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좌파의 역사 - 모두, 좌현으로!
장 이브 르 나우르 지음, 마르코 그림, 소서영 옮김 / 팬덤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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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좌파의 역사

이미 오래 전부터 '좌파'는 상품성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좌파' 따위에 관심이나 가질까.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을 절정으로 좌파는 사라지고, 약간의 학생운동과 약간의 노동운동, 약간의 '진보적' 정당만이 자신을 '좌파'라고 주장하거나, 수구 집단에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레토릭으로 '좌파'를 써먹을 뿐이다.
'좌파'는 한국에서 '빨갱이', '공산당', '친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추종자', '노동조합', '노동운동'의 대명사로 쓰이며, 수구 집단의 공격 무기로 전지전능한 흉기로 작동하고 있다.
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체제에서 민주주의 운동을 할 때도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NL, PD 같은 그룹으로 나뉘어 사상투쟁을 벌였다. 그래서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까지 생겼다.
한국에서 '좌파'의 활동이 사라지는 시점과 자본주의가 더욱 강하게 뿌리를 내리는 시기는 비슷하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가 민간 정부로 시작하면서, 군부의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 같은 개혁 정책도 있었으나 결국 외환위기를 맞으며 침몰하고, 김대중 정부 이후 '좌파'는 부르주아 정치세력으로 스스로 걸어들어 가거나, 흡수된다. 이후 좌파의 전위여야 할 노동조합은 경제투쟁에 집중하고, 국가의 부가 늘어나면서 노동계급의 중산층화는 대중의 개혁 의지를 소멸시킨다. 이제 대중은 '개인'의 욕망에 집중할 뿐, 더 이상 역사 발전의 주체인 '노동자' 또는 '민중'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주5일, 최저임금, 의료보험, 각종 복지정책의 혜택을 누리는 건 지배계급이 마음이 좋아서 내려준 시혜가 아니라는 걸 배워야 한다. 오늘같은 세상이 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행복은 자신이 어느 계급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을 통해 자기 권리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개인의 '노오오오력'은 지극히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좌파'의 시작과 기본 이념은 지배계급인 왕, 귀족, 부르주아, 자본가에 맞서 노동자, 농민, 대중의 민주주의 권리와 인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1990년대 쏘련의 붕괴와 동서독 통일 이후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는 것이 다수의 결론이다. 여기에 중국도 경제 작동을 자본주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자본주의는 지구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채택한 경제체제이자 정치경제학적 배경이 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발달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좌파'의 역사라면 딱딱하고 복잡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이 정도로 쉽게 설명한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16세기 토마스 모어부터 현대까지 공상적 사회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태동,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투쟁, 사회주의 이론가들의 이합집산과 공산당의 발생, 유럽에서 발생한 몇 번의 혁명과 혁명가들의 죽음, 레닌이 일으킨 볼쉐비키의 러시아 혁명, 프랑스 좌파의 여러 그룹들과 그들 사이의 갈등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이 책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유럽에서 19세기에 이미 사회주의, 공산주의 활동이 무르익고, 1차 세계전쟁 와중에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러시아 혁명의 영향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당시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도 공산주의자 활동과 공산당 조직이 탄생하게 된다.

이때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이론의 무기로 채택되었고,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대륙의 약소국가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무기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치민, 북조선의 김일성 등이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으며, 가장 먼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쏘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지금도 이들 나라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모든 대륙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러시아 혁명의 충격파를 통해 전달되었고, 한국은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에 이어 1920년 최초의 공산주의자 정당이 탄생한다. 
2차 세계전쟁 이후 연합국이었던 쏘련과 미국, 유럽은 서로 다른 체제로 인한 갈등과 경쟁으로 '냉전'을 시작했으며 1950년 발생한 한국전쟁은 세계 냉전의 모순이 물리적으로 폭발한 강대국의 대리전 성격이자 한국의 이데올로기 내전이었다.

1960년대 이후 이른바 중진국, 후진국을 중심으로 군사쿠데타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 동시다발적 사태는 냉전 이후 체제 경쟁에서 앞서가려는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가 경쟁 체제인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였다. 반대로, 이 시기에 수 많은 나라에서 사회주의자를 중심으로 하는 무장 투쟁도 강하게 일어났다.
미국은 남미 여러 나라에 CIA를 투입해 돈과 무기, 인력을 지원하면서 사회주의 반대 투쟁, 극우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다. 이때 쿠바의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역사의 전면에 떠올랐고,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1960년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이 발발했고, 민주주의 국가를 향한 첫 걸음을 떼었지만, 1961년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극우 세력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세계의 좌파 역사를 다루지 않고, 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좌파 역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만든 좌파의 시작과 그 발전의 역사를 매우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또한 좌파의 역사를 거대 담론과 함께 사회주의자의 계보, 공산주의자의 계보를 비롯해 유명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와 그들이 만든 수 많은 단체와 정당, 노동조합 등이 어떻게 갈등을 일으키고 이합집산하는가를 알 수 있는 쉬운 자료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역사를 배우려면, 여기서 기본 상식을 이해하고, 보다 구체적인 각 나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좋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는 이미 꽤 많은 책이 출판되어 있으며, 흔히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책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좌파'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가장 기초적인 책으로 이 책 '만화로 보는 좌파의 역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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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조 사코 지음, 정수란 옮김 / 글논그림밭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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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작가 : 조 사코
출판 : 글논그림밭

