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김금숙 지음 / 딸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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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김금숙 작가의 '실제' 데뷔작. 작가는 '아버지의 노래'를 '공식 데뷔작'이라고 말하지만, 그보다 앞서 이 작품을 완성했다. 프랑스 출판사와 출판 계약까지 했다가 출판사 쪽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이 작품은 한동안 묻혔고, 작년(2021년)에 출간했다.
작가의 자전적 작품으로, 프랑스로 유학한 작가는 프랑스인 남자와 결혼해서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프랑스 만화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도 하고, 블로그에 창작 작품을 올리면서 좋은 반응을 얻는데, 블로그에 올렸던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이방인'이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 주인공 지수의 남편 시점으로 바라본다. 주인공 지수와 남편 프레드릭이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잠시 가족을 만나러 온 이야기인데, 프레드릭은 한국을 처음 방문한다.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한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 사람의 말과 행동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객관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내의 오빠가 살고 있는 시골에서 환대받고, 아내의 돌아가신 아버지 즉 장인의 묘소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아내가 친구를 만나 밤 늦게까지 외출한 시간에 아내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아내가 어렸을 때 그린 그림을 보는 내용이다.
프레드릭은 한국의 음식과 문화에 적응하려 나름 노력하는데, 그래도 빵과 커피가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는 채식주의자지만 자형이 권하는 개고기 앞에서 채식주의자가 아닌 척 한다. 이 와중에 음식점 주인은 바가지를 씌우고, 한국사람들은 '빨리, 빨리'를 외쳐서 정신 없고, 장모님은 날씨가 더워서 기절한다.
경기도에 있는 공원묘지로 장인에게 인사드리러 가는 날, 여학생이 외국인인 자기를 보며 '헬로'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프랑스인에게 영어를 쓰는 건 차별인가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백인을 '미국인'으로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의 편견처럼, 프랑스에서도 모든 동양인을 '일본인' 또는 '중국인'으로 여기는 프랑스인의 편견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아내가 친구를 만나고 있을 시간, 심심한 프레데릭은 집안을 둘러보다 아내가 쓴 일기장을 발견한다. 한글을 읽을 수 없지만, 일기장에는 아내가 20대 학생이었을 때 그린 그림 특히 자화상이 있었다. 프레드릭이 일기장을 보는 형식이지만, 작가는 자기의 과거를 드러낸다. 20대, 대학생이던 시절에 당시 한국 사회-노태우 정권-의 모순에 저항하는 선배, 친구들의 상황을 알면서도 갈등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지수는 학생 때도 자신이 학교와 친구들 사이에서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배우는 것도 시원찮고, 사회의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갈 수도 없는 자기의 입장, 혼란스러운 사회, 불안하고 막막한 미래에 대한 답답함 등의 감정으로 힘들어 했던 과거였고, 지수는 결국 프랑스로 유학한다. 프랑스에서는 실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정서적, 감정적 혼란을 내면에 쌓아가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이방인'으로 살면서 서로 다른 문화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은 평이하고 작가의 그림도 지금과는 조금 다르다. 형식에 있어서 김금숙 작가의 최근 작품은 붓을 주로 쓰는데, 이 작품은 펜으로 작업했다.

프랑스어로 블로그에 연재한 작품이어서 한국 문화를 알리려는 시도와 무거운 내용보다는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가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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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고고학 1960 - 탄생과 혁명 한국 팝의 고고학
신현준.최지선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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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고고학 - 1960


10대의 어느 한 때, 오래된 트로트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이난영, 고복수, 남인수, 현인, 김종구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하염없이 들으며 마음이 좀 슬펐던 기억이 있다. 그땐 몰랐지만 아마도 '자기 연민'이 아니었을까. 
소년 노동자로 살면서 나는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무지렁이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공장노동자, 건설노동자로 10대, 1970년대를 보냈고, 그때 라디오에서는 나훈아, 남진, 김추자, 최헌, 송창식, 어니언스, 패티김, 이은하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비록 몇 달이었지만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음악에 몰두했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국민학교 다닐 때 동무들과 유행가를 부르며 마을을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던 추억이 있다.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대중음악은 우리에게 유행가였고, 어린 우리는 동요보다 유행가를 더 많이 불렀다.

이 책은 '한국 팝'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들어온 음악과 당시 한국에서 불렸던 음악(민요)이 결합해 '트로트'라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이 분야는 지금도 '트롯'으로 여전히 활발하게 생산하고, 소비한다. '트롯'과 함께 두 줄기 가운데 하나로 '팝'이 있는데, 이 책에서 기록하고 있는 '한국 팝'은 전후, 여기서 '전후'는 1945년이 아니라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를 뜻한다. 미군이 한국에 상주하면서 미국의 대중음악이 이식되는 과정에서 '한국 팝'이 하나의 장르로 탄생한다.
미8군으로 상징하는 미군의 존재는 전쟁을 겪은 한국 민중에게 '나라를 구한 은인'이자, 굶주린 대중에게 곡식(밀가루, 설탕)을 가져다 준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미지가 겹쳐 절대의 권위와 권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해방 직후 약 3년의 '미군정' 시기를 사람들은 잘 모른다. 미군은 한국 정치가를 배제하고, 그들이 직접 한국을 지배했던 시기가 있었다. 해방 직후 민족주의자인 여운형 등을 배제하고 이승만과 친일파 계열이 득세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도 바로 미군이 정치적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미군은 해방 직후 '점령군'으로 한국에 '진주'했으며, 한국을 3년 동안 '미군정' 체제로 다스렸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전쟁에 개입해 '작은 3차대전'을 한반도에서 치른다.
이승만은 미군(맥아더 장군)에게 '전시작전지휘권'을 이양하는데, 이것은 당시 한국군의 작전 역량이 형편 없다는 걸 인정하고, 외국군인 미군에게 국가의 운명을 맡긴 것이다.
'전시작전지휘권'은 한국이 세계 6위의 전투 능력을 갖춘 국가가 되었음에도 아직 되찾지 못하고 있다. 주권 국가에서 '전시작전지휘권'을 외국에 넘겨준 경우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만큼 한국에서 미군의 존재 의미는 여전히 특별하다.

