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유령기담 트리콘 세계문학 총서 6
김석범 지음, 조수일 외 옮김, 김동현 해설 / 보고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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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의 실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낸 유일한 문학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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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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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미셸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한국어를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한다. 한국인 엄마는 미셸을 '한국어 학교'에 등록해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쳤지만 완전하지 않았고, 엄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그의 이모들과 엄마가 반갑게 어울리는 장면을 기억하지만,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라서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 모른 채 자랐다.
미셸은 한국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마을에서 살았으며, 학교에서도 유일한 한국인 혼혈이었다. 그는 다른 수많은 혼혈아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고, 부모와 불화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미셸은 미국에서 자라지만, 한국인 엄마를 둔 딸로, 마치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보인다. 미셸은 자기 엄마와 다른 미국인 엄마가 많이 다르다는 건 알지만, 엄마의 말과 행동이 철저하게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건 눈치 채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미셸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할 생각이었지만, 엄마는 반드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강제해서 미셸은 대학에 진학하고, 그렇게 부모와 집으로부터 독립한다.
미셸은 어릴 때부터 엄마의 잔소리, 간섭, 신경질이 불편하고 피곤하고 싫었지만, 한편으로 엄마는 자기를 가장 잘 알고, 누구보다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미셸이 청소년 시기를 거치며 정체성으로 심각하게 고민할 때 엄마는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지만, 엄마와 함께 한국식품을 파는 H마트에서 쇼핑하고, 그곳 푸드코트에서 한국 음식을 사 먹고, 엄마가 골라준 예쁜 드레스를 입고, 나중에 알게 되지만 엄마가 알게 모르게 자기를 찍은 많은 사진을 보며,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진했는 지 새삼 깨닫는다.

집을 떠나 부모와 거리를 두면서 미셸은 비로소 엄마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건 미셸이 청소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게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엄마가 암에 걸리고, 상황은 심각하게 바뀐다. 엄마의 동생, 막내 이모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미셸은 영어를 잘 하는 막내 이모와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었다.
미셸이 엄마의 형제는 모두 세 명으로, 엄마는 둘째였다. 막내 이모가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서, 미셸과 엄마가 한국으로 휴가를 나올 때면 막내 이모집에서 먹고, 자고, 함께 여행하며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추억이 있었다.
하지만 막내 이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미셸의 엄마가 암 진단을 받는다. 미셸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가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엄마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엄마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고, 미셸은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많은 한국 음식을 떠올리며 한국 음식을 만들어 보려 한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지고, 미셸과 아빠만으로는 엄마를 간병할 수 없어, 엄마와 친한 한국 아주머니들이 번갈아가며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음식을 만들고, 엄마를 돌본다. 미셸은 이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 엄마의 마지막 소원은 한국 여행을 하는 것이어서, 가족은 한국에 도착하지만, 곧바로 미셸의 엄마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고, 결국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셸은 엄마가 암으로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젊은 - 50대 후반 - 엄마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게 되자 충격을 크게 받는다. 마음이 준비도 하지 못했고, 이제서야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영영 사라져 버리고, 다시는 볼 수도, 이야기를 나눌 수도, 만져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고, 아픔이었다.
미셸이 엄마를 기억하는 방식은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거였다. 엄마가 만들었던 수 많은 한국 음식들을 기억하며, 자기가 직접 하나씩 음식 만들기에 도전한다. 미셸은 엄마가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는데,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희망과 기쁨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가 죽고, 미셸 부부는 마지막 남은 이모를 만나러 한국으로 간다. 이모는 영어를 못 했고, 미셸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지만, 이모가 죽은 엄마와 똑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엄마가 죽고, 한동안 그 아픔으로 시간을 보낸 미셸은 생활인으로 돌아가 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는 그동안 한번도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음악을 잘 하고 싶었고, 그들이 함께 하는 밴드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음악 활동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엄마는 미셸이 음악가가 되는 걸 반대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음악을 하는 예술가는 배고픈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엄마 생각이었고, 자기의 딸이 그렇게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밴드 활동을 하고 약 8년이 지났어도 이렇다 할 결과를 만들지 못한 상태였는데, 엄마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에 예전에 냈던 음반이 팔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셸의 밴드는 명성을 얻으며 미국 투어는 물론 유럽, 아시아 투어까지 하게 되고, 미셸이 쓴 글이 유명 잡지와 뉴욕타임즈에 실리면서 미셸은 음악과 글 모두에서 성공한다.
