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끝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앤드)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해 여름 끝

옌롄커의 초기 작품. 중국문학에서 '신사실주의'를 만든 작품으로 알려졌고, 이 작품으로 옌롄커는 매우 위험한 상황까지 몰리는 탄압을 받았는데, 다행히 외국의 언론이 그를 살렸다. 중국정부는 옌롄커의 작품을 불온하다고 판정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이 소설은 단순하고 무겁지 않다. 현대 중국의 현실 가운데서 중국해방군 내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그것이 '불온'하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중국정부가 이 소설을 '불온' 딱지를 붙일 작정이었다면, 그것은 이 소설을 바라보는 중국정부의 관료들이 매우 편협하고, 스스로 잘못을 감추려는 불안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두었다면 이렇게 크게 난리가 나지 않았을텐데, 불구덩이를 함부로 쑤셔서 사건을 크게 만든 건 중국정부였다. 그래서 옌롄커의 이름은 더 널리 알려졌고, 그가 중국정부로부터 탄압당하는 작가라는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세계문학계에서 옌롄커의 이름은 확실히 각인되었다.

소설의 서사는 단순하다. 인민해방군 중대장 자오린과 정치지도원 가오바오신이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전우이며, 오랜동안 함께 복무한 처지라 서로를 형제처럼 가깝게 생각하고 있다. 두 사람은 승진에 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고향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베트남 전쟁 이후로 중국해방군은 심각한 전쟁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고 있으며, 날마다 훈련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의 삶에 심각한 고비가 닥친 건 총기보관소에 있던 자동소총 한 정이 사라진 이후였고, 두 사람이 총기를 찾으려 곳곳을 수색하지만 발견하지 못한다. 이 사건으로 문책을 당하게 될 경우를 예상하는 두 사람은 미묘한 신경전을 펼친다.
그러다 3중대 신임 병사 '샤를뤄'가 사라진 총기로 자살했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어린 병사 '샤를뤄'의 자살을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상부에서는 병사 자살사건을 두고 중대장 자오린과 정치지도원 가오바오신을 문책하기로 결정한다.
자살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일주일 가까이 감금당해 한 방에서 생활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마음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걸 느낀다.

'샤를뤄'의 자살 이후 오히려 상부에서는 두 사람을 심하게 문책하지 않고, 한 계급 강등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두 사람 모두 군대에 남게 되었으며, 벌점은 받았지만 더 노력해서 다시 진급하면 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이 소설이 중국 현대문학에서 '신사실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서사의 사실성에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중국 현대문학 작품에서 이만큼의 '리얼리티'도 확보하지 못한 작품들이 발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지만, 서사가 내재한 담론의 폭은 상당히 넓다. 군부 내부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한 것은 분명 충격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확률의 범위에 있다. 다만, 여기서 '샤를뤄'가 자살한 이유는 끝내 밝히지 못한다. 그의 부모도 아들 '샤를뤄'가 사회성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자살할 이유일 수는 없다.
중국 군대에서는 물리적 폭력, 따돌림 같은 건 생각하기 어려운데, 이는 인민해방군이 일본군이나 한국군처럼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제국주의 군대와는 다른,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군대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은 중국 국가를 이루는 양대 산맥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공산당'의 지도와 '인민해방군'의 역할은 최우선 가치를 지닌다.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오히려 군대 내부의 문제보다는 자오린이 끝내 버리지 못하는 '농민' 출신의 비애와 원한이다. 자오린은 가난한 시골마을의 농민으로 살다 어렵게 인민해방군에 입대한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농촌에서 유일한 탈출은 군인이 되는 것인데,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경쟁자들은 군대에 추천할 권한을 가진 촌장에게 뇌물을 주어야 한다. 
자오린도 촌장이 새집을 짓는 곳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일을 해주었고, 그의 친구가 경쟁을 포기하면서 군인이 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친구는 사고로 죽고, 친구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중대장이 된 이후 자오린은 휴가 다녀온 병사들이 가져온 작은 선물을 받는데, 그것이 뇌물은 아니지만, 병사들이 무언가를 가져다 바쳐야 한다는 중국 군대의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최저 생활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 배급제도 1993년 이후부터 사라지고 중국 인민은 정부의 도움 없이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공산주의의 정체성이 사라지면서, 인민은 각자도생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자오린이 아내와 딸들을 어떻게든 영내로 불러들이려 한 것도 농촌에서는 먹고 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와 '농민공'이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도시에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라도 하지만, 시골에서는 안정적 수입이 없고, 빈민을 구제할 지방정부도 없으니 생존 문제가 심각하다.