전후 가난이 극심하던 때, 대중음악을 하는 예술가들이 그나마 무대에 설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미8군으로 대표하는 미군부대의 무대였다. 미군은 세계 곳곳에 있는 미군을 위해 본토에서 순회공연팀을 만들어 공연을 하러 다녔는데, 냇 킹 콜, 조니 마티스, 진 러셀, 마릴린 먼로 같은 미국의 유명한 연예인이 한국의 미군부대에서 공연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미국 본토에서 직접 연예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공연하는 건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으므로, 미군은 한국의 대중음악인을 훈련시켜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다. 미군은 까다로운 심사(오디션)을 통과한 한국 대중음악인에게 기회를 주었고, 이들은 피나는 노력과 훈련을 통해 미군들이 환호할 정도의 기량을 갖추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가수, 연주자, 작곡가들 대부분 미군 무대에서 활약한 사람들인 건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미군의 엄격한 오디션을 통과해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고, 미군부대의 무대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가수, 연주자, 작곡가들은 자신의 창작 능력보다는 미군이 요구하는 미국의 음악, 미군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노래하고 연주해야 했다. 즉, 한국 팝은 정확히 미군의 요구로 한국에 이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군부대의 무대는 특별했으며, 한국의 방송(라디오, 텔레비전) 무대는 '일반 무대'였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있었으나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여서, 가수, 연주자들은 전국에 있는 극장을 순회하며 공연했다. 극장은 대중이 가장 쉽고,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였고, 영화는 기본이 두 편으로 '동시상영'이었다.
가수와 연주자들은 영화 한 편이 끝나는 막간에 공연했으며, 이런 방식의 공연이 나중에 가수의 독자 공연으로 발전해 '리사이틀'이 되었다. '하춘화 리사이틀', '남진 리사이틀', '나훈아 리사이틀' 같은 제목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극장에서 공연했던 걸 어릴 때 극장의 간판으로 본 기억이 있다.

1960년대 한국에서 그룹, 중창단이 활발하게 탄생한 것도 미군 또는 미국의 대중음악 영향을 직접 받은 결과다. 미국에서도 1950년대, 1960년대 그룹이 많이 생겼는데, 우리에게 알려진 에벌리 브라더스를 비롯해 드리프터스, 문글로스, 플래터스, 브라더스 포, 사이먼앤카펑클, 더 벤처스, 비지스, 비틀즈가 50년대, 템테이션, 포시즌스, 비치보이스, 도어스, 마마스앤파파스, 스콜피언스, 잭슨스, 핑크 플로이드, CCR, 애니멀스 같은 밴드들이 60년대 초중반에 결성한다.
한국에서는 신중현의 '에드 훠'를 시작으로 '김시스터즈', 블루 벨스, 봉봉 사중창단, 자니 브라더스, 아리랑 브라더스, 멜로톤 트리오, 키보이스 등이 줄지어 나타났다. 이런 그룹 활동은 미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70년대로 오면서 듀엣이 또 하나의 특징으로 등장한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이후 한국은 독재 정권 체제에서 수출중심의 산업으로 재편한다. 텔레비전 방송국이 1961년, KBS를 시작으로 1962년 MBC, 1964년 TBS 같은 민간 상업방송이 등장하면서 텔레비전의 영향은 급격히 커졌다.
대중음악이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전국의 극장을 돌며 공연하던 가수, 연주자들이 텔레비전에 등장해 '스타'가 되는 시기였다. 방송국은 컨텐츠가 많이 필요하던 때였고, 특히 대중음악을 하는 예술가의 쓰임이 폭발하듯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8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가수, 연주자들이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면서 한국의 대중문화는 트롯과 함께 블루스, 팝, 록 같은 다양한 음악이 대중음악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독재 정권에서 나름 다양한 음악이 등장한다.
이 시기는 대중음악의 다양함과 폭발적 확산과 함께 독재 정권이 블랙리스트, 금지곡 지정으로 대중음악과 문화를 통제하고 억압했다. 대중가수를 통제하는 방식은 마약(대마초)과 가사 검열이었다. 독재 정권은 어리석은 짓이 분명한 검열과 블랙리스트를 휘두르며 대중예술을 통제, 억압했지만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박정희가 살해당하는 걸로 끝났다.

60년대는 대중음악 빅뱅의 시기였다. 20년대 이후 일제강점기에서 민요와 혼종으로 시작한 '트로트'는 '뽕짝'이라는 멸칭으로도 불렸으나, 지금은 '뽕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트롯'은 한때 팝송, 한국 팝, 록에 밀려 입지가 좁았으나 지금은 전성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반면 50년대 시작한 한국 팝은 청년 문화와 결합하면서 독재 체제에 저항하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나타났다. 이때 한국 팝은 일본과 미국에서 유행하거나 발표된 노래를 '번안곡'이라는 이름으로 저작권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라 '표절'을 해도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던, 바람직하지 않은 시기였다.
'번안곡'으로 표절을 정당화하면서 나온 노래들이 방송에 나오고, 음반으로 제작되어 대중이 소비하는데, 60년대 말이 되면 한국 팝에서 창작 음악이 나타난다. 신중현은 일찌감치 한국 록의 창작으로 아무도 밟지 않은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고, 미국 대중음악의 세례를 받은 한대수가 한국에서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개척했다.
 