만화책이지만,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이 만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정면에서 그리고 있다. 
우리는 중동의 역사에 대해 많은 부분 무지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접점이 약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너무 심하게 미국과 유럽 쪽 역사에 편향된 교육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동 뿐이랴. 아프리카의 역사는 어떤가. 우리가 수단이나 나미비아, 탄자니아 같은 나라들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강자의 역사, 승리한 자의 기록, 편향과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일 뿐임을 새삼 깨닫는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역사를 말할 때도 우리는 미국의 '백인'들이 기록한 역사를 읽고, 판단한다. 미국인-주로 백인-들이 가장 충격적인 책으로 꼽는 것이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인데, 미국인의 주류인 백인들도 '미국민중사'에서 말하는 역사의 내용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그렇듯, 어느 나라의 역사든 기록은 왜곡되고, 편향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어떤가. 심지어 자기나라의 역사조차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려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세계사라니.
결국 이런 역사 공부를 하려면 혼자 책을 찾아 읽는 방법 외에는 없다. 올바른 세계관을 갖기 위한 가장 첫번째 단계는 '역사'를 올바르게 공부하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거나 배우지 않거나, 잘못 배우면, 그 위에 쌓는 지식은 모두 잘못될 수밖에 없다.
이 만화책에서 작가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기억하지 않거나, 기억에서 멀어진 1956년의 학살 사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 든다.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사람, 남자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 놓고, 수 백 명을 학살한 사건인데, 이런 처참한 학살 행위가 UN보고서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1947년 이후 오늘날, 지금까지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으며, 그 뒤에는 미국과 영국이라는 강대국이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의 여러나라들도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을 돕지 못하거나, 않는 이유는 그들 내부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즉,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와 결탁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집권층이 존재하는 나라는 '친서방' 국가로 분류되고, '반미, 반유럽'을 외치는 나라들은 미국에 의해 '테러국가'로 낙인 찍히고 미군의 침략에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운명을 갖는 것이다.
거대한 역사는 추상적이지만, 이렇게 개인의 운명을 다루는 미시적 역사 기록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입장이라면 과연 어떨까.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와 비교하면 어떨까.
저항하다 죽는 것과 굴종으로 살아가는 것, 오로지 그 두 가지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당신은. 

조 사코는 '코믹 저널리스트'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만화(그래픽노블)라는 형식에 시사(국제문제, 정치, 경제, 인종, 분쟁 등)를 담아 기록한 것으로, 기존의 글로만 기록했던 저널리즘의 지평을 확대하고, 대중에게 하나의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역시 '가자 지구'에서 1956년 11월 12일에 발생한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현재 시점과 과거 상황을 오가며 이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형식은 만화지만 영상으로 그대로 옮겨도 될 만큼 형식미도 뛰어나다. 작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과정과 어렵게 만난 학살생존자 또는 그의 가족, 친척들의 구술을 통해 과거를 재현한다. 
1956년 11월 12일,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지만,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은 간단치 않다. 이 시점(1956년)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이스라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점령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고, 유대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은 2차 세계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 가운데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가 유대인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유대인들에게 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당한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 1948년이고, 이때부터 중동 지역에 분쟁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는 이슬람을 종교로 갖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어서 종교적 갈등과 함께 영토 분쟁도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집트의 국내 정치 상황과 이슬람 패권주의, 이집트와 영국, 프랑스, 미국 사이에 벌어진 수에즈 운하 국유화 사건, 이집트 내부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온건파 사이의 갈등,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정치적 긴장, 범 이슬람 진영과 범 친미 진영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 등 복잡한 양상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기존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동에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고, 여기에 이스라엘은 이들 제국주의 국가들을 든든한 배경으로 업고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과 전쟁을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다.

