렇게 다정한 일이었구나. 한 달에 한 번 이 편지들을 만났을 북클럽 구독자분들은 이 다정함을 매달 받아보았겠구나 싶어 살짝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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