한국 팝은 미군의 요구로 이식되었지만, 오래지 않아 스스로 자생,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대중음악가들은 외국 음악을 받아들여 한국사람의 정서를 불어 넣어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번안곡'이라는 표절도 있었으나 이건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고, 창작 과정과 예술의 발달에 있어 필연의 과정이기도 하다.
60년대는 현대 한국 대중음악이 탄생하고 혼돈의 시기를 보낸 시간이었다. 일제강점기 음악, 우리 고유의 민요, 미국에서 이식된 다양한 장르(팝, 록, 블루스, 로큰롤, 재즈 등)의 음악이 뒤섞였고, 독재 권력의 검열과 청년의 저항문화가 대립하면서 대중음악은 독특하게 발전한다.

이 책은 대중음악을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한다. 그것도 '한국 팝'이라는 장르의 역사와 인물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고, 예술가의 활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떤 결과를 만드는가를 볼 수 있다. 
열악한 환경과 상황에서도 한국의 대중예술가들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창작과 예술을 위해 노력했고, 60년대의 활동을 밑거름으로 이후 대중예술은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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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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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렌커의 이 장편소설은 중국 공산당이 판매금지했다. 몇 가지 이유로 판매금지했는데,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를 한 걸로 본다. 중국 공산당은 '국가' 위에 있는 존재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진데, '공산당'이 먼저 생기고, 공산당이 국가 조직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북한의 공산당은 또한 군부와 뗄 수 없는 샴쌍동이 같은 존재다. 공산당이 곧 군부이고, 군부가 곧 공산당이다. 1924년, 중국공산당을 결성하고, 마오쩌둥이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면서, 이들은 곧바로 내전과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는데, 공산당과 당의 군사조직을 지휘하는 간부는 거의 모두 같은 인물이었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당의 이념과 사상에 가장 투철하며, 당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용맹함과 헌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했고, 봉건주의와 자본주의,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당하는 인민을 해방하는 걸 삶의 목적으로 삼았다.
그런 공산당(의 지도부)이 보기에, 이 소설은 중국의 위대한 공산당의 존재와 역사와 역할을 폄훼하고 있으며, 위대한 지도자 모택동을 모욕하고, 중국 붉은 군대의 명성에 먹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이 소설을 판매금지한 건 당연하다고 했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중국공산당의 현재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 사회이면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채택한 기형적 국가다. 등소평이 '흑묘백묘론'을 주창한 이후, 중국공산당은 인민의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한다고 선언했고, 이후 실제 중국 인민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중국 전체의 부는 커졌지만,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계층은 공산당원 특히 고위 공산당원들이었다. 그들은 가진 권력으로 각종 이권에 개입했으며, 직접 자본가가 되거나, 자본가의 이익을 보장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아 부를 축적했다.
공산당원과 비당원, 대도시 거주민과 시골 농민의 삶은 극단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어떤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크게 벌어졌고, 중국공산당은 가난한 농민과 인민을 착취해 배를 불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다왕은 사단장 사택의 당번병이다. 그는 사단장과 그의 가족을 위해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텃밭을 가꾼다. 그는 이 보직을 얻으려 온몸을 내던져 사단장의 어린 아들과 놀아주었고, 여러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당번병이 되었다.
그는 모범병사였고, 글씨를 잘 썼으며, 음식도 잘 하는 병사로, 자타가 인정하는 붉은 군대의 인재였다. 그가 이렇게 훌륭한 모범병사가 될 수 있었던건 그의 피나는 노력도 있었지만, 그가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굳게 약속했고, 장인어른에게 혈서까지 썼기 때문이다.
시골 무지랭이였던(중학교는 졸업했다) 우다왕은 이웃마을의 말단 관리 자오의 배려로 군에 입대할 수 있었다. 산골 출신이 군에 입대한다는 건 대단한 출세였다. 고향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하루 세 끼의 식사에는 반드시 고기가 들어 있고, 군복은 깨끗했으며, 사상학습을 통해 폭넓은 지식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우다왕은 군대 생활에 만족하지만, 그에게는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가 있었다. 공산당에 입당해 당원이 되는 것, 군대에서 공을 세워 진급해 군 간부가 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목표는 장인어른인 자오와 약속한 내용으로 혈서까지 썼으며, 그의 아내에게도 맹세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는 매우 어렵고, 우다왕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었다. 사단장 부인 류롄이 유혹하는 걸 뿌리칠 정도로 윤리, 도덕으로 무장한 인물이지만 '욕망' 앞에서 무너진다.

우다왕의 아내
자오어즈는 시골의 봉건적 분위기에서 자란 여성이다. 공산주의 사회라곤 해도 중국의 시골은 여전히 봉건의 요소가 많이 남아 있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인민은 마을 촌장과 당 간부의 지도에 따라 관습적으로 살아간다. 자오어즈는 아버지(자오)의 명령으로 우다왕과 결혼한다. 우다왕은 간경화로 죽어가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급하게 자오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사랑의 감정이 있을리 없고, 일종의 정략 결혼이어서 우다왕이 아내와 아들에 대한 책임감과 류롄과의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원인이 되는데, 자오어즈의 존재는 중국 농촌 여성을 일반화한 것으로 보인다.
자오어즈는 신혼 첫날 밤, 우다왕에게 세 가지 약속을 지키라고 맹세하도록 한다. 첫 휴가 때 군복을 가져올 것, 매년 부대에서 공을 세울 것, 승진할 것이 그 내용이다. 이때 자오어즈의 태도는 개인의 삶을 공동체(집단)와 동일하게 여기는 인식을 보인다. 즉, 결혼과 부부라는 지극히 개인의 삶을 사회의 기준으로 치환해 객관화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런 태도는 자오어즈가 어려서부터 배워온 사회주의 학습의 결과이며, 공산당은 개인의 삶을 계량화, 수치화, 통계화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 당원, 승진, 간부 - 결과에 집착하도록 교육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경쟁을 통해 물질과 부를 축적하는 행위와 비슷하며, 공산주의 사회는 개인의 희생, 집단 속의 개인, 개인의 영웅화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 인간을 만든다.

