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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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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일본소설이다. 알라딘에서 신간평가단으로 선정되고 처음으로 받은 책이라서 그런지 참 열심히 읽었다. 일본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데 오랜만에 정독을 한 책이다. 지난번 추천페이퍼에 내가 올려서 냈던 책이기도 하고. 무튼 할일이 많은 요즘이라 밤에는 무조건 책만 읽겠다는 생각으로 자기전에 읽었는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끝내용이 궁금해져서 잠드는 시간까지 늦춰가면 읽었다. 불륜이라는 소재가 나오고 너무 집안에 무심하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만 같은 남자 주인공 와타나베가 나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불륜이라는 소재가 주요 소재가 아니기에 어느정도 눈감고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와타나베와 아키하는 회사 동료이다. 와타나베가 다니는 회사에 아키하가 인턴사원으로 입사를 하면서 둘의 인연이 맺어졌으며, 야구연습장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둘은 불륜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는 동안 아키하의 집에서 15년 전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와타나베가 알게 되고, 그 살인사건의 유일한 범인이 자신의 불륜녀 아키하이다. 그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범인이 밝혀지고, 그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불륜을 저지르는 놈만큼 멍청이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한다면 인생,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냐고. 일시적인 욕망에 휩쓸려 한눈을 팔다가 일껏 이룩해 놓은 가정을 파괴하다니, 그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대사를 나 자신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다만,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덧붙여서.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거야'. " 
                                                                                                 -p.7~8 와타나베의 독백-



남자주인공 와타나베는 불륜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던 불륜에 누구보다 깊게 빠졌으며 그래서 가정을 포기하고 아키하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꿈꾸기도 한다. 자신의 상황은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라고 생각하면서. 이래서 남이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을 하는거라고 생각했다. 불륜이 이렇게나 형편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와타나베는 왜 이키하와 그런 관계를 맺게 된 것일까. 남자들은 여자가 조금만 틈을 주면 이렇게 쉽게 넘어가서 아내를 배신하게 되는 것인지. 아키하와 함께 하면서 자신도 아직 열정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아내하고의 관계는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이 없던 관계였다고 말하는 와타나베는 나쁜 남자다. 그렇지만 이미 아키하와의 관계에 깊게 빠져있는 그는 나쁜 관계인것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바로 이어지는 와타나베의 독백에서 그의 상황을 바로 짐작할 수 있다.


" 이것은 지옥이다. 감미로운 지옥. 여기서 도망치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속의 악마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 
                                                                                                   -p.88 와타나베의 독백-


"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분명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편리하다. 생각해 보면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할 때가 많다. 그것은 진심 어린 사과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녀가 그 말에 그토록 예민한 이유는 무엇일까."
                                                                                                   -P.53 와타나베의 독백-



아키하의 말처럼 죄송합니다는 편리한 말이다.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대개 상대편도 기분이 풀려 어느 정도의 실수는 용서해 주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정말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해본 적이 있는지 생각하면 글쎄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쩌면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미안이라는 말에 우리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노출되어 있고, 진심인지 아닌지에는 크게 개의치 않아 한다. 나도 아무렇지 않게 그냥 의례 내뱉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이지 진심으로 그 말을 할 때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 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아키하의 말에 많은 공감이 갔다.


"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솔직하게 사과할 수 있다면, 나, 이렇게 괴롭지도 않을 거야. " 
                                                                                                         -p.36 아키하의 말-



사실 내가 아키하를 봤을 때는 특별히 큰 매력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어떤 점이 가정을 저버릴 정도로 와타나베에게 큰 존재로 다가왔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관계가 점점 깊어지고 와타나베는 아내보다 딸보다 아키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아키하가 그정도의 매력을 가진 여자로 그려지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냥 아내와 딸은 그자리에 있고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키하는 그렇지 않고 조마조마하며 챙겨줘야 하고, 당장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빠져든 것은 아닐까 그런 추측을 해본다.

무엇보다 아키하가 살인사건의 유일한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결과적으로 아키하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포기해야 하는지 그녀가 살인범이라면 자신을 어째야 하는지를 혼란스럽게 생각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은 완벽하게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았을 때, 마지막에 아키하가 먼저 자신을 포기해주고 곁을 떠나면서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을때, 와타나베는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키하와의 미래를 꿈꾸기는 했지만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는게 끝까지 쉽지 않았겠지하는 생각을 해보면 어쩌면 누구보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와타나베일 것이라 생각한다.


" 자신의 장점을 상대방에게 최대한 드러내는 것이 연애라면, 결점을 있는 대로 드러내는 것이 결혼이다. 더는 상대를 잃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연애할 때처럼 상대의 눈길을 끌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결혼을 동경하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도 그랬다. 상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게 너무 힘든 나머지, 편안해지고 싶어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편안함을 얻는 대가로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
                                                                                                - p.192 와타나베의 독백-


아직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참 슬픈 말처럼 다가오는 구절이었다. 물론 공감을 하고 그렇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결혼하면서 많은 것을 잃게 된다고만 생각하는 와타나베가 참 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많은 것을 잃었다고만 생각하는지. 얻은 것이 편안함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나쁜 사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포스트 잇을 붙이고 넘어갔다. 아내 유미코는 정말 열심히 내조를 하고 딸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소설이 와나타베의 1인칭 시점이기 때문에 유미코의 속마을을 드려다 볼수는 없었지만 난 유미코가 어느정도 남편의 외도를 눈치챘지만 가정을 지키고 딸에게 화목한 가정을 계속해서 만들어주고 싶어서 눈감고 넘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와타나베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으며, 그런 전과는 달라진 수상한 남편의 행동을 알아채지 못하는 둔한 아내는 분명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는 대목은 생각보다 극적이지 않았다. 뭔가 대단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면서 봤는데 혼조의 죽음은 자살이었고, 그녀를 자살에 이르게 한 이들은 아버지와 묘코 이모. 이들이 원래 불륜의 관계였고, 이 관계를 감추기 위해 혼조씨를 끌여들여 그녀가 자살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사실 자살일 것 같다는 생각을 앞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짐작하긴 했었다. 아버지와 묘코 이모가 불륜의 관계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생각보다 극적인 전개라든지, 어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토리들이 있지는 않은 책이었다. 불륜이라는 소재도 그걸 받아드릴 정도의 어떤 당위성이 존재하지 않았고, 혼조씨의 자살 또한 어느정도 눈치를 챌 수 있을 정도였으며, 다만 아버지와 묘코 이모가 불륜관계였다는 사실만이 새로운 사건이었다. 그들이 각자의 길을 가겠다는 것도 어느정도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불륜이라는 것이 원래 잠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그것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은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뒷내용을 궁금해하며 읽었던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새벽 거리의 야구연습장에서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아키하의 집 새벽 거리에거 그렇게 끝을 맺으며 인연이 다했다. 아키하는 그녀의 집으로, 와타나베는 아내와 딸이 있는 그의 가정으로 각자의 길을 떠나면서 말이다. 절대 서로를 잡지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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