자신들이 살던 땅을 유대인들에게 뺐긴 것도 억울한데, 이집트와 이스라엘 전쟁 때 이스라엘군에 쫓겨 어쩔 수 없이 가자 지구로 들어온 사람들은 허허벌판에서 움막을 짓고 살아야 했다. 마치 한국에서 남북한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땅에서 거지처럼 살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은 자신의 집, 재산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맨손으로 가자 지구로 들어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마져도 이스라엘군의 감시와 통제, 예측할 수 없는 학살로 인한 공포 속에서 늘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극우파를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들 극우파는 주변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보다는 폭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했고, 11월 2일 가자 지구를 침략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 남성들을 밖으로 끌어내 아무 이유 없이 집단 학살을 시작했고, 학살당한 사람은 최소 수백 명에 이른다. 생존자의 증언, 생존자 가족, 친지, 이웃의 증언, 학살당한 가족, 친지, 이웃, 친구의 증언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기록되기 시작한다.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인 아베드와 함께 다니며 5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그때의 생존자를 찾아나섰고, 그 과정을 최대한 면밀히 기록한다. 그가 조사와 취재를 위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을 때도 역시 이스라엘군에 의한 침탈과 학살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0년 전과 현재가 똑같다고 말한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 1,417명이 죽었는데, 이 가운데 352명은 어린이였다. 5,300명이 부상당했으며 시가지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체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미쳐날뛰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고,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히려 화를 내야 함에도, 이스라엘은 폭력으로 이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
유대인의 선민의식, 유대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을 고려한다 해도,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저 미치광이의 태도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1956년에 일어난 가자 지구 학살 사건만 해도, 유대인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히틀러에게 당한 집단학살의 트라우마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였는데도, 유대인들은 독일군이 저지른 야만적 행위만큼이나 악랄한 집단 학살을 저지른다. 대체 왜?
분쟁의 불씨를 만든 것은 미국과 영국이었고,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떠돌아 다닌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물리적 형태의 '국가'가 절실했다. 결국 피해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오랜 동안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고, 멀쩡한 자기 집을 어느 날 갑자기 뺐기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황당한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이 점령지를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거주지는 극적으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1948년에 비하면 1/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영역에서, 그것도 지리적으로 분리된 상태로 서로 오가지도 못하는 강제된 분단의 처지에 놓여 있고, 가자 지구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곳은 이스라엘군이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어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자면, 일본군이 지금 서울 면적에 한국인 5천만 명을 집어 넣고, 서울 외곽 경계에 높은 담장을 두르고, 서울에서 나가거나 들어올 때마다 검문, 검색을 하며, 아무런 통지 없이 출입문을 닫아 걸고 몇날 며칠을 통행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필품도 부족하고, 인구 밀도는 엄청나게 높고, 경제 활동이랄 것도 없어서 거의 대부분이 실업자가 되고,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한 빈곤층이 90%에 이르고, 상하수도를 비롯한 기반 시설이 붕괴되어 거의 원시상태에 가까운 삶이라면, 폭동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일본군과 싸우고, 자살폭탄테러를 하는 것이 최후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누구를 원망하게 될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놓여 있는 현재의 삶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방 사회 즉 제국주의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몸부림을 '테러'로 규정한다. 그리고는 마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대등한 상태에서 '분쟁'을 하고, 전쟁을 하고 있다고 떠들고 있다.
현실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폭행과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나가고 있으며, 지난 60년 동안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악의적으로 왜곡,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과거 유대 민족처럼 '국가'가 없고, 중동 지역에 흩어져 살던 민족이어서 지금 처절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의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고, 가해자 이스라엘의 악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의 팔레스타인 현실은 실재하는 지옥이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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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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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프로메테우스, 촛불, 헤라클레스
조국, [조국의 시간]을 읽고

신의 아들이었던 프로메테우스는 어리석은 인간을 위해 스스로 위험한 상황을 비켜가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제우스에게 받치는 인간의 제물을 만들었으며,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의 전략에 분노해 인간에게서 불을 빼앗자 다시 제우스를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몰래 가져다 주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한 신'이자, '인간의 옹호자'이며, '선지자', '먼저 생각하는 자'로 알려졌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신'의 존재였으나, 나약한 인간을 위해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오길 마다하지 않았다. 
조국 교수는 자기가 금수저임을 인정하며며,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도 조국 교수가 금수저이면서 우월한 유전자의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서울대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강남 거주, 모델 뺨치는 외모 등 단 하나도 빠지지 않는 조국 교수는 상위 0.01%의 특별한 존재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제우스가 인간에게서 뺐은 불을, 인간을 위해 다시 가져다 준다. 그러다 제우스가 분노하고, 그에게 벌을 내린다. 코카서스 산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조국 교수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 집단, 엘리트를 위한 검찰의 기득권을 해체해 국민에게 사법평등을 이루도록 노력했으나, 야당, 검찰, 언론의 집단 공격을 받아 가족이 멸문지화의 화를 당하고, 조국 교수는 물론, 가족들까지 심한 내출혈로 죽음의 아가리에 빠지기 직전에 놓여 있다.

