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 食史
황광해 지음 / 하빌리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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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역사 사료들이 잔뜩 등장해서 음식에 관한 책이 아닌 줄 알았다. 그래서 조금 읽다 책을 덮었고 한참이 지나서 다시 펼쳤는데 이상하게 잘 읽혔다. 책이 잘 읽히지 않을 땐 묵히는 버릇이 있는데 잊지 않고 다시 꺼내 들어 재밌게 읽은 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과 달리 왜 이렇게 재밌게 읽혔을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고 있는 음식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오류들이 속속 드러나서 재정립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면 고려가요 <쌍화점>의 쌍화는 만두라는 것, 그러므로 쌍화점은 만두전문점이었다는 사실과 제갈공명이 처음 만든 것도 아니며 만두라고 칭하는 종류가 엄청나다는 사실들이었다. 또한 대구탕은 대구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구 명물 육개장(쇠고기+개장국)이 대구탕으로 불렸다는 것들이다. 미나리는 또 어떤가. 더러운 물에 산다고 천대하던 미나리는 ‘충성과 겸양의 상징이’며 미나리는 성균관의 아이콘이었으며, ‘미나리를 캔다’는 표현은 ‘성균관에서 공부한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오해하고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이런 이야기들이 역사 속에서 속속 드러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방향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것을 보니 재미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많이 변형되었다 하더라도 옛 사람들도 먹고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순조는 한 한밤중에 냉면이 먹고 싶어 신하를 시켜 ‘냉면 테이크아웃’을 하는가 하면, 조선 시대에도 ‘수유’라는 버터 혹은 치즈가 있었고 군역을 면하기 위해 그 부락으로 숨어드는 멀쩡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귤이 너무 귀해서 제주에서 진상되면 궁궐에서는 과거를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서로 받겠다고 싸우기도 하고 그런 사정이다 보니 정작 제주에서는 ‘귤나무를 일일이 세어 장부에 기록하고, 열매가 맺을 만하면 열매숫자를 기록’하는 일도 있었단다. 지금은 풍족하고 대량생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시대도 변해서 이런 이야기들이 상상이 되질 않지만 그에 따른 고충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당시의 생활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마치 그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지금까지 이어 내려오는 음식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과 비교하면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얽힌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더 그렇다. 임금이 받는 수라는 민심과 정치적인 상황을 받아들여 수시로 바뀌곤 하는데 연산군의 여지(리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기가 찰 정도다. 내게는 뷔페에서 만나게 되는 과일로 인식되어 있는 만큼 자주 접하고 먹는 과일이 아님에도 조선시대에 그 과일에 빠져 무리하게 요구한 군주가 연산군이라고 하니 음식에도 폭군이 있나 싶어 씁쓸했다. 그가 강화도로 쫓겨난 후에야 국가 체면을 떨어뜨리는 여지 구입이 끝났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술과 관련된 문제가 다양했다는 점도 그렇고 나라의 국력이 타국에 쏠려 있을 때 관련 음식들도 슬프게 기억된다는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과연 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시대를 거쳐 가면서 변화되고 변형되어 다음 세대에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세대들은 음식과 현재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잘 상상이 되질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바람이 생겼다. 좀 더 건강한 음식을 남길 수 있었으면 싶었다. 지금도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있다는 인식이 부족한데 다음 세대는 캡슐 하나로 식사를 끝내는 건 아닌가 하는 쓰잘머리 없는 상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음식과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알다 보니 내가 현재 먹고 있는 음식, 구입하고 만들어 먹고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음식이 즐겁게만 기억되어도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이런 의미까지 끌어올릴 줄은 몰랐다. 좀 생뚱맞긴 해도 오늘 먹는 한 끼니에 최선을 다해야겠단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 저녁 시간이 다가온다. 주부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시간이다. 항상 고민과 귀찮음이 동반되는 이 일이 오늘은 좀 더 진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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