이 성공의 바탕에는 죽은 엄마의 이야기가 소재였다는 게 아이러니하고, 모든 걸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엄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미셸은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슬픔과 외로움으로 엄마를 추억한다. 미셸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한국 음식, 특히 김치를 만들기 시작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한국인'이라는 걸 뚜렷이 인식하며,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때 자기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미셸이었지만, 이제는 엄마의 피가 한국인이라는 걸 감사한다. 모든 것이 '한국인'의 삶의 방식 그대로였던 엄마에게서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게 삶의 태도를 배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괜찮은 건지를 깨달으며 미셸은 엄마의 깊은 사랑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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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한국전쟁의 기원 1 + 2-1 + 2-2 - 전3권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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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딩으로 받았습니다.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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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한국전쟁의 기원 1 + 2-1 + 2-2 - 전3권 현대의 고전 16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범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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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펀드로 참여한 책이 도착했다. 글항아리 에서 출판한 '한국전쟁의 기원' 완역본. 아침에 잠깐 서문만 읽었을 뿐인데, 80년대, 사회과학 공부할 때의 느낌과 기분이 내면에서 강하게 퍼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80년대에 1권만 번역되어 나왔지만, 곧바로 '불온서적'으로 찍혀 '판매금지' 된 책이었으며,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런 책이 이제서야 완역되어 나온 건 늦었지만 다행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소위 '우익'이라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그들이 숭배하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진짜 모습이 담겨 있으며, 이승만, 박정희의 뒤에서 해방된 한국의 미래를 결정한 진짜 실체가 미국이라는 사실을 원본 자료를 통해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미국(미군정)이 패전국 일본을 다루면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의 관료를 기용할 때, 일제부역자, 친일매국노를 재활용한 이유가 오로지 '쏘련'을 견제하기 위한 '반공'의 목적이었다는 사실, 국내 자생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고, 제주4.3 학살을 지시한 실체가 바로 '미국'이라는 걸 '우익'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책이 '불온서적'으로 판매금지되었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여러 상을 받은 훌륭한 저작이라는 건, 미국은 시간이 지나 이제는 공개한 1950년대 이전의 정부 비밀문서가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평범한 국민은 전혀 알 수 없었던 한국의 정치, 군사, 외교의 더러운 얼굴이 이 책에서는 '비밀문서'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독재자-이승만, 박정희, 전두환-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들이 미국의 극우 세력과 손을 잡고, 통일을 지향하는 국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국민을 어떻게 탄압했는지, 독재 정권을 유지하려고 반독재 운동을 하는 지식인, 학생, 언론인, 시민들을 어떻게 고문하고, 살해했는지를 '극우'들은 알아야 한다.
단지 이념의 차이로 인한 증오의 발산은 '극우'가 얼마나 무지, 무식하고 어리석으며, 멍청한가를 증명할 뿐이다.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객관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권력의 꼭둑각시가 되거나, 앞잡이로 전락해 소모품이 될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현대사를 알려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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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3-06-0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지만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마루프레스 2023-06-05 15: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다양한세상 2023-06-05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시리즈는 안본상태인데요, 혹시 브루스커밍스의 다른 책인 ‘한국전쟁‘이라는 책의 내용이 중첩되는책인가요? (물론 이 책도 안봤어요)

마루프레스 2023-06-05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은 2017년에 출간했더군요. 이 책과는 다른 책입니다.
 
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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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흐르는 곳에 - 스티븐 킹

해리건 씨의 전화기
크레이그는 아버지와 함께 작은 시골마을에서 산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지만, 그의 마음에 깊은 슬픔이 일렁이고 있다. 스티븐 킹은 어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줄곧 형과 엄마, 세 식구가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이 소설에서는 엄마로 바꿨을 뿐, 그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크레이그는 마을에 이사 온 엄청난 부자로 은퇴한 해리건 씨를 알게 되고, 그의 집에서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소설이 독특한 점은, 그동안 IT와 관련해 거의 언급한 적이 없는 스티븐 킹이 아이폰, 아마존을 비롯한 첨단 정보산업과 미국 투자회사와 관련한 정보를 나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해리건 씨가 은퇴하기 전 투자를 통해 억만장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배경에 깔아놓는다.
해리건 씨는 크레이그에게 일 년에 네 번 카드를 보내는데, 그 속에 복권을 함께 넣었다. 우연히 그 복권이 당첨되었고, 해리건 씨는 당첨금을 애플 주식에 투자하라고 권한다. 이때 애플에서 막 '아이폰'이 나오기 시작했고, 크레이그는 생일선물로 '아이폰'을 받았으며, 해리건 씨에게 '아이폰'을 선물한다.