검찰 권력은 마치 제우스의 분노처럼, 한국사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이었으며, 한 사람을 찍으면, 그 사람은 만신창이가 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집요하고 잔인하며, 악랄하다. 살인자도 피해자를 칼이나 둔기로 한번 휘두르고 마는데, 검찰은 권력의 칼과 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검찰이 찍은 대상이 난자당하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싸이코패스와 같다.

검찰은 일제강점기부터 막강한 절대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자를 때려잡으려는 목적으로,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 정권에서 사회주의자, 진보인사를 때려잡으려는 목적으로, 박정희, 전두환 소장이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이후에는 반정부, 민주주의자를 때려잡으려는 목적으로 검찰은 권력자의 의도에 따라 '반정부' 민주주의자들을 범죄자로 만들어왔다.
김대중 정부 이후 검찰은 더 이상 권력의 의도에 맞는 기소를 하지 않아도 되면서, 검찰은 검찰 스스로가 최고의 권력기관이자,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검찰 출신은 한국 최고 엘리트이면서, 정치를 포함해 상위 권력그룹, 상위 경제그룹에 포함되는 위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통제되지 않는 검찰 권력을 통제하지 않고, 그들의 자정 능력을 기대했으나, 결국 검찰의 잔인한 보복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목숨을 스스로 끊어야 하는 '사회적 타살'을 맞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촛불시민들은 9년이 지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문재인 비서실장이 권력을 잡도록 이끌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검찰 개혁을 하라는 것이 촛불시민의 지상명령이었다.
그리고,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조국 민정수석이 지목되었다. 선출직 국회의원이 되거나, 임명직 법무부장관이 되는 것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였다. 어느 길이든 한쪽으로는 가야만 했다. 조국 교수는 대학교수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기에,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 법무부장관을 선택했다.

프로메테우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제우스를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그럼에도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선택했다. 그가 인간을 버렸다면, 신으로서 안락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조국 교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민정수석을 마치고 대학교수로 복귀하면 그는 최고의 엘리트, 강남의 상류층으로 늘 존경받으며, 넉넉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하지만 조국 교수는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해체하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확산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제우스의 분노로 프로메테우스는 쇠사슬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조국 교수는 검찰이 휘두르는 권력의 칼과 창과 쇠스랑과 도끼에 찍혀 만신창이가 되었다.
프로메테우스를 구한 건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는 신 제우스와 인간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이다. 인간이 신을 구한 것처럼, 엘리트이자 강남좌파 조국 교수를 구한 것은 서민인 촛불시민들이다.
촛불시민은 무능하고 부패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서 끌어내렸으며, 검찰이 휘두른 권력의 칼날로 신음하는 조국 교수와 그의 가족을 촛불을 들어 구했다. 

프로메테우스가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에게 불을 건낸 것처럼, 조국 교수도 자신의 고통을 끌어안으며 검찰 개혁을 우리 사회에 안겨줄 것이다. 이미 그 단초는 시작되었고, 조국 교수가 쓴 '조국의 시간'은 촛불시민이 서초동에서 들었던 촛불처럼, 한권, 한권이 촛불처럼 빛나며 검찰의 무도한 권력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 길에 프로메테우스의 헤라클레스처럼, 조국에게는 촛불시민이 함께 한다. 조국은 개인이면서, 검찰개혁의 아이콘이자, 상징이다. 그 상징을 빛내는 것이 바로 촛불시민이고, [조국의 시간]을 든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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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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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님, 항상 힘차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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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물을 믿지 마
김이정 지음 / 강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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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물을 믿지 마

김이정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3, 4년 전쯤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김이정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때 만난 작가들 가운데 박정애, 권지예, 정길연, 이경혜, 해이수, 이지 작가들이 있었고, 나는 운 좋게 그곳에서 얼마간 머무를 수 있었다. 작가를 만났다고 해서 그 작가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개의 작가들은 진짜 자기 모습은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자기 모습은 드러내되, 자기 창작의 내면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에게 내밀한 지하공간이며, 무수히 많은 창조의 단어들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기에 섣불리 보여줄 수도, 드러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세 끼의 밥을 맛있게 먹고, 저녁 때는 가끔 내가 만든 간식들을 나눠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밥 먹는 시간이나, 가끔 산책하는 시간 외에는 모두 창작실에서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아마 스님의 하안거, 동안거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품들은 2014년 이후 1년에 한 편 정도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시기는 다르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인도, 포르투칼, 스페인, 베트남, 영국에서 떠나온 한국을 생각하고, '나'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한다.
인물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는 동기는 무언가에 떠밀리듯 한 비자발적이고 충동적인 행위 때문인데, 이때 이런 비자발성은 '나'의 내면에서 발생한 충격 또는 갈등이 원인이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인들에 의한 학살 사건을 조명한 작품 외에는 모두 '나'의 충동적 여행이고, '나'는 여행을 통해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의지와 함께, 현실을 객관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무의식적 행동을 한다.

