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2 - 진수성찬을 차려라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94년인가 95년인가에 난생 처음으로 중국에 갔다.  천진(天津)에 있던 바이어에게서 클레임이 제기되었고 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공장의 기술자를 대동하고 출장을 간 것이다. 이왕 가는 것 갖은 핑계를 대어(없는 거래처 한 두어 군데 만들었다.) 북경에서 이틀을 머무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천진에서는 클레임 협상만하고 잽싸게 북경으로 갔다.  북경에서는 딱히 비지니스가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김영삼이 북경 방문했을 때 머문 호텔에 여장을 풀고, 이틀 동안 기사와 조선족 가이드가 딸린 Toyota 코로나 한 대를 빌려서 북경 관광을 다녔다. 요즘에야 많이들 다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과 국교가 수립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그렇게 한국인들이 많지 않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관광 다닌 이야기는 생략하고 북경의 첫날, 저녁 시간이 되어서 가이드 아가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들, 북한 식당에 가 보시겠습니까?"

나랑 같이 간 이과장님 깜짝 놀라며 반문하였다.

“북한 식당이요? 그런 데가 다 있어요?”

음식값이 아주 비싸다는 가이드 아가씨의 말을 무시하고 100%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북에서 온 아가씨라니.  예로부터 남남북녀 아닌가!  히히히. 중국과 북한이 합자하여 만든 식당인데 1층은 불고기 등 한식을 팔고 북한에서 온 아가씨들이 홀 서빙을 하였다.  2층은 중식 식당이라고 한다.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사람들로 붐비는 가운데 겨우 한자리 얻어서 주문을 하는데 정말 음식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반찬도 추가하면 하나하나 돈을 받았다. 당시의 나는 그런 사소한 부분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서빙하는 북쪽의 아가씨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내 생애에 북쪽 사람과 접촉한 것은 인도의 델리 공항에서 스쳐 지나간 북한 외교관을 빼곤 처음이었다. 어찌 황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북에서 온 그 종업원들의 태도는 불친절 그 자체였다. 일부러 말좀 걸어 보려고 김치나 다른 것을 주문기만 하면, 특이한 억양으로 “업슴네다”라고 말해서 “그럼, 있는 게 뭐요?”라고 말해 배시시 웃음 짓게 하곤 그걸 보며 기뻐했던 것 같다. 걔중 이쁜 여자 종업원에게 사진 한 장 같이 찍자고 부탁했더니  무척 퉁명스럽게 던지는 말 한 마디.

"담당 접대원 동무에게 부탁하라우! "

할 수 없이 담당 접대원 동무(?)에게 기념으로 사진 한 방 같이 찍자고 애걸복걸을 했지만 결국은 찍지 못했다. "다음에 오시면 꼭 같이 찍어드릴게요."

한 3개월이 지난 후에 다시 북경에 갈 일이 생겨 담당 접대원 동무와 사진 한 방 찍으려고 (그때는 나도 그랬다) 저번의 조선족 가이드 아가씨에게 다시 한 번 가자고 했는데 문 닫았다고 하여 가지 못했다. 아까워라! 담당 접대원 동무의 당황하는 표정을 꼭 보고 싶었는데.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유경식당은 지금도 영업을 한다. 이 나쁜 가이드 아가씨! 아마도 ‘손님을 데리고 오는 가이드에게 주는 수당이 적었나 보다’하고 씩 웃고 말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유경식당’이란 이름의 이 식당은 그간 내가 아는 모든 상식을 깨어 버리고도 손님이 줄을 선다는 것이다.

첫째, 유경식당은 음식 맛이 정말 없다.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고 가면 낭패이다. 오죽하면 다음번에 북경 갔을 때 예의 그 가이드 아가씨가 가기 싫다고 했겠는가? (내가 위에서 실없는 소리를 좀 했지만 이 아가씨도 맛없고 비싼 음식점으로 두 번씩이나 데리고 가기가 미안해서일 것이다)

둘째, 음식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내 기억으론 아마 서울의 음식점보다 더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셋째, 무지하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종업원들이 불친절하다. 아예 서비스 정신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도 없었다. 나중엔 계산하고 나가면서 라이터 하나 달라고 했더니만 돈을 주고 사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나같이 마냥 재미있고 좋아서 오는 한국사람, 북한사람, 조선족, 한족들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찾는 이유가 뭘까? 나야 지나가는 객이고 호기심에서 왔다고 치고 딴 사람들은 왜 찾을까?