옌롄커는 군대 내부의 문제를 꺼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농민의 가난한 삶과 그걸 방치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무능 또는 무관심을 비판하고 있다. 자오린이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 가오바오신과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면서도 군대를 떠나는 상황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단지 명예 때문이 아니다.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문제가 동지와의 오랜 우정도 포기할 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자오린은 상상하지 못한 인연을 만나는데, 그의 부대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상점의 회계 왕후이를 만나게 된 사건이다. 자오린은 마흔이 넘은 사내인데, 양귀비, 서시보다 더 아름다운 왕후이가 자오린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결혼해서 아내와 두 딸이 있는 자오린은 왕후이의 접근을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아름다움과 열정에 마음이 흔들린다.
인민해방군 장교가 불륜을 저지를 수 있다는 설정은 중국 현실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자오린은 끝내 자기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왕후이와의 만남은 열린 결말로 두지만, 중국 인민의 결혼과 연애, 이혼 같은 사생활이 중국 정부의 경직된 태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옌롄커의 작품이 현대 중국을 살아가는 인민들의 구체적, 보편적 삶의 태도와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중국 인민의 비극성과 낙관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샤를뤄'의 죽음 이전과 이후에 보여주는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의 태도는 공산주의 사회 중국에서 개인이 가진 욕망의 표현과 '사회주의자'로서의 인민이 보여주어야 하는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소총 도난 사건 이후와 '샤를뤄'의 자살 사건 이후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은 상대를 비난하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보인다. 전쟁터에서 서로의 목숨을 살려줄 정도로 진한 전우애를 가진 이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 이익에 연연하며, 서로를 비난하는 태도는 그들이 공산주의로 무장한 사회주의자라 해도 개인의 욕망과 이익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존재라는 걸 말한다.
하지만 '샤를뤄' 자살 사건의 진상조사가 끝나고,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에 대해 한 계급 강등 정도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처지를 옹호하고, 군대를 떠난다면 '내가 떠나겠다'고 말하면서, 동지를 위해 기꺼이 자기 미래를 양보하겠다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이중적 태도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동안 중국사회는 '이상적 공산주의자'의 전형을 만들었고, 개인의 욕망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 이중성과 모순을 내재한 인간형을 무시하거나 부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옌롄커의 작품이 중국정부의 탄압을 받게 된 것도 중국정부가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직된 정책과 '좌파적 환상'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중국의 현실을 지나치지 않게 있는 그대로 반영한 점과 개인의 나약함, 이중성을 하나의 돌연한 사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소설 제목이 '샤를뤄'이고, 작품에서 신입 병사 '샤를뤄'가 자살하는 건 중의적이다. '그해 여름의 끝'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에는 '여름해가 질 때'가 조금 더 느낌이 가까운데, 작품에서 '샤를뤄'가 남긴 긴 편지 내용이 바로 이 장면을 말한다. '샤를뤄'는 자살하기 전에 아버지에게 긴 편지를 보내는데, 그가 묘사한 풍경은 누구도 본 적 없는 몽환적 분위기다. 부대 근처에 강이 없는데, '샤를뤄'는 붉게 타오르는 강을 묘사하고 있었다.
나중에,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이 징계를 당했지만, 다행히 두 사람 모두 군대에 남아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해지는 거리를 걸어 도달한 곳에서 본 풍경이 바로 '샤를뤄'가 편지에 쓴 그 풍경이 보이는 장소였고, 두 사람이 본 풍경이 편지 내용과 똑같아서 충격을 받는다.
'샤를뤄'가 자살한 이유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 풍경, 중국의 거대한 대륙의 장엄하면서도 몽환적인 석양의 압도하는 자연의 힘과 경이로움이 '샤를뤄'를 죽음으로 이끈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칙과 소신의 대통령 윤석열
주헌 지음, 임하라 그림 / 깊은나무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이런 쓰레기를 만들어내다니, 대체 어떤 개돼지들인지 모르겠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의 기원 - 존 배로가 들려주는 우주 탄생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8
존 배로 지음, 이은아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의 기원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짧은 시간 살다 죽지만, 그 시간이 행복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나이 들어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부터다. 현대 자연과학은 우주의 기원부터 인류의 진화까지 이론과 실험을 통해 많은 부분 밝혔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인류가 존재한 이후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선진국'에 속한 나라에서, 배 곯지 않고 사는 걸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구 인구의 50억 명은 지금도 가난과 굶주림,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며, 전쟁과 자연 재해로 고통받는 삶을 산다.
풍요로운 나라에 살아도 무지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많다. 인간이 만든 '신'을 믿으며, 어리석고 멍청하게 사는 사람도 많고, 눈앞의 쾌락을 추구하며 넓고 깊은 세상을 모른 채 사는 사람도 많다.
'개인'은 사회의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환경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존재다. 이런 한계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순수한 기쁨'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부터 그런 감정을 느꼈다.