퍽 오랜만에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베트남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이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쟁범죄라면, '나'가 외국에서 겪는 에피소드는 바깥에서 나를 보는 객관의 시선이다. '나'는 늘 온전하지 않은 삶으로 고통스러운 인물이다. '나'는 사업이 파산한 남편과 이혼하거나, 위암에 걸리는 등 자기 의지와 상관 없는 고통을 겪는다. 이때 '나'가 할 수 있는 건 현실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 뿐이다. 그때 현실(한국)은 더욱 엉망진창이 되거나, 알아서 수습이 되거나 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운명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고, '나'는 그저 폭포처럼 쏟아지는 운명을 감당할 뿐이다.

프리페이드 라이프
'나'는 무언가에 홀린듯,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떠밀리듯 한국을 떠나 인도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우연히 보게 된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 큰 이유라고 말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존재로 버티고 있었다. 마치 좀비처럼.
'나'는 한국에서도, 인도에서도 음식을 먹지 않는다. 마치 좀비처럼. 그가 유일하게 음식에 관해 언급한 것은 인도의 중국음식점에서 주문한 '한국 수제비'이야기였다. 그것도 음식을 먹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에게 음식은 절실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에게 음식보다 더 절실한 것은 존재에 대한 확신이다. 그는 집안의 빚 때문에 이혼을 했고, 가족을 부양하면서 빚을 갚아야 했던 오랜 시간이 있었다. 그는 빚에 짓눌리고, 찌든 삶을 살아가느라 자기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버스의 룸미러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기겁한 것이다. 그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나'이면서 '나'는 아니다. '나'는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글을 쓰지만, 그는 왼손을 쓴다. '나'는 오른손잡이지만 거울 속의 '그'는 왼손잡이다.
'나'는 빚에 짓눌러 질식해 가고 있지만, 거울 속의 '그'는 빚을 지지 않았으면서도 서서히 말라죽어 가고 있다. '나'는 오랜 동안 빚을 갚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이미 오래 전에 끝났음에도 이승을 떠나지 못한 것이 빚으로 남아,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도의 갠지스강가 화장터를 오가며, 화장터에서 불살라 잿더미로 사라지는 육신을 보며,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히 바라보며, 마치 자기 자신이 그렇게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 갠지강에 뿌려지는 듯한 환상 체험을 하는 듯 보인다. 어쩌면 '나'는 정말 그렇게 고요히, 가볍게 장작 위에 놓인 시신이 되어 화염 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에게 인도는 '저승'이다. 그는 이승(서울)을 떠나 비현실의 세계, 실재하지 않는 세계, 빚독촉과 고통스러운 가족의 인연과 비루한 삶이 있던 서울을 떠나 저승 같은 인도로 온 것이다. 저승에서는 의식주가 중요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도 하찮아진다. '나'는 저승에서 지난 삶을 돌아본다. 그 삶은 과연 살만했던 삶이었을까. 삶의 의미는 있는 걸까, 비루와 오욕으로 더럽혀진 삶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만 준 것은 아닐까. 한때 미워했던 사람들 마져도, 나의 탐욕과 욕망과 이기의 투사는 아니었을까.
'나'는 이승(한국)에서 견딜 수 없어 자발적으로 저승(인도)으로 온 사람이다.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돌아갈 의무도, 책임도 없다. 하지만 이승(한국)에는 여전히 가족들이 있고, 그가 돌봐야 할 식구들이 절망과 슬픔의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혼자 이승(한국)을 떠난 것조차 죄스럽기만 하다. '나'는 망자들의 영혼이 건너는 갠지스강 위에서 '자신을 잃은 삶이야말로 가장 부도덕한지도 몰라. 어떻게든 나를 회복하기 위해 애쓸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어쩌면 살아서 이승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미 연꽃
호아, 서 하사, 광희. 1968년, 1998년. 2010년. 베트남 하미 마을에서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집단 학살 사건을 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박정희 정권에서 한국군은 베트남 파병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받았다. 이것은 마치 '한국전쟁'으로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에서 극적으로 부활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군사독재정권은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한국군대를 베트남에 파병했고, 병사들의 죽음과 돈을 맞바꿨다.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의 자식들이었던 '한국군인'들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동료를 위해 싸웠고, 동료의 죽음을 보며 괴물이 되어갔다.
