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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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목은 내용보다도 작가의 이름보다도 훨씬 먼저 들어봤을 것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목에 호감이 생기지 않았을리도 없었을텐데 나는 왜 이 소설을 읽을 생각을 그동안 하지 못했을까? 2002년에 출간된 소설이니 15년만에야 나는 처음으로 이 책을 펼쳐보았다. 그 사이 나는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담긴 소설을 쓰는 소설가 K의 팬이 되었고, 동화인 듯 소설인 듯 엉뚱함을 자아내는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풍에 반색하며 즐겨읽었더랬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보니 그 이야기들의 시작은 마르셀 에메가 아니었을까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그 전에도 또 누군가가 있었겠지만 그때가 되면 뭔가 또 배신감과 허탈함이 밀려올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마르셀 에메와의 만남에 흥분되어 있듯이 그에게도 그럴테니 그다지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이 속쓰릴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맘에 들지 않는 것은 표지를 비롯한 삽화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역자 후기도 따뜻하고 섬세했다. 역자 후기에 밝혔듯 마르셀 에메와 소설 속 인물 중 하나인 장 폴(외젠 폴)이 벗이듯 역자와 삽화가도 벗이라는 관계의 매칭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그림이 너무 어둡다. 내 생각엔 커트 보네거트나 호어스트 에버스의 표지를 그리 듯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다.

 

다작을 한 작가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그의 책이 지금은 이 한 권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 책의 첫 단편인 표제작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를 읽고 난 다음 날 아이들에게 지난 주말에 읽은 책을 소개하며 이 책의 제목은 알리지 않고 내용만 알려줬다. 물론 뒤티유욀(가루가루)가 젊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생략한 채. 그런데 12살 아이들이 이 이야기에 모두 몰입하는 것 아닌가? 실제로 이 책에 실린 <칠십 리 장화>는 다른 제목으로 동화로 번역된 것을 보니 그의 소설의 독자를 한정짓는 것은 무의미한 일 같다. 이야기가 모두 기발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순수하면서도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생존 카드>라는 작품이 가장 좋았고 밑줄 그은 문장도 가장 많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앞서 말한 소설가 K의 단편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도 이 소설에서 어떤 자극을 받지 않았을까? 다른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세번째로 수록된 단편소설 <속담>을 읽다간 나도 모르게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권위가 한없이 추락하는 장면이 나도 모르게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마흔 줄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뭔가 부끄러움이 더 강하게 밀려와야 할 것 같은데 반대의 감정이 먼저 느껴진 게 뭔가 다행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아이가 아버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로 한 건 잘 한 일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만 무척 성숙한 일인 건 분명하다. 어른이 아닌 아이의 행동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도 셋이나 된다는 몽마르트의 작가 마르셀 에메. 그의 작품이 다시 번역이 되어 많이 나오면 좋겠다. 역자 후기에서 밝힌 또다른 열정의 번역가도 함께 분발해서 말이다. 당분간은 중고책방을 서성여야 할까? 이러다 또 잊고 15년쯤 후에나 만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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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7-03-26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작가정신에서 나온 에메의 4권짜리 세트를 가지고 있는데 절판이 되었나보군. . 덕분에 에메의 책들 다시 읽어봐야겠다. ^^

그렇게혜윰 2017-03-26 09:23   좋아요 0 | URL
귀한 책을 갖고 있구만요~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