크레이그의 성장소설이면서, 해리건 씨와의 인연으로 발생하는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을 담고 있지만, 스토리는 진부하다. 다만 그동안 스티븐 킹의 놀라운 이야기 솜씨처럼, 이 소설도 읽는 즐거움이 있다. 매우 핍진하게 담겨진 에피소드는 서사의 사실성을 높이는 배경이 되고, '아이폰'의 등장, 억만장자의 죽음과 상속, 크레이그가 유산의 일부를 물려받는 행운, 물려받은 유산으로 '아마존'에 투자하는 내용 등에서 스티븐 킹이 말하고자 하는 '유머'는 다 읽을 수 있지만, 그건 지금에 와서는 조금 낡아버린 이야기가 되었다.
또한 크레이그가 해리건 씨의 장례식에서 죽은 해리건 씨의 옷에 그의 '아이폰'을 몰래 집어 넣은 다음, 시간이 지나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설정은 재미있지만, 충격적이지는 않다.
크레이그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크레이그는 그것이 죽은 해리건 씨가 영적인 힘을 발휘한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지만, 그건 미스터리로 남겨 둔다.

척의 일생
독특한 형식의 소설. 시간의 흐름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척 크란츠'의 짧은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단편소설 세 편의 연작으로 구성했다. 각 연작에 등장하는 인물은 공통점이 없으며, '척 크란츠'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마티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강력한 지진으로 캘리포니아의 아래쪽이 떨어져 나가면서 인터넷과 전기가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도시에도 거대한 씽크홀이 생기고,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듯한 분위기에서 도시의 광고판과 텔레비전, 인터넷에 모두 '척 크란츠'를 애도하는 광고가 뜬다.
'척 크란츠'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의 없다. 그럼에도 '척'은 도시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다. 마티는 고등학교 선생이고, 이혼한 아내 펠리샤와 잘 지내고 있다. 미국은 거대한 지진이 발생해 대륙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하고, 지구 전체가 불안정한 상태로 그려진다.
두 번째 작품에서, 재러드 프랑크는 길거리 공연으로 드럼을 친다. 사람들이 거의 반응 없이 지나가고, 재러드가 조금 실망하고 있을 때, 양복을 입고 가방을 든 '척'이 그 앞을 지나가다 재러드를 보고 걸음을 멈추고 드럼 연주를 듣는다. 그러다 '척'은 혼자 춤을 추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조금씩 걸음을 멈추고 '척'의 춤과 재러드의 드럼 연주를 구경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구경을 하던 재니스가 '척'의 춤 상대가 되어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사이였음에도 완벽한 춤을 추며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다. 이 장면은 삶의 한 순간,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을 그린 것으로, '척'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세 번째 작품에서, 척은 어릴 때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된다. 그는 친할머니,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며 학교에서 춤동아리에 들어가 춤을 배우고, 회계사가 되어 살아간다. 그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지켜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깊은 슬픔의 시간을 보낸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 상실감, 안타까운 감정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지만, 그들의 내면에 일렁이는 슬픔의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본질의 감정이기에, 해결할 수 없고, 해소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개인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 작품은 공포, 스릴러, 호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담담하고 담백한 내용으로, '척'의 일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삶에 슬픔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피가 흐르는 곳에
'피가 흐르는 곳에 특종이 있다'는 언론계의 관용어에서 온 제목. 중편이라기에는 긴 편이고, 거의 짧은 장편 길이인데, 이야기는 단순하다. 한 초등학교에 소포가 배달되고, 그 소포에는 폭탄이 들어 있었으며, 폭탄이 터져 수십 명의 어린이가 죽고 다치게 된다.
당연히 모든 방송국과 언론사에서 학교 앞으로 취재를 나오고, 치열한 보도 경쟁, 속보 경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사립 탐정인 홀리 기브니는 텔레비전에서 리포트를 하는 체트 온도스키를 본다. CCTV에 찍힌 범인의 얼굴이 공개되고, 현상금이 걸리지만, 범인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홀리는 우연히 발견한 리포터 체트에게서 설명할 수 없지만,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참사 현장에서 보도하는 그의 태도나 현장을 중계하면서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에서 그가 참사를 '즐기고' 있다는 기괴한 느낌인데, 처음에는 홀리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체트가 폭탄을 배달한 범인과 같은 인물이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전혀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발상이었지만, 홀리는 그 의심을 갖고 체트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참사에 체트가 현장에 있었으며, 그가 참사를 일으켰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증거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전직 경찰이자 범인의 몽타쥬를 그리는 일을 오래 했던 노인을 만나면서, 그 노인이 수십 년 동안 체트의 뒤를 추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가 모은 구체적 자료를 보면서 홀리의 직감이 옳았다는 걸 확인한다.