베트남 민중은 죄 없이 학살당했으며, 이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수많은 주민학살과 똑같은 내용과 의미를 갖는다. '한국군'은 '한국전쟁' 때 자기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고, 베트남에서도 주민들을 '빨갱이'라고 덮어씌워 학살했다. 
학살을 명령한 주범들은 영웅이 되어 돌아왔고, 그들은 거들먹 거렸으며, 훈장을 받았고, 부자가 되었으며, 권력을 누렸다. 병사들 가운데 자신이 저지른 학살을 자랑스럽게 떠드는 사람이 있었고, 서 하사처럼 평생 정신병원에 갇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삶을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
오로지 제국주의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으킨 사악한 전쟁에서 총알받이로 나갔던 한국군은 미군보다 더 잔혹한 살인귀가 되어 베트남 주민들을 학살한 것이다. 이것은 씻을 수 없는 전쟁범죄이며,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를 지금도 비난하듯,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베트남 국민에게 우리는 비난당해도 마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가해자의 시각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가능한 객관의 시선으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작품이 그동안 한국문학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여전히 베트남 전쟁에서의 (일부) 한국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우리가 가해자로서 저지른 범죄에 관해 가르치지 않고 있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에서, 우리는 제국주의 일본의 강점기에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관해서는 꾸준히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학살 범죄에 관해서는 가능한 침묵하려 한다. 이것은 명백히 범죄를 은폐하는 또 다른 범죄다. 독일처럼 기회가 될 때마다 대통령과 총리가 공식 사죄를 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역사적 처벌을 함으로써,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죄 없는 사람들의 도시
'나'는 엄마의 장례와 삼우재를 지내고 도망치듯 리스본으로 온다. 호스텔에서 머물며 리스본의 거리를 배회하면서 '나'는 엄마가 죽어가는 과정을 돌아본다. 갑작스러운 죽음. 죄 없는 사람의 불행. 그것은 리스본에 닥쳤던 18세기 지진과 해일로 리스본에 살던 사람 약 25%가 죽은 사건과 중첩하면서, 삶과 죽음에 관해 내면으로 침잠하는 '나'의 생각을 좇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최근 나에게 닥쳤던 두 가지 사건과 30년 전에 있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갑작스러운 사건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죽음'을 이해하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가 아닌, 다른 사람일 때만 그렇다. 죽음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나'의 엄마는 아직 젊은 나이에 급성 백혈병(혈액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한다. 엄마를 바라보는 '나'는 많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죽음을 느끼지는 않는다. 죽음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이 딜레마는 단순한 안타까움이나 슬픔을 넘어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엄마는 고통으로 죽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건강하게 살며, 먹고, 마시고, 웃고, 섹스를 하고 있다는 것이 죄의식으로 남는 것이다.
'나'가 도망치듯 외국으로 떠나온 것은,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와, 자기 혐오를 달래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이다. 그리고 하필 포르투갈에 도착했고, 포르투갈의 18세기에 있었던 지진과 해일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때 죽은 사람들은 마침 휴일이었던 그 날, 신을 찬양하기 위해 성당에 모였고, 신의 공간이었던 성당이 붕괴하고 불이 나면서 비참하게 죽었다.
'나'의 엄마는 평생 육식을 하지 않았고, 바닥에 사는 작은 생물조차 죽이지 않으려 조심하며 살았지만,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괴로운 시간을 보낸 끝에 죽게 된다. 포르투갈 사람들도 선량한 시민들이었을테고, 모두들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병으로, 사고로 죽어간다.
'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앞으로도 영원히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조리한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던지는 것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 뿐이다.