류렌
사단장의 아내로, 간호부대에서 근무하던 군인이었다. 사단장이 류렌을 보고 '찍었다'고 했으나, 류렌이 사단장을 선택했다고 봐야 한다. 사단장이 청혼했어도 정말 싫었다면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단장은 류렌보다 열네 살이나 많은 사람으로, 훌륭한 군인이고, 지휘관인 건 분명하다.
류렌은 사단장에게는 두번째 부인이다. 사단장의 첫번째 부인과는 이혼했는데, 이 소설을 다 읽으면 독자가 사단장의 이혼에 관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류렌은 서른 살 초반의 여성으로, 사단장의 아내로 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는데, 당번병 우다왕을 적극 유혹한다. 류렌의 알몸을 보고서도 유혹을 뿌리친 우다왕에게 당번병을 바꾸겠다고 협박한 건 류렌의 진심이었는지, 단지 공갈이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류렌은 우다왕이 당번병으로 사택에 들어와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나름 깊은 인상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만약 사단장 당번병으로 키 작고 외모도 형편 없는 병사가 들어왔다면 류렌이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유혹했을까. 류렌의 입장에서 외모는 유혹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우연이지만 우다왕의 외모는 류렌의 기준에 합격했고, 여기에 우다왕의 개인적 문제까지 겹치면서 류렌의 의지가 관철된다.

사단장
1세대 공산당원으로 항일 전쟁과 내전을 겪으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진정한 투사다. 철저한 군인이지만 '개인'으로는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사단장은 작품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고, 등장해도 의미 있는 역할이 아니다. 그는 특수한 임무를 띄고 두 달 동안 출장을 떠나는데, 우다왕과 류렌은 이 기간 동안 아담과 이브가 된다.
작품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사단장이 사택을 비우면서 젊은 아내와 당번병 둘만 남는다는 걸 모를 리 없고, 신경 쓰지 않았을 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단장은 가장 믿는 부하에게 사택을 감시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수 있고, 아내 류렌과 우다왕이 수상한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류렌이 우다왕을 유혹하는게 사단장과 류렌의 합의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가질 수 있다. 사단장의 첫 부인과 이혼한 이유도, 첫 부인이 당번병과 불륜 관계였음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첫 부인이 임신을 하는 것으로 당번병과의 불륜을 허락했지만, 부인이 임신하지 않았거나, 못했기에 그 책임을 지고 이혼한 건 아닐까. 사단장은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류렌이 우다왕에게 하는 건, 다시 두 가지 숨은 이유가 있다. 사단장이 성적으로 류렌을 만족시키지 못해 류렌은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불만과 함께 임신을 할 수 없어 아이를 낳지 못해, '엄마'가 될 수 없는 비극을 예상할 수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소설의 제목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모택동의 감동적 연설의 제목이다. 중국공산당과 공산주의자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역사적 소명이자 당의 명령이라는 내용으로, 중국공산당이 '중국해방전쟁' 과정에서 물(인민)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물고기(공산당)를 비유하며, 인민 속으로 들어가 철저하게 인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단장 사택의 식탁에 놓여 있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패는 소설에서 몇 가지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우다왕은 군에서 배운 신념대로 '인민을 위해 복무'한다. 여기서 인민은 인민해방군이 보위해야 하는 중국 인민이지만, 구체적으로 그의 아내와 아들이며, 사단장의 부인인 류렌이다.
우다왕은 정식으로 결혼한 아내 자오어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죄책감을 갖는다. 반면 불륜인 류렌에게는 그가 한번도 느끼지 못한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데, 이 서로 다른 대상에게 서로 다른-윤리적으로 옳지 않은-감정을 느끼면서 스스로 혼란하다.
우다왕과 류렌의 관계 시작은 전형적인 계급 관계로 시작한다. 사단장 부인이라는 강력한 권력자 류렌은 사택 당번병 우다왕을 유혹할 때 주도적으로 행동하며, 우다왕이 거절하자 그를 쫓아낼 수 있음을 보여주며 우다왕이 굴복하도록 만든다.
이 권력 관계는 우다왕과 류렌이 육체 관계를 통해 계급이라는 사회적 권위를 내려놓으면서 점차 평등해지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두 사람은 짧은 관계가 끝나면 다시는 누나-동생 또는 애인이 될 수 없는 사이로, 계급 질서가 복원되는 게 두 사람에게는 비극이다.
류렌은 우다왕보다 네 살이 많아서, 사단장의 부인이기도 하지만 연상의 여성으로, 우다왕을 어리게 생각한다. 류렌이 먼저 '누나'라고 부르도록 하고, 우다왕은 '사모님'에서 '누님'으로 호칭을 바꾸는데, 이건 류렌과의 관계가 사회적 계급관계에서 개인적 관계로 전이하는 걸 의미한다.

사단장이 집을 비운 두 달 동안 두 사람은 마치 신혼부부처럼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류렌은 새로운 자극을 받으려는 행동으로 모택동의 부조, 글씨, 사진 등을 모두 파괴한다. 우다왕도 이 행위에 동참하며 스스로 반혁명분자라고, 총살당해야 한다고 소리친다.
두 사람은 사택의 출입문을 모두 안으로 걸어잠그고, 격렬한 애정 표현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인 모택동의 이미지를 훼손하는데, 이건 개인의 욕망이 공산주의 이념보다 앞서고, 중요하다는 걸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다. 이렇게 권위와 권력의 상징인 모택동의 이미지를 훼손하면서 두 사람은 정욕이 더 강해지는 걸 느끼고 격렬한 정사를 벌인다.
이 소설에서 '섹스'는 명백히 중국의 권위와 통제에 반발하는 상징의 행위다. '섹스'는 지극히 개인적 행위이며 국가나 공산당에서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다. 우다왕과 류렌은 각자 배우자가 있는 기혼자이며, 중국공산당의 자부심인 인민해방군으로 인민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기혼자이자 중국공산당 당원이며 최고의 병사인 우다왕과 류렌은 중국공산당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고 '개인의 욕망'을 충족한다.