다른 모든 학문은 인간의 실제 삶에 필요하거나 영향을 주고 받지만, 자연과학은 지금 우리의 삶과 직접 관련 없는 경우가 많다. 수학의 순수한 이론적 성취를 예로 들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리만 가설', 푸앵카레 추측', '골드바흐 추측' 같은 이론은 한평생 살면서 전혀 몰라도 되는 지식이다.
특히 이 책처럼 우주를 다룬 지식은 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내용이며, 모른다고 창피할 것도 없다. 우주, 별의 탄생과 죽음, 태양계, 원자, 양자 같은 이론과 지식은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읽기에 어렵다. 자연과학은 기본이 어렵다. 이 분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이고 영역이다. 이들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피보나치, 오일러, 갈루아, 가우스, 칸토어, 페렐만, 힐베르트, 리만, 와일스 같은 수학자,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닐스 보어, 프랑크, 패러데이, 뉴튼,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슈레딩거, 페르미, 케플러, 파인만 같은 물리학자 그리고 자연과학 각 분야마다 존재하는 무수한 천재들은 인류의 0.0001%도 안 되는 매우 뛰어난 존재들이며, 인류의 빛과 희망이다.
우리는 이들 천재가 만든 길을 따라가며, 그들이 만든 세계를 보고 놀라고 감탄한다. 우리는 그 세계를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들이 만든 세계가 우리의 생활을 놀랍게 만든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이 만든 세계는 우리 삶과 생활에 직접 이해관계가 없지만, 그 자체로 인간의 '이성 활동'의 놀라움과 순수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영역이다.

자연과학을 공부한 학자, 전문가가 나같은 평범한 사람을 위해 최대한 쉽게 쓴 자연과학 개론, 기초 입문서를 많이 출판하고 있다. 내가 자연과학 책을 읽기 시작한 건 2000년 초반부터인데, 이 시기가 한국출판계에서 자연과학 책을 본격 출간하던 때라고 알고 있다. 1990년대까지는 사회과학과 문학이 주류였으나 시대가 바뀌면서 출판의 흐름에도 변화가 온 것이다.
가장 먼저 자연과학의 선두에 서서 대중을 이끈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였다. 이 책은 1980년대 초반에 출간했으니 이제 40년이 된 고전이지만, 여전히 잘 팔리고,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만큼 진화론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기적 유전자'를 시작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한글로 번역한) 다른 책들을 다 읽고, 진화와 관련한 다른 책들, 수학, 물리학, 천문학, 우주와 관련한 책들을 꾸준히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다 어려웠지만, 어려워도 꾸준히 읽으니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고, 여전히 모르는 내용이라도 읽으려 노력한다.