 그 떄 집어 온 유경식당의 명함이다. 잘 보면 '중조합자기업'이라는 게 보인다.  이게 아직 남아 있는 걸 보니 당시엔 참 신기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토요일 오후 식객 5권을 다 보고 난 안해가 갑자기 부대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식객에 나온 의정부의 오뎅식당에 가자는 것이다. 사실 난 요즘 한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돼지고기도 못 먹고 라면도 먹지 못한다. 난 먹지도 못하는데 나중에 가고 다른 데 가자고 약간의 반항을 해 보았지만,

“그럼 자긴 김치만 먹으면 되잖아!”

내가 무슨 힘이 있나. 일단 인터넷으로 가는 길을 확인하느라 법석을 떨고(참고로 말하면 난 지독한 길치이다.), 전화를 해서 오늘 영업을 하는 지 확인하였다. 하지만 혹시나 하고 네비게이션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니 떡하니 오뎅식당이 나오는 것이었다. 참 좋은 세상이로고. 난 별로 미식가가 아니어서 이렇게 일부러 멀리까지 뭘 먹으러 잘 찾아가지 않는데 식객을 보고 재미삼아 시작한 일이다. 43번 구도를 타고 한참을 가서 겨우 도착하여 식당 앞에 차를 주차하고 들어갔다. 

들어가니 조그만 식당에 근무하는 할머니만 7~8명 정도 있었고 몇군데 빈자리가 있었다. 주문하면서 “라면은 넣지 말고요.” 그랬더니 “라면 공짜로 주는 거 아니야. 돈 받고 파는 거야.” 라고 그러면서 투덜거렸다.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부대찌게가 나오고 육수를 붇고 뚜껑을 덮고 한참을 있으려니까 끓는 듯해서 뚜껑을 열었더니 바로 쏟아지는 볼맨 소리.

“내가 열어라 할 때까지 뚜껑 열지 말라니까!”

“아, 예” 하면서도 기분이 좀 나빠지기 시작했다. 미리 알려 주던지 소리를 지르지 말던지, 내 돈 내고 먹으면서 마치 얻어먹는 기분이 들게 하다니. 내가 김치만 건져 먹다보니 김치가 모자라 좀 더 달라고 했다. 최대한 정중하게 부탁을 했음에도 최고로 불친절하게 가져다주었다. 김치를 더 넣고 나니 육수가 부족했다. 안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3번씩이나 “여기, 육수 좀 더 주세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참다못한 내가 4번을 더 이야기하니 그때야 육수를 가져다주면서, 김치 넣고 육수 붓고 어쩌구 저쩌구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참 나 먹기 싫으면 가란 식이었다. 그래도 난 안해에게 “이번엔 내가 제대로 맛을 못 봤으니 다음에 또 오자. 맛있지.” 이러고 있었다. 옆 테이블의 아가씨들 4명이 있었는데 찌개가 끓는데 불을 줄이지 않았다고 ‘짠내’가 난다고 난리를 친다. 아가씨들도 뭔가 무척 황당한 표정이다.


계산을 하려고 나와 보니 아예 신용카드 단말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철저하리만큼 파는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는 식당, 그래도 자리가 없어 기다려서 먹어야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나는 사실 오뎅식당의 부대찌개의 제 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다시 오지 말자는 안해의 말이 아니라도 다시는 찾지 않을 거다. 거창한 서비스는 아니더라도 먹는 순간만큼은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벽마다 빼곡하게 붙어 있는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진만큼이나 손님들이 알아서 많이들 찾아오니까 음식맛만 45년전이 아니라 서비스마저도 45년 전이다.  그런데 왜 손님이 많을까? 맛이 정말 좋은가? 아마도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좋아 보여서 그런가? 에이 모르겠다.

 

아무튼 불친절한 식당은 싫어!


원래는 오뎅식당에 다녀와서 기분 좋은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원래의 의도와는 빗나가 버렸다. 아마 우리 아버지 연배의 어르신들이 가시면 좋을 식당일게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안 간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은  <오! 한강> 이후에 처음이다.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빼곤 처음으로 산 만화이고 12권까지 전부 주문을 했으니 마음에 들긴 들었나 보다. 허영만 화백의 장인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 이건 페이퍼에 올려야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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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2006-05-17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멀리까지 일부러 찾아갔는데 참 아쉽네요. 저번에 성공했으면 '식객'에 나온 식당들 쭉 순회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흥이 깨져 버려서.

저도 만화를 보기는 많이 했지만 제 돈 주고 사 보기는 처음입니다. 저에게도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나 봅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