사단장이 돌아오기 전, 류렌은 자기가 임신했다는 느낌을 받았고, 우다왕에게 집으로 휴가를 가라고 명령한다. 이제 다시 계급 관계가 복원되면서 우다왕은 '유사 사단장'의 지위에서 당번병의 위치로 돌아오지만, 그것만으로도 충격을 받는다.
고향으로 돌아와 아내와 아들을 만나도 크게 기쁘지 않고, 아내와 몸을 섞지도 않으며, 오로지 류렌을 생각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이라는 것과, 다시는 류렌을 만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다왕은 견디기 힘든 마음의 고통에 시달린다.
반면 류렌은 우다왕에게 약속한대로 우다왕이 도시의 큰 공장에서 공장장으로 일할 수 있도록 처리했으며, 우다왕의 아내가 그렇게 바란대로 도시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준다. 류렌은 임신했고, 그 아이가 우다왕의 아이라는 건 오직 류렌 자신만 알 뿐이다. 우다왕도 류렌의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짐작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 것'이라는 원칙에 따라 그는 류렌에게 아이가 자기 아이라는 말을 묻지 않는다.

사단장은 인민해방군의 효율적 편재를 위해 스스로 자기 사단을 해체하기로 결정한다. 예하 부대들이 해체되거나 다른 부대로 편입하고, 많은 군인들이 군을 떠나 민간인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다왕도 전역하고 도시의 큰 공장 공장장으로 일하게 되는데, 류렌이 약속을 지킨건 우다왕에게 커다란 선물이었다.
이야기는 15년이 지난 뒤에 우다왕이 류렌을 만나려 시도하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데, 두 사람은 결국 만나지 못한다. 아니, 류렌이 우다왕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우다왕은 사택 근처에서 놀고 있는 열다섯 살 남짓한 사내아이를 오래 지켜보는데, 그 아이가 류렌의 아이인지는 확실치 않다.
중국의 현대가 개인의 욕망을 '공산주의'의 틀로 가두고 있다는 걸 비판, 풍자한 이 소설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두 사람이 욕망이라는 공통점으로, 그들만의 공간(사택)에서 사회에 반역한다는 내용으로 중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두 사람의 욕망은 순수하지만, 두 사람의 사회적 관계, 사회적 위치, 사회의 기준으로 구분되는 신분의 격차, 이념이 짓누르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권력 관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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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고고학 1970 - 절정과 분화 한국 팝의 고고학
신현준.최지선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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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고고학 - 1970

1970년을 기억하는 건 쉽지 않다. 기억은 파편으로 남았고, 나는 그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열 살이었고, 마포의 기찻길 아래, 루핑을 얹은 판잣집에서 살았다. 국민학교 2학년 무렵이었고,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읽다가 한글을 깨쳤다.
집앞으로 문안(사대문 안쪽)에서 흘러나온 개천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흑백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가진 집이 하나였다. 우리집에는 배터리를 고무줄로 묶은 금성 라디오가 유일한 가전제품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연속극이 나오고, '전설따라 삼천리'가 나왔다. 우리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무서운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동네 꼬마들은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유행가'를 알고 있었다. 우리들은 동요를 부르지 않았고, 남진의 '님과 함께'를 신나게 불렀다. 맹인 가수 이용복의 노래들, 신중현의 '미인',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봄비', '거짓말이야'를 뜻도 모르고 불렀다.
1971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나는 꼬마였고, 정치를 몰랐지만 아버지에게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대요.'라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쉿, 그런 말 하는 거 아냐'라고 하셨고, 1979년, 박정희는 부하의 총을 맞고 죽었다. 나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기 전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 일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라고 썼다.

이 책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쉽게 알 수 없는 한국음악의 팝 계열 음악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했다. '가왕' 조용필이 1971년 처음으로 '가수왕' 상을 받은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70년대 최고의 대중잡지였던 '썬데이서울'이 주최한 '썬데이서울컵 보컬그룹 경연대회'에서 조용필은 최이철, 김대환과 함께 '김트리오'를 결성해 출전했고, '가수왕' 상을 받는다.
70년대는 듀엣, 트리오 같은 그룹이 많이 나타났고, 그들의 노래가 유행했다. 키보이스, 키브러더스, 히식스, 영사운드, 템페스트, 사월과 오월, 어니언스 같은 그룹의 노래는 라디오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마을에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서는 오후5시에 시작하는 방송 시간에 맞춰 입장료 10원을 받고 꼬마들을 불러모았다. 나는 엄마를 졸라 10원을 받아 텔레비전을 보러 달려갔다. 일본 만화영화를 그대로 가져온 '뱀, 베라, 베로', '타이거 마스크', '밀림의 왕자 레오'를 봤고, 동네 누나들은 남진과 나훈아의 팬으로 갈려 서로 '우리 오빠'가 최고라고 부르짖었다. 남진 오빠에게 시집가겠다는 누나가 수십 명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청년들이 부르는 노래를 금지했고, 긴 머리를 길거리에서 함부로 가위로 잘랐으며,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치마 길이를 재고, 경찰서로 끌고가 창피를 주었다. 청년들이 팝송을 부르고, 통기타를 치고, 한데 모여 음악 듣는 걸 두려워했다. 
북한에서 김일성이 '천리마운동'을 시작하자 남쪽에서 박정희가 '새마을운동'으로 따라했다. 시골의 초가집을 벗겨내고 슬레이트 지붕을 덮었고, 마을 길을 넓히고, 북한의 '5호담당제'처럼, 마을 주민을 감시하도록 했다. 언론은 숨죽였고, 텔레비전에는 오락과 코미디만 넘쳤다.

