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36년 동안 죽어간 우리 동포 수는 얼마일까? 4백만명이 넘었다.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 수는 얼마였을까? 1백50여만 명이었다. 그들은, 조선 땅에 와 살았던 80여만 일본인의 충견 노릇을 하며 우리 동포 4백만명을 죽이는 데 앞장섰다.

요즘 이 나라 국민은 희한한 굿을 구경하고 있다. '과거 청산'을 놓고 양쪽으로 갈려 벌이는 굿이 그것이다. '역사 청산'이라고도 부르는 그 문제의 화두는 두 가지다. 하나는 친일 · 반민족 행위자 처리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보안법 존폐 문제이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가는 그 야릇한 굿을 보면서 과거사 청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지난 역사와 거리가 먼 젊은 세대들일수록 큰 깨달음을 얻고 있을 것이다. 왜 그때 '반민특위'가 참담하게 파괴되고 말았는가를! 5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식 세대들의 반대가 그리도 극성스러운데 정작 장본인들이 살아 있었던 그때 얼마나 사생결단 저항했을 것인가. 그들은 민족의 죄인으로 구석에 몰려 있었던 것이 아니고 미 군정에 의해 비호받으며 신생 국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교육계까지 완벽하게 장악한 권력 실세들이 되어 이었다. 완전무장 상태로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서 특위 위원들의 머리가 깨지고, 고막이 터지고, 빗장뼈가 부러지도록 폭행을 감행한 것은 종로경찰서와 중부경찰서 경찰들이었다. 그들 거의가 친일 경찰이었음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러고 나서 이 나라에서는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면 취직이 되지 않았고, 지난 날 독립투사들을 잡아다가 고문했던 자가 대한민국 형사가 되어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똑같은 지하실에서 고문을 해댔고, 모든 친일 · 반민족 분자들은 순식간에 친미파와 반공주의자로 둔갑해 권력의 특급 열차를 타고 승승장구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의 나라였다. 그러니 사회에 양심과 질서가 설 리 없었으며, 불의와 부정이 횡행하는 속에서 온 세상이 부패하고 타락하는 것은 필연이었으며, 그 결과 나라의 위신도 체통도 서지 않았고, 끝내는 미래마저도 낙관할 수 없게 된 것이 지난 56년의 잘못된 역사였다.

그래서 늦게나마 역사 청산을 하자는 것이다. 그 청소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민족의 존엄성도 국가의 정체성도 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는 또 수치와 염치를 외면하고 요령과 술수로 더럽혀지는 지옥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연하고도 신성하기까지 한 일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세력들이 있다. 거기에는 어떤 정당도 있고, 유명하옵신 지식인들도 있으며, 친일파 자손들도 있다. 그들은 입을 모은다.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일이다. 괜히 국론 분열과 사회 갈등을 일으킬 뿐이다. 먹고 살려고 한 짓인데 그게 무슨 죄가 되느냐.

다시 되짚어 따져보자. 일제 36년 동안 죽어간 우리 동포 수는 얼마일까? 4백만명이 넘었다. 친일파 · 민족반역자의 수는 얼마였을까? 1백50여만 명이었다. 그들은, 조선 땅에 와 살았던 80여만 일본인들의 충견 노릇을 하며 우리 동포 4백만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그리고 2천7백만 동포를 짓밟으며 혼자 잘 먹고 잘살고자 했다.

역사 청산은 잘못한 그들을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처벌할 시기를 놓쳤으니 이제라도 국각의 이름으로 그 잘못이라도 정확하게 기록해 두자는 것이다. 그것도 1백50여만명 전부가 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정했다. 그 수가 3만여 명에 불과하다.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관대하다. 이만한 일도 해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국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셈이다.

조사 대상이 될 3만명의 자식들은 괴롭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일을 앞두고 한 가지 사회적 동의와 약속을 해야할 일이 있다. 부모의 잘못을 놓고 그 자식들에게 연좌제적 시선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 시대를 살아오면서 국가보안법 못지 않은 악법이 연좌제라는 것을 체험했다. 어디까지나 아비의 죄는 아비의 죄일 뿐 그 죄가 자식에게 전해지는 유전인자는 아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은 부모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수는 있지만 사회를 향해 책임져야할 의무도 없고, 대신 사죄해야 할 권한도 없다. 그런데, 자식들이 역사 청산을 반대하고 나선다면 그것은 새로워지려는 사회에 대한 배신이며, 새로운 민족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자식들은 괴로움을 참아내며 겸허한 침묵으로 역사의 흐름을 따라 가면 된다. 그 동참이 우리의 미래를 여는 빛이 될 것이다.

 

조정래 (작가,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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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4-12-19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제대로 된 청산을 못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에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져요. 이번엔 가능성이 낮지만 흐지부지 되지 말고 국보법 문제도 해결됐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꼬마요정 2004-12-19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 갈게요~ 정말 힘이 빠지네요... 그쵸?

하얀마녀 2004-12-19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전 솔직히 몽땅 다 처벌해야 된다고 봅니다. 재산몰수에 부관참시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urblue 2004-12-19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하얀마녀님 생각에 절대 찬성입니다.

꼬마요정님,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