이 책은 우주의 시작과 진화에 관한 내용을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우주가 138억년 전에 빅뱅으로 탄생했다는 건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에 우주로 올라간 제임스 웹 천체망원경으로 관찰하게 되면 또 어떤 놀라운 발견을 할 수 있을지 몹시 기대하는데, 지금의 과학으로도 빅뱅 이후 10의 -35초때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추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더 놀라운건, 10의 -35초에서 -33초 사이에 가속팽창을 한 것까지 밝혔는데, 우리의 상상으로는 10의 -35초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가사의한 순간인데, 이걸 현대 인류의 과학이 포착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빛이 도달한 거리까지여서, 138억년의 시간이라고 알 뿐, 그보다 멀리 있는 우주는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우주가 여러 개인지, 닫혀 있는지, 몇 개의 차원인지 아직 모르는 것이 매우 많지만, 인류는 멸종하는 순간까지 우주의 비밀을 알려고 노력할 것이다.

옛날 브라운관 텔레비전에서 채널 사이에서 지직거리며 화면이 물결처럼 흔들리면서 잡음이 들리는데, 그게 바로 '우주복사'의 흔적이고, 138억년의 파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우주와 아무 관련도 없지 않다는 걸 깨닫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가 우주에서 온 것이며, 우리가 죽어 육체가 사라지면 모두 원자가 되어 다시 우주로 돌아간다는 이 '과학적' 사고방식이야 말로 어떤 '종교'나 '신'보다도 더 아름답고 신비하지 않은가.
우주를 공부하는 건 '순수한 기쁨'을 얻는 지식이자, 삶을 겸손하게 살아가는 동기가 된다. 우리는 저 우주 속에서 '창백한 점'으로 존재하며, 아무리 날뛰어도 우주에서는 티끌보다 작은 존재로 살다, 바다의 파도 위에 잠깐 떠오른 물방울처럼 이내 사라지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우주를 바라보고, 우주를 생각하는 건, 내가 '인간'으로 진화한 동물의 후손이고, 말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걸 깨달으면서, 더 없이 고맙고 행복하게 여기게 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ills78 2023-02-1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딩씨 마을의 꿈

먼저, 이 소설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창작이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작가 옌렌커의 고향이 허난성인데, 공교롭게도 허난성에서 문제의 사건이 발생했다. 허난성은 인구는 많으나(9천6백만 명) 가난한 지역으로, 황허 남쪽 내륙의 농업 중심 지역이다. 여전히 봉건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고, 70년대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의 기운이 남아 있는 곳이며, 70년대, 80년대 개혁, 개방,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혜택을 적게 받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서 1990년대 초중반에 믿기지 않는 사건이 발생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는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가 창궐했다. 초기에 이 병에 걸리면 약도 없고, 고통스럽게 죽어간다는 보고가 있어서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특히 이 병이 동성애자에게 많다고 해서 동성애를 혐오하고 공격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타액과 피를 통해 전염된다고 알려진 '에이즈'는 미국과 유럽 즉 서방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타락한 윤리'의 결과라고 중국은 결론을 내렸다. 중국에서는 85년 6월에 최초의 에이즈 환자가 사망했는데, 그는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이 무렵 중국은 혈우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서 수입한 혈장을 검사하다 '인간면역 결핍바이러스(HIV)'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 약은 이미 몇 사람의 환자에게 사용했고, 그들 가운데 네 명이 HIV에 감염된 것을 확인했다.

중국 정부는 서양의 '에이즈'에 맞서 꿩 먹고 알 먹는 전략을 개발한다. '깨끗한' 중국 인민의 피를 모아 중국에서 '깨끗한 혈장'을 만들어 제약회사에 팔면, 중국 경제도 살리고, 중국 인민에게도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대도시 인민을 상대로 하지 않고, 아직까지 봉건적 잔재가 많고, 농촌의 유교적 질서가 남아 있으며, 가난한 농촌 지역 인민을 대상으로 이 전략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번째 대상이 바로 '허난성' 지역 인민들이었다.
1990년, 중국 정부는 허난성 인민을 대상으로 채혈센터를 구축하고, 인민들에게 '매혈'할 것을 선전했다. 말이 선전이지 지역의 공산당 간부를 통해 할당량을 정하고, 혈액을 수집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물론 매혈을 하는 인민에게는 돈을 주었다. 허난성에 있는 117개 현에는 모두 400개가 넘는 채혈센터가 설립되었고, 이곳에서 인민들의 '피'를 돈을 주고 샀다. 이른바 '매혈경제'가 시작된 것이다. 500cc를 채혈하면 50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돈은 미국돈으로 약 8달러 정도, 한국돈으로 1만원 정도가 된다. 당시 허난성의 가난한 농가가 농사를 지어 1년에 버는 수입이 200달러가 안되었으니, 채혈 한번에 8달러라면 큰돈이었다. 
중국 정부는 인민 한 사람이 한달에 2회까지만 매혈을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일주일에 1회, 많게는 3일마다 한번씩 매혈하는 사람도 있었다.