믿지 마, 네 눈물은 누군가의 투신일지도 몰라
파산한 남자 이야기. 아내와도 위장 이혼하고-위장 이혼이라는 건 없다. 그냥 이혼을 했을 뿐-혼자 고시원을 떠돌며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당을 버는 남자는 오랜만에 집을 찾아오지만, 현관키가 바뀌어 들어가지 못한다. 
그는 한때 잘 나가던 사업가였으나 지금은 채권자들에게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으며,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은 남자다. 아내는 보험영업을 하며 먹고 살고, 아들은 아버지인 자신을 더 이상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친어머니처럼 생각했던 장모님도 파산 이후에는 딸의 눈치를 보는 것과 동시에, 사위에 대한 애정도 거두었다.
사내는 연락할 친구도, 도움을 받을 가까운 사람도 없다. 과거에 가까웠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돈을 보고 만났던 사람들이고, 사회와 현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냉정하고 삭막하다는 걸 사내는 깨닫는다.
사내는 배낭에 몇 가지 물건을 지니고 다닌다. 그것은 그의 삶을 끝내는 도구들이지만, 역설적으로 사내가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파산 이후,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내는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지만 약이 떨어져도 선뜻 약을 구입하지 못한다. 약보다 아내의 카드로 약값을 결재해야 하는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파산, 금치산자가 된 사내는 채권자에게 쫓기면서 정상의 삶을 살지 못한다. 그는 고시원의 관짝 같은 방에서 낮을 보내고, 야간 경비를 서며, 일당을 떼이고,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되어 간다. 가족들은 전화를 받지 않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문자로 묻고 답한다. 사내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는 이미 죽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퐁니
믿고 싶지 않겠지만, 베트남에서 벌어진 베트남-미국의 전쟁 때, 한국군은 미국의 괴뢰군으로, 여러 번의 학살을 저질렀다. 이 작품 역시 1968년 2월 12일, 퐁니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면이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들어오면서, 어린 탄이 한국군에게 초콜릿을 받아 먹은 것처럼, 한국의 어린이들은 미군에게 초콜릿을 받아 먹었다.
한국전쟁 때, 군대의 전투를 통한 군인의 사망이 아닌, 군대에 의한 주민 학살 사건만 해도 보도연맹, 거창 주민, 노근리 피난민, 경산 코발트탄광, 국민방위군, 고양 금정굴, 강화주민, 산청,함양주민, 남양주 주민, 함평 주민, 문경 주민, 죽산 주민, 나주 주민, 서울 홍제리 집단총살, 형무소 재소자 학살 사건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학살 사건이 있었다.
이런 학살 사건은 이념 전쟁이자 냉전의 대리 전쟁이었던 한국에서 벌어진 가장 끔찍하고 비극적 사건이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한을 안고 살아가는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어린이였거나 전쟁이 끝나서 태어난 청년들이 베트남에서 다시 이런 참혹한 학살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인류의 비극은 결코 멈춰지지 않을 거라는 암울한 예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생명의 존엄성을 말해도,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무차별 학살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고, 지금도 지구의 몇몇 나라에서는 내전 또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예외없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한국)는 오랜 역사에서 늘 피해자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고조선 이후 지금까지 이웃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고도 말한다. 우리는 평균 몇 년에 한번씩 적의 침략으로 전쟁을 치렀지만 지금까지 끝가지 살아남았고,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베트남 전쟁에서만큼은 우리는 가해자였으며, 전쟁범죄에 앞장 선 나라였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에 의한 한국인 주민 학살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한국인끼리도 남북한 군인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이 많았다. 이때 남북한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노인, 여성, 어린이까지 무차별 학살했다.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노인, 여성, 어린이를 학살했다.
이념을 앞세워 자신들의 학살을 합리화하려는 의도는, 전쟁범죄를 은폐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이같은 행위는 1980년 5월 18일 이후, 광주에서 똑같이 벌어졌다. 즉, 총을 든 악마들은 시대와 상관없이 늘 우리 주변에 있다는 뜻이다.
베트남 학살 피해자 가운데 극히 일부가 살아남았고, 그들은 그날의 상황을 증언한다. 그때 학살에 참여했던 한국군들을 찾아내 전쟁범죄자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정의다.

노 파사란
갑자기 한국을 떠나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한 '나'는 바깥에도 나가지 않고 거의 호스텔 안에서 잠과 잠을 반복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겨우 바깥으로 나온 '나'는 거리를 걷다 우연히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게르니카'를 보게 된다. 그 거대한 그림을 보는 순간, '나'의 내면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나'는 짐을 꾸려 '게르니카'로 향한다.
무작정 도착한 게르니카에서의 첫 인상은 즐겁지 않았다. 비가 내리고, 아이들이 강아지를 강매하려 하고, 호스텔 주인은 신경질을 부리고, 호스텔 입구의 체크인 카드기계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것이 엉망인 상태로 시작한 게르니카였지만, 다음 날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나'는 시내를 걷다 우연히 호스텔 주인 여자를 발견하고, 그 여자가 웃는 모습을 보면서, 어제 마귀 같았던 여자와 같은 인물인지 놀란다. 그때 아이들이 폭죽놀이를 하고, 주인여자와 함께 있던 노인이 탁자 아래로 기어들어가면서 올리브오일 병이 깨지는 등 가벼운 사고가 벌어진다. 
'나'는 다시 거리를 걷다 배가 고파 들어간 식당에서 우연히 다시 호스텔 여주인을 만난다. 첫 인상을 나빴지만, 대화를 하면서 여주인은 치매인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호스텔을 하면서 병원 조무사로도 일을 하는 등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치매 어머니가 낮에 한 행동은 1937년 4월 26일, 게르니카에 있었던 폭격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 폭격으로 어머니의 가족 모두 사망했고, 오직 어머니 혼자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 후유증으로 어머니는 치매 이후 여덟 살의 그때 나이로 돌아갔고, 큰 소리만 들리면 폭격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1937년, 게르니카에 쏟아진 폭격은 독일 나찌의 비행기에서 떨어진 폭탄이었다. 당시 스페인 내전이 벌어졌고, 프랑코는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 좌파 세력과 내전을 시작한다. 그때 독일은 프랑코를 지원했고, 공화파는 소련의 지원을 받긴 하지만 화력에서 열세였고, 결국 프랑코에게 패한다.
왜 이곳에 왔느냐는 주인 여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는 사업에 실패하고 파산한 남편이 위장 이혼을 하고, 혼자 고시원을 떠돌다가 6개월이 지났을 때, 갑자기 사망한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무작정 떠난 외국, 스페인, 게르니카, 폭격, 고아가 된 주인여자의 어머니와 남편을 잃은 '나'. 게르니카에 떨어진 폭탄처럼, '나'에게도 삶을 공격하는 고통과 채무의 폭탄이 떨어지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오열한다.