1974년 여름, 한여름 폭우가 개울을 넘고, 집으로 물이 넘실대면서 우리 가족은 한밤중에 보따리를 싸서 철둑으로 도망했다. 날이 밝고, 철둑길에서 바라본 동네는 온통 물바다였다. 지붕만 남은 우리집은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고, 머지 않아 '무허가 건물'이라는 이름으로 속절 없이 헐렸다.
우리 가족은 서울의 변두리 산동네, 큰누나가 살고 있는 산비탈 단칸방에서 월세를 살았다. 나는 소년노동자가 되었고, 더 이상 유행가를 따라부르지 않았다. 공장 몇 곳과 식당을 전전하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가다꾼'이 되어 지방 공사장을 떠돌았다. 그때 이정선의 '섬소년'을 들었고, 박목월의 시 '나그네'를 외웠다.
하루 노동을 마치고 하숙집에 돌아와 카세트 라디오에서 이장희의 '그건 너', 송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 사월과오월의 '등불', 어니언스의 '편지', '저별과 달을', 영사운드의 '등불'을 들었다. 

대중은 알 수 없는, 가요계 인맥과 가수들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특히 팝을 중심으로 청년 가수들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어 70년대 청년문화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기 한국의 팝은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었고, 가수들도 미군부대에서 노래하길 바랐다. 미군부대에서 이름을 얻은 가수와 밴드, 그룹이 방송과 연예계로 진출하는 수순이 자연스러웠다.
라디오 방송에서 팝송이나 대중가요를 내보내고, 진행자가 DJ(디스크자키)로 인기 연예인이 되고, 방송국으로 엽서와 편지가 무더기로 보내지던 시절이었다. 70년대 중반, 영화계에서는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라는 특이한 장르가 등장했다. 독재정권이 체제에 부정적인 문화를 거세하고, 대중을 어리석은 상태로 만드는 '우민화 정책'을 쓰면서 '벗기는 영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75년이 되면서 신중현 '미인', 김정호 '하얀 나비', 김세환 '사랑하는 마음', 둘다섯 '긴머리 소녀', 윤항기 '이거야 정말', 송창식 '왜 불러', 윤형주 '어제 내린 비', 검은 나비 '당신은 몰라' 같은 노래들이 히트곡이었다. 
나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고, 이런 노래들은 들었지만, 흥겹게 따라 부르고 싶은 상태가 아니었다. 가난과 노동으로 삶은 피곤하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한달에 하루나 이틀을 겨우 쉴 수 있었고, 거의 매일 잔업을 했다.
박정희 정권은 '긴급 조치'를 발표하고, 많은 연예인들이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거나 화면에서, 방송에서 사라졌다. 내 삶 뿐아니라 사회 전체가 암울하고 답답하던 시기였다. '금지곡'이 늘어나고, 가수, 연예인들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 가요와 영화는 정부기관의 심의를 받아야 했고, 창작의 자율과 상상력은 억압당했다.

1976년 2월, 나는 매형을 따라 건설노동자가 되었다. '노가다'라고 업신여기는 직업이었지만, 공장보다 임금이 많았고, 공장처럼 한 자리에서 기계 부속품처럼 반복작업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일은 힘들었지만 자율성이 있어서 할만 했다.
송대관의 '해뜰 날'이 방송과 거리에 울려 퍼졌다. 내 인생에서도 '쨍 하고 해뜰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싶었다. 최헌의 '오동잎'이 거리를 휩쓸 때, 나는 경남 울주의 새로운 공단을 만드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저 아래, 부산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서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1977년, 1978년에도 나는 지방을 전전하며 '노가다'를 뛰었다. 경남 울주, 마산, 창원, 전남 광주, 충청 신탄진, 강원 속초의 건설 현장에서 때로는 하숙집에서 편하게 잠자고, 맛있는 밥을 먹으며 일하다, 때로는 현장의 허름한 숙소에서 잠자고 현장 식당에서 맛없는 밥을 먹으며 일했다.
세상은 내게 따뜻하지도, 호의를 보이지도 않았다. 가수들은 명멸했고, 그룹사운드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카세트 녹음기가 첨단 기기로 나타났고, '공테이프'를 사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했다. 그때는 '저작권' 개념이 없었다.
이 무렵 처음 '대학가요제'가 열렸고, 대학생 그룹과 개인의 신선한 노래가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성 가수들의 노래에 싫증을 느끼던 사람들은 대학생의 음악에 환호를 보냈다. 샌드페블스 '나 어떡해' 블랙테트라 '구름과 나' 활주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같은 음악들은 청년의 감성을 흔들었다.
그리고 '산울림'이 등장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놀라운 그룹이 등장했다고 사람들은 흥분했다. '산울림'의 신선한 충격은 오래 이어졌다. 