채혈센터는 허난성 정부가 세운 공식 센터가 있었지만, 시골 마을에는 사설 채혈센터가 많았다. 사설 채혈센터에서는 지역주민을 직접 찾아가 채혈을 했고, 그 피를 정부 채혈센터에 팔아 중간 이윤을 챙기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이때 사설 채혈센터는 바늘과 솜, 주사바늘 등을 재활용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의 피가 섞이게 되었고, 이것이 허난성에 '에이즈'가 퍼지는 원인이 된다.
중국 정부는 매혈하는 인민에게 돈을 주었지만, 그 돈은 피를 판 대가로는 너무 적었고, 인민을 속였다. 중국 정부는 인민의 피를 모아 제약회사에 팔았는데, 정부가 마치 브로커처럼 중간에서 인민을 속이고, 인민이 받아야 할 돈을 가로챈 것이다.
1995년이 되면서 중국 의료인들 가운데 양심적 의료인들이 '매혈경제'의 진실을 밝히기 시작한다. 특히 허난성 저우커우시의 감염질환 연구자인 왕슈핑은 매혈자들이 HIV, AIDS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시와 성 보건국에 보고하지만, 보건국은 왕슈핑의 보고를 묵살하고 왕슈핑을 해고한다. 왕슈핑이 베이징에 있는 국가보건성에 다시 샘플 재조사를 의뢰하자 중국 정부는 허난성의 모든 채혈센터를 폐쇄하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에이즈' 환자가 발생했고, 허난성에서 매혈을 한 인민은 약 300만 명에 이르며, 이들 가운데 적게는 60만 명에서 많게는 120만 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2001년이 되어서야 공식 인정했다.

이 소설, '딩씨 마을의 꿈'은 위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깔고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촌장 역할을 하는 딩수이양 노인의 맏손자인 딩샤오창인데, 딩샤오창은 이미 죽은 인물이다. 그것도 누군가 몰래 음식에 탄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딩샤오창이 죽은 건 그의 아버지 딩후이가 마을 주민을 속이고 오로지 돈벌이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결국 딩후이는 자신이 저지른 못된 짓의 대가로 아들이 독살당하는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반면 '딩씨' 집성촌의 큰 어른인 딩수이양 노인은 훌륭한 인품을 가진 인물로, 마을 주민 모두의 행복과 권리를 위해 합리적이고 공평한 태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맏아들 딩후이가 시당 간부로 일하면서 사설 채혈센터를 운영하고, 관(시신을 넣는 관)을 공급하는 사업을 독점하면서 중간에서 많은 이윤을 챙기는 걸 보면서 아들 딩후이의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하고 비판한다.
딩수이양 노인은 전통적 중국 인민의 전형이다.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깨어 있는 중국 인민이 딩수이양 노인이지만, 그는 이미 다 늙어서 힘이 없다. 즉,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고 싶어도 힘이 부족한 것이다.
반면 맏아들 딩후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모은다. 중앙 정부와 성, 시에서 '채혈센터'를 설립해 '매혈경제'를 일으키자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나서서 마을 주민을 설득해 피를 팔도록 한 사람이 바로 딩후이였다.
딩후이는 90년대 이후 개혁, 개방 경제를 상징하는 '자본주의적 인민형'의 상징이며, 지방의 말단 공산당원 가운데 부패한 공산당원의 전형이다. 딩후이는 마을 주민의 피를 모아 중간 이윤을 남기고 피를 넘겼으며, 에이즈에 걸린 환자가 죽으면 성 정부에서 무상으로 지급하는 관을 돈 받고 팔아서 이윤을 챙긴다. 여기에 '영혼 결혼'을 주선하면서 양쪽 가족에게서 다시 돈을 받는 등 온갖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끌어모으는데, 그렇게 모은 돈으로 딩후이는 도시에 거대한 호화주택을 짓고, 방마다 돈다발을 가득 쌓아놓고 있었다.