압생트를 좋아하는 여자
'나'는 영국에 사는 친구를 찾아간다. 14년만의 만남.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이지만, 친구의 남편은 몇년 전 심장마비로 죽었고, 아들은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그녀와 얽힌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고, 가난했으며, 딸이 무려 일곱이나 되는 집안에서 천덕꾸러기로 자랐다. '나'는 대학을 다니고, 교사가 되었지만, 친구는 대학 진학을 못했고, 어렵게 돈을 모아 영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두 사람의 운명은 갈렸지만, '나'는 결혼하고 남편의 사업이 파산한 이후 이혼을 당하고,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 잘 살고, 학교 선생으로 만족하며 살던 삶도 위암 판정을 받는 순간 부서져 내리는 걸 느낀다.
'나'는 위암 수술을 앞두고 영국에 있는 친구를 찾은 것이다. 두 사람은 과거의 추억과 기억에서 상처받은 시간과 숨겨두었던 슬픔을 꺼낸다. '나'는 친구에게 부채감과 죄의식을 갖고 있었고, 삶의 변곡점에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피카소가 그린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은 검은 머리에 붉은 목도리를 두른 여인이 녹색의 압생트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다. 진한 화장을 하고, 몸이 마른 여인은 왼쪽 손을 귀 근처에 대고 있는데, 마치 누군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들으려는 듯한 자세다. 오른손은 잔 위에 가볍게 다가갔다. 이 여인은 어쩌면 '창부'일 가능성이 높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피에르 오디넬이 치료용으로 만든 술인 압생트는 주류업자 페르노 리카르에게 넘어가서 대중에게 팔리게 되는데, 당시 프랑스 부르주아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이들과 함께 했던 고급창부(드 미 몽드)들이 특히 이 술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18세기 이후 유럽의 화가들 가운데 '압생트'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화가만 해도 피카소, 고흐, 드가, 마네, 로트렉 등 유명 작가들이 많다.

붉은 길
'그'를 찾아 인도에 온 '나'는 정작 그가 있는 '마이소르'에 가지 않고, '벵갈루루'의 한 숙소에 머문다. '나'는 산책을 나왔다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고, 낯선 길, 붉은 황토길을 걸으며 불안한 마음으로 '그'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이혼을 했고, 남편이었던 남자는 남미로 떠났다. 영어학원에서 처음 본 '그'와 가까워지지만 어느날 '그'는 인도 '마이소르'로 떠난다고 했다. '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떠난 인도행이지만, 막상 '그'가 살고 있는 도시로는 가지 못하고, 2시간 거리의 벵갈루루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나'는 현실에서도 길을 잃었고, 삶의 길에서도 길을 잃은 상태다. 그를 만나야 하는 건지, 만나서 어쩌자는 건지, 결혼 생활은 끝이 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낯선 길 위에서 초조한 모습으로 떨고 있는 것이 '나'의 모습이다.
인도에서 여성, 그것도 외국 여성 혼자 밤거리를 걷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얼마전에도 인도여성이 여러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결국 병원에서 죽은 사건도 일어났다. '나'는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제복을 입은 남성들에게 다가가 '스와미 아쉬람'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 스스로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 극도의 긴장 속에서 여러 명의 남자들과 함께 차를 타고 어느 장소에 도착한다. '나'의 약간의 오해 끝에 경찰이 데려다 준 곳은 '스와미 아쉬람'이었다.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그'를 찾으려는 마음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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