체트 온도스키는 분명 '인간'이지만, 그는 인간 이상의 존재이며,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작가는 체트 온도스키가 어떤 생명체인지 밝히지 않는다. 다만 '제2의 인간'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종류의 인간은 자기 외모를 바꿔가면서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산다.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온 인간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외계에서 온 전혀 다른 생명체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체트가 외모를 바꾸는 장면이 딱 한 번 나오는데, 물리적인 몸뚱아리가 출렁거리며 외모를 바꾼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인간종일 수 있고, 외계 생명체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체트 온도스키라는 한 인간이 동시에 여러 사람으로 변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 미국에서 벌어진 수많은 참사를 저지른 범인이라는 점이다. 크고 작은 폭탄 폭파 사건,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이 아닌, 인간과 다른 종이라는 설정에서 이 소설은 환타지 소설로 분류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 벌어진 수많은 참사를 보도하며 '즐거워 하는' 언론사의 본질을 비판한 것으로 본다. 
즉, 언론은 '피가 흐르는 곳에'서 자기들의 먹이가 많다고 좋아한다. 그들은 겉으로는 애통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즐겁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참사 보도는 기본적으로 자극적이고, 사람들은 자극적인 뉴스를 좋아하며, 시청률이 높아지면 광고가 많이 들어오고, 광고가 많아지면 방송사, 언론사는 돈을 더 많이 벌게 되고, 언론 자본은 부자가 되며, 그곳에서 일하는 언론 노동자는 더 많은 임금, 보너스를 받는다.
사회에서 비극이 더 많이 발생할수록 상대적으로 언론은 행복해지는 이 아이러니를 스티븐 킹은 '괴물'로 표현한 것이다.

드류 라슨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단편소설을 여섯 편 쓴 작가다. 그의 단편소설이 '타임'에 실릴 정도로 괜찮았는데, 장편소설을 쓰지 못한 컴플렉스가 있다. 그는 곧 안식년을 맞이하게 되고, 과거에 장편소설을 쓰려다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어 불안하지만, 어느 날, 문득 완벽한 장편소설 이야기가 떠오른다.
드류 라슨은 아내와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버지 때부터 쓰던 별장으로 가서 장편소설의 앞부분을 쓰기로 작정한다. 별장은 몹시 외진 곳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잡화점이 20km 떨어진 곳에 있고, 전화와 전기는 들어오지만 휴대전화는 사용할 수 없으며, 전기와 전화도 언제 끊길 지 알 수 없는 산골이다.
소설을 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작가인 스티븐 킹이 이미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보여주었다. 대표적으로 '샤이닝'이 있고, '미저리' 역시 그렇다. 작가는 '글쓰기'가 곧 자기 정체성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매우 행복한 반면 그만큼의 무게로 공포와 두려움도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드류 라슨은 지난번 장편소설의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이번에는 좋은 작품을 쓰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는 완벽하게 준비를 마치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산골 오두막에서,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선명한 소설의 이미지를 글로 옮긴다.
모든 것이 훌륭했고, 드류 라슨 자신도 이렇게까지 글이 잘 써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소설은 처음부터 훌륭하게 시작했다.
그러다 폭풍이 몰려오고, 집 주위 나무가 쓰러지면서 창고를 덮치고, 드류 라슨은 문앞에서 기절한 쥐를 발견한다. 쥐를 멀리 내던질 수도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드류 라슨은 쥐를 벽난로 앞에 놓아둔다. 그리고 다음 날, 쥐는 사라지고, 나흘 뒤부터 드류 라슨은 글쓰기에 문제가 생긴다. 처음 장편소설을 쓸 때처럼 트라우마가 작동한 것이다.
그때 쥐가 나타나 드류 라슨에게 제안한다. 소설을 완성하도록 돕겠다. 단, 소설을 완성하면 네가 좋아하는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 그래도 하겠는가. 드류 라슨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소설을 완성하고픈 욕심에 쥐와 거래한다.
작가의 욕망이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보다 크다는 걸 작품은 말한다. 사실 이런 소재는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평범한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대단히 드라마틱하지도, 공포와 호러와 피가 튀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심심하다.
차라리 외딴 집에서 겪는 공포를 다룬 단편이었다면 어땠을까. 말하는 쥐와 거래한다는 내용은 동화처럼 읽힌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명을 잃는 건 우연이었지만, 드류 라슨은 죄책감을 갖는다. 삶은 그런 우연과 죄책감이 동시에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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