딩수이양 노인은 아들 딩후이에게 마을 사람들 앞에서 절하며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말한다. 딩후이가 채혈센터를 하면서 사람들이 피를 팔고, 그러다 에이즈에 걸렸으니 마땅히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 딩수이양 노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딩후이는 오히려 자기가 채혈센터를 세워 마을 주민들에게 돈을 벌도록 해주었으니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뻗댄다. 그렇게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두 사람은 불편한 관계가 된다. 이것은 중국의 현대사에서 '공산주의적 정신'과 '자본주의적 정신'의 대립,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딩씨 마을'에서 열병 환자(에이즈 환자)가 늘어나자 딩수이양 노인은 환자들을 학교로 모아 한 곳에서 생활하도록 한다. 어차피 병에 걸린 사람들은 함께 있어도 서로를 전염시킬 염려가 없으니 한 곳에 모여 생활하는 것이 식량도 아끼고, 열병에 걸리지 않은 가족과 이웃에게도 좋기 때문이다. 이렇게 환자들이 학교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딩수이양의 둘째 아들 딩량과 딩수이양의 조카며느리 양링링이 눈이 맞아 불륜을 맺는다.
이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딩량과 양링링의 이야기에 할애하는데, 작가가 두 사람의 불륜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잘 알 수 있다. 딩량과 양링링은 각자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배우자들은 열병에 걸리지 않았고, 공교롭게 딩량과 양링링만 열병에 걸려 학교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모두 젊고, 특히 양링링은 신혼을 막 지낸, 스물네 살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인데, 곧 열병으로 죽게된다는 현실이 몹시 비극적이다.
딩량은 사촌 동생의 아내인 양링링과 불륜을 저지르지만, 두 사람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동안 사회적 관습에 얽매여 있던 인간 관계가 '열병'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 깨지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인습과 도덕, 염치, 예의 같은 전통적 가치보다 그들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여기에 두 사람은 어려서 각자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데, 딩량은 양링링에게 '어머니'라고 부르고, 양링링은 딩량에게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들은 부부이면서 모자, 부녀, 오누이 관계가 된다. 이 호칭이 상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서, 독자도 이 부분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도덕적 고정관념에 충격을 받는다.
딩량과 양링링은 불륜이자 부부이고, 근친상간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중국의 전통적 유교문화, 도덕관념, 봉건적 질서 등에 대한 전복적 표현이다. 

두 사람은 열병을 앓는 상태에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존 배우자와 이혼하고, 정식 혼인을 해서 부부가 된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은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거의 동시에 숨을 거두고, 딩량의 형 딩후이는 두 사람의 장례식을 화려하게 치른다. 왕이나 쓸만한 최고급 관에 고급의 부장품을 넣어 거대한 묘를 만들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묘는 도굴당하고, 관도 파헤쳐진다. 
마을 주민들은 부정하게 돈을 번 딩후이를 응징하는 방법으로 딩량과 양링링의 묘를 파헤친 것이다. 부패한 관리 딩후이의 행동은 인민에게 증오의 대상이며, 기회만 되면 딩후이는 '뒤통수에서 칼을 맞을' 운명인 것이다.
딩수이양 노인은 마을 주민들이 딩후이를 원망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자기가 봐도 아들이지만 돈에 눈이 멀어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딩수이양 노인은 아들 딩후이에게 마을 주민에게 사과하고, 부정하게 돈을 모으지 말라고 경고한다. 마을 주민 가운데는 딩후이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만나면 '뒤에서 칼을 꽂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딩후이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짜증나고, 자기가 하는 일이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에게 효도하겠다는 뜻에서 딩수이양 노인을 도시에 있는 자신의 호화주택으로 초대한다. 그곳에서 돈이 가득한 집을 본 딩수이양 노인은 아들 딩후이가 바른 삶을 살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딩후이는 독살당해 무덤에 묻힌 아들 딩샤오창(화자)의 영혼 결혼식을 하려고 무덤을 파헤쳐 다른 곳으로 가져가려 한다. 영혼 결혼식의 신부는 현의 당간부 딸로, 딩후이는 출세를 위해 죽은 아들까지 이용하려는 것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딩수이양 노인은 분노로 몸을 떨며 몽둥이를 집어들고 맏아들 딩후이의 뒤통수를 때려 살해한다. 그리고는 마을 주민들에게 '내가 딩후이를 때려죽였소'라고 부르짖는다.
전통적인 중국 인민인 딩수이양 노인은 자본주의의 폐해로 찌든 현대 중국인 딩후이를 살해한 것이다. 이것은 현대 중국의 모습이 중국 인민 다수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며, 현대 중국은 자본주의 경제 도입 이후 당과 간부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나라 전체가 썩어가고 있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걸 뜻한다. 