1979년,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 독서회 활동을 시작했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있었으며 삼중당 문고를 열심히 읽었다. 이때 혜은이, 이은하, 윤시내 같은 여성 가수들이 도드라졌다. 그룹사운드의 음악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끊이지 않고 나왔다. 활주로, 블랙테트라, 샌드페블스, 휘버스, 작은 거인, 장남들, 벗님들, 블루드래곤 같은 그룹사운드의 음악은 한국 팝 음악의 70년대 열매이자, 80년대를 여는 서곡이었다.
그리고 1979년 10월, 영원할 것 같았던 박정희 독재가 막을 내렸다. 박정희는 부하가 쏜 총에 맞아 죽었고,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 책은 그 시대를 기억하는 가수, 연주자들, 음악 제작자, 프로듀서, 작곡가 등의 인터뷰가 많이 실려 있어서 음악의 흐름과 가수를 비롯한 음악 관련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풍성하고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이 얼마나 다양하고 긴밀한 인간 관계를 통해 일어나는가를 잘 알 수 있고, 가수, 작곡가, 연주자들이 선의를 가진 협업을 통해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신기하고 흐믓하다. 모든 것이 아날로그이던 시대, 아날로그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포크와 팝 음악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녹슬지 않고 싱싱하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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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개들 [dts] (2disc) - [초특가판]
쿠엔틴 타란티노 외 출연 / 시네마 크로스 (Cinema Cross)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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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의 개들 또는 창고의 개들

서너 번 봤다. 볼 때마다 새롭다. 영화나 음악은 어떤 환경에서 보고 듣는가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르다. 영화는 관객(나)의 감정 상태와 물리적 환경에 따라, 음악도 그렇지만 음악이 연주되는 공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두 장르 모두 극장과 공연장에서 보고 듣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영화도 소리의 영향이 가장 크다. 과거 무성영화 시기에 자막과 음악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변사가 배우의 대사를 대신 읊어주었다. 영화 그 자체는 움직이는 그림이고, 여기에 대사, 효과음, 배경음 등을 넣어야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 뻔한 이야기를 한 것은,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새로 구입한 헤드폰으로 들으며 봤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래 되었지만 외장형 사운드카드를 통해 '헤드폰 앰프'를 거쳐 나온 소리를 들으니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가 영화에서 들렸다.
가장 신선하게 느낀 건 역시 음악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에 쓰이는 음악을 자신이 직접 고르는데, 이 영화는 그의 데뷔작이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서 영화가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1970년대 미국 음악이 나올 때는 그가 영화 뿐아니라 음악에서도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졌는지 알게 된다. 특히 극중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방송국의 디제이(DJ) 목소리는 건조하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음성인 것을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새삼 느꼈다. 