옌롄커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그의 작품이 한국에 거의 모두 번역되어 있는 것도 이번에 알았는데, 이 소설 '딩씨 마을의 꿈'을 읽고, 옌롄커의 소설이 중국에서 판매금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옌롄커의 소설은 그 이전 작가인 모옌의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모옌도 중국현대사에서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는 입장이긴 해도, 중국 인민의 위대함, 중국공산당의 긍정적 면을 그리고 있는데, 옌롄커의 작품은 특히 현대 중국의 상황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어서 경직된 중국 정부의 권력자들에게는 몹시 불편한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예롄커의 작품은 현대 중국의 모순과 갈등을 드러내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이다. 그의 작품은 앞선 세대가 그린 '위대한 중국', '위대한 인민'의 뿌리는 잃지 않으면서,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중국공산당원의 부정, 부패, 정책의 오류, 경직된 제도, 권력의 남용, 자본주의 경제 도입 이후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빈부격차 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현대 중국문학의 특징은 일당독재인 중국공산당 체제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혼재해서 발생하는 모순과 갈등을 중국현대사의 비극적 상황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데 있다. 위화의 '형제'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인데, 중국 문학이 세계문학에서 차지하는 독특하고 고유한 위치도 중국의 이런 비대칭적 구조이기에 가능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으로 2022-03-12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자세한 배경 설명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다 읽고나면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볼 것 같습니다.

마루프레스 2022-03-12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옌롄커의 작품은 이 작품 외에도 11권이 더 번역되어 있더군요. 저도 다 구매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
 
세월의 설거지 - 안정효의 3인칭 자서전
안정효 지음 / 세경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월의 설거지


안정효 작가와는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세월의 어느 지점에서 인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안정효 작가 고향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 434번지인데, 내 고향은 공덕동 432번지였다. 번지수만 보면 이웃이다. 다만 안정효 작가는 나보다 꼭 스무살 연상으로, 거의 한 세대에 가까운 어른이다.
그의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마포가 배경이며, 고등학교 시절을 핍진하게 그리고 있다. 안정효는 이미 중학 1년 때부터 영화광이었으며, 그의 삶에서 영화는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도 '유명한 번역가'에서 출발해 '실천문학'에 연재된 '전쟁과 도시'를 읽으면서였다. 
안정효는 이미 대학생 때부터 영어를 잘 하기로 유명한 학생이었고, 졸업하기 전에 이미 영자 신문사에 취업했다. 그는 번역을 업으로 삼기 전인 학생 때 영어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그 소설을 미국에서 출판하기를 희망했다. 그는 여러 번 미국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며 작품 출판을 시도했으나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책 '세월의 설거지'는 안정효의 자서전이다. 다만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자신을 대상화한 것은 상황을 보다 객관으로 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짐작했다. 1인칭 '나'로 이야기를 풀어가다보면 직접 말하기 괴로운 장면이 많고, 뒤로 갈수록 자기 자랑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완화하는 방식이 3인칭 서술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안정효는 1941년에 태어났으니 해방과 전쟁을 어릴 때 겪었다. 어릴 때 겪은 전쟁 상황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그의 가족이 마포에서 안양으로, 다시 할머니가 계시는 소사(부천)에서 전쟁을 겪고 집(마포)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어린이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작가의 가족은 전쟁 때 불에 탄 집을 아버지가 스스로 지었으며, 가게를 서너 개 만들어 세를 놓을 정도였다. 그 동네에서는 그나마 사는 형편이 나은 가족이었다. 전쟁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1950대 중반부터 작가의 집은 부자는 아니어도 굶지는 않는 생활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내용은, 작가의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전쟁이 끝나고 석공으로 일하러 다녔는데, 석공이 쓰는 연장을 벼르는 대장간을 집에 설치해 놓을 정도였다. 집도 직접 지을 정도로 손재주도 좋은 작가의 아버지는 성실하고 재주 있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어느 순간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아버지가 된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을 자주 보면서 자랐다. 두 사람은 육탄전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동네가 떠들썩하게 욕설이 난무하고, 집안의 살림이 날아다녔다. 그래도 아버지는 점잖은 편이고, 어머니를 때리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비난했으며 그럴만한 이유도 충분했다. 어릴 때 부모가 싸우는 장면만 보고 자란 나도 트라우마가 생기는데, 아버지의 일방적 폭력을 겪어야 했던 작가의 어머니와 자식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함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문제는, 작가의 아버지가 아내를 구타하는 시기가 아이들이 어릴 때만이 아니라 자식들이 모두 자라서 청년이 되었을 때도 여전했다는 것이다. 자식이 어릴 때는 아버지의 권위와 물리적 폭력에 저항하기 어렵다고 해도, 청년이 된 상황에서 아버지의 폭력을 저지할 수 있었음에도 여전히 어머니는 폭력을 당하는 상황이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부부싸움을 하던 아버지에게 대든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머니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었고, 아버지는 무능했다. 나는 어머니 편에서 아버지를 비난했고,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작가의 아버지에 비하면 더 없이 선량한 인간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거의 대부분은 작가의 글쓰기와 관련한 내용이다. 작가는 중고등학생 때는 만화를 그렸고, 대학생이 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다재다능하고 머리 좋은 인물이었다.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지망할 계획도 있었지만 친구의 권유로 서강대학교 영문과에 진학해서는 곧바로 영어를 다른 친구보다 월등히 잘 하는 학생이 되었다. 영어를 잘 하는 것으로 작가의 삶은 큰 줄기가 결정되었다.
영어를 잘 했기 때문에 영자 신문사에 쉽게 취직할 수 있었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브리태니커 편집부장이 되었으며, 한국 최초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마침내 자기 소설을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하게 되었다.
'하얀 전쟁'과 '은마'가 미국 소호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영어권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물론, '뉴욕타임스'의 서평란에 큰 지면으로 소개된 것은 한국작가 가운데 안정효 작가가 최초다. 하지만 이런 기록도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높이 평가하지도 않았다. 그때가 전두환 군부독재 시기라는 특성도 있었으나, '번역가 안정효'를 '작가 안정효'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본다.

작가 안정효는 50세 이후부터 창작 활동이 더 활발했다. 그의 작품은 한국문학에서 의미 있는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가 너무 유명한 번역가로 알려진 것이 오히려 '소설가'로 진입하는 장벽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문학사에서 작가 가운데 영어를 뛰어나게 잘 하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그 가운데 최고가 안정효 작가가 아닐까. 과거 남조선 노동당원이자 미군정에서 근무했던 설정식도 영어를 잘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는 너무 짧은 삶을 살았고,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지 않은 한국인이 직접 영어로 쓴 소설로 미국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안정효 작가가 아직까지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해방과 전쟁을 겪은 세대이며, 폐허인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과정을 직접 몸으로 겪은 인물이다.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고, 가난하던 시기에 대학을 다녔으며, 당시 한국 문학, 문화계의 첨단을 달리는 소수의 지식인이었다.
그의 삶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하게 기록된 생생한 기록이며, 그 자신이 이룬 많은 성과 역시 우리 문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자서전은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개인의 삶이자, 한국문학의 새로운 발견이며, 한국문학과 영문학의 화학적 결합을 목격하는 현장이고 한국문학이 나갈 미래를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