이 영화는 홍콩영화 '용호풍운'을 오마주했다. '용호풍운'은 홍콩영화가 한창 잘 나가던 때인 1987년에 개봉했는데, 이 영화는 나중에 '무간도'와 '신세계' 같은 경찰이 조폭 집단에 잠입해 활동하는 느와르 영화에 영향을 준다. '용호풍운'의 주인공도 홍콩 최고 배우인 주윤발과 이수현이다. 이들은 2년 뒤에 홍콩영화의 전설로 남은 영화 '첩혈쌍웅'에도 함께 출연한다.
'저수지의 개들' 인트로에서 조가 수첩을 보면서 '토니웡'이라고 몇 번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토니웡'은 '첩혈쌍웅'에 나오는 인물로 그룹의 총재다. 이런 깨알같은 장면에서도 쿠엔틴은 홍콩영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암시했다.
'저수지의 개들'이 '용호풍운'을 오마주한 건 맞지만, '표절'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다. 경찰이 범죄조직 내부로 잠입해 비밀수사를 하는 상황, 보석상을 터는 상황, 창고에 모여서 세 명이 서로 총을 겨누는 장면 등이 비슷할 뿐,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쿠엔틴이 영화 제목을 지을 때,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이라고 했는데, 쿠엔틴이 감독이 되기 전, 비디오 가게에서 일할 때, 한 손님에게 영화 '굿바이 칠드런(Au revoir les enfants)'을 추천했는데, 그 손님이 제목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고 '창고(Reservoir)' 영화는 볼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쿠엔틴은 그 단어가 퍽 인상 깊게 남아서, 영화를 만들면 반드시 '창고(Reservoir)'라는 단어를 쓴 제목을 붙이겠다고 마음 먹었고, 데뷔작에 'Reservoir'를 붙였다. 여기서 '저수지'라는 단어와 '창고'라는 단어가 같은 창고'Reservoir'여서, 최초 번역이 그대로 남게 되었는데, 쿠엔틴의 의도는 '용호풍운'에서처럼 '창고'에 모인 '개들'을 상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영화 인트로에서 레스토랑에 모여 밥을 먹고 잡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쿠엔틴(미스터 브라운)이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에 관한 해석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수위 높은 음담패설인데, 쿠엔틴의 수다스러움과 테이블에 앉은 일곱 명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가벼운 농담처럼 들린다.
레스토랑 인트로는 길지 않지만,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스터 브라운의 음담패설도 있지만, 그보다 조 캐벗이 음식값을 치르고, 팁은 각자 1달러씩 내라고 했을 때, 이들 가운데 미스터 핑크는 팁을 내지 않겠다고 반발한다. 웨이트리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으며, 무조건 팁을 주는 건 옳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면 다른 여섯 명(이때 조 캐벗은 음식값을 계산하러 카운터로 간 상태)은 무조건 팁을 주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이하의 학력을 가진 여성이 당장 일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웨이트리스이며, 그들은 매우 적은 임금을 받고, 팁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으니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팁은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범죄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는 건 신선하다. 이들이 범죄자이면서도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누가 사회적 약자인지를 구분하고 있고, 그럼에도 미스터 핑크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덟 명 가운데 두 사람, 조 캐벗과 그의 아들 에디는 정장을 입지 않고, 여섯 명의 사내는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마치 장례식에 가는 사람들로 보인다. 게다가 이들 가운데 다섯 명은 검은색 선글래스를 쓰고 있다. 이쯤되면 이들이 평범한 남자들로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 리얼리티는 떨어지지만 스타일은 살리는 클리셰를 선택했다고 본다.
레스토랑 인트로가 끝나고 곧바로 총에 맞아 헐떡이는 미스터 오렌지가 보이고, 그를 부축하는 미스터 화이트가 창고로 그를 끌고 들어온다. 직전까지 레스토랑에서 한가하게 농담을 떠들던 장면에서 곧바로 피투성이가 된 인물의 등장은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그리고 이들이 나눈 대화에서 이미 미스터 브라운과 미스터 블루는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즉 두 사람은 레스토랑 인트로에만 등장한다. 등장인물을 줄인 건 저예산의 한계와 이야기를 보다 핍진하게 풀어가려는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이 영화는 거리 장면이 매우 적고, 거의 모두 창고 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이어서, 영화지만 연극의 무대와 거의 같다. 즉, 큰 변화 없이 연극으로 만들 수 있는데, 실제 쿠엔틴은 이 영화를 다시 만든다면 연극으로 만들고, 등장인물은 모두 흑인으로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영화에는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레스토랑 인트로에도 웨이트리스가 한번 나올 듯하면서도 나오지 않고, 딱 한 번, 여성이 등장하는데, 미스터 오렌지가 탈출하는 장면에서, 거리를 뛰던 미스터 오렌지와 미스터 화이트가 달려오는 차에 총을 겨누고 차를 뺐는데, 그 차의 운전자가 여성이었다. 이 여성이 미스터 오렌지를 총으로 쐈고, 미스터 오렌지도 반사적으로 총을 쏜다. 
첫 장면에서 피투성이가 된 미스터 오렌지의 상황이 여기서 시작한 것으로, 이때 관객은 모르는 상태지만 미스터 오렌지가 잠입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관객은 충격을 느낀다. 경찰이 범인을 잡으려고 범죄자 행세를 하다 시민의 총에 맞고, 시민을 사살하는 상황은 어떻게도 풀 수 없는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미스터 오렌지가 맞닥뜨리는 딜레마는 더 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미스터 화이트가 경찰차를 향해 총을 난사하고, 두 명의 경찰이 그 자리에서 죽는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스터 블론드가 탈출하면서 경찰 한 명을 납치해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오는데, 이 경찰을 창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다음 미스터 블론드, 미스터 핑크, 미스터 화이트가 구타하는 장면을 미스터 오렌지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상태다.
나중에 미스터 블론디 혼자 창고에 남아 경찰을 고문하고 기름을 끼얹어 불태워 죽이려 하자 참지 못한 미스터 오렌지가 미스터 블론디를 사살한다. 납치당한 경찰은 미스터 오렌지가 잠입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고문당하면서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미스터 화이트는 이 작전을 설계하고 사람을 모은 조 캐벗과 친한 인물인데, 마지막 장면에서 미스터 오렌지를 옹호하며 조 캐벗과 대립한다. 두 사람이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조 캐벗은 미스터 오렌지를 경찰 끄나풀이라고 주장하고, 미스터 화이트는 미스터 오렌지가 결코 경찰 끄나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조 캐벗은 자기의 직감을 믿는다고 말하는데, 조의 아들 에디는 창고에서 죽은 미스터 블론디와 매우 친한 관계이고, 이제 막 감옥에서 4년을 보내고 나온 미스터 블론디가 조 캐벗을 위해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것을 높게 평가했는데, 미스터 오렌지의 말에 따르면 조 캐벗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창고에 오면 모두 죽이고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도망가겠다고 말한 것은 비논리적이며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에디의 말을 들으면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미스터 화이트는 미스터 오렌지를 옹호한다. 그건 미스터 화이트가 미스터 오렌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행동하면서 느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립은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 세계관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같은 범죄자이고, 서로 오래 알아왔지만 결정적 순간에 두 사람(조 캐벗과 미스터 화이트)은 불화한다. 범죄자의 세계에서 '믿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무하고 허구적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스터 핑크가 보석 가방을 챙겨 창고 밖으로 빠져나가고, 부상을 당한 미스터 오렌지와 미스터 화이트가 피투성이가 된 채 서로 끌어당기는데, 미스터 오렌지가 자기를 믿고 지켜준 미스터 화이트에게, '내가 경찰이에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창고 바깥 장면이 들린다. 경찰차 싸이렌 소리와 총소리, 미스터 핑크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매우 작은 소리여서 주의해서 들어야만 들린다. 이번에 구입한 헤드폰으로 들으니 예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려서 신기했다.
결국 미스터 핑크도 체포당하거나 사살당하는 것으로 나오고, 창고 안에 있던 미스터 오렌지도 미스터 화이트의 총에 죽고, 창고로 들이닥친 경찰의 총에 미스터 화이트가 사살당하면서 이들의 작전은 실패한다.

레스토랑 인트로는 쿠엔틴의 데뷔작이라는 점, 여덟 명이 모두 모인 유일한 장면이라는 점, 이 장면이 영화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등장 인물의 관계와 사건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장면이고, 새롭고 신선한 연출이다.
잠입 경찰인 미스터 오렌지를 제외하고, 일곱 명의 악당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대가를 죽음으로 치렀다는 점에서 영화는 도덕적 딜레마에서 비켜서 있다. 즉, 등장인물이 죽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안쓰러움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를 관통하는 '철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범죄자 또는 범죄를 다룬 작품이 많고, 그들 대부분은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 나쁜 짓을 저지른 놈은 죽어도 싸다는 게 쿠엔틴의 작품 철학이다. '데스 프루프'에서 여성만 골라 자동차 사고로 살해하는 마이크를 스턴트 연기를 하는 여성들이 때려죽이고, '비스터즈:거친 녀석들'은 미군이 독일군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내용이다. '장고:분노의 추적자'도 현상금 사냥꾼 슐츠와 장고가 힘을 합해 노예로 끌려간 장고의 아내 브룸힐다를 구출하는 내용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도 찰스 맨슨 일당에게 살해당한 로만 폴란스키를 추모하며 영화로 대신 복수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쿠엔틴의 영화에서는 도덕적 딜레마 없이 마음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관객은 폭력 장면에서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나쁜 짓을 한 놈은 죽어도 싸다는 보편의 상식과 감정에 충실한 영화들이라 영화를 보는 동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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