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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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하루키의 신간 혹은 개정판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어 예기치 않게 그의 작품을 나름대로 열심히 읽고 있다. 그러다 이 책의 출간소식을 들었고 여행에세이라고 하기에 기대감은 폭발했다. 하루키를 썩 좋아하지 않던 내가『먼 북소리』와『하루키의 여행법』을 읽고 호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여행에세이. 어떤 이야기로 채워질까 기대감에 책장을 펼쳤는데, 보스턴 첫 번째 이야기를 마주하자마자 김이 조금 새버렸다. 마지막은 조금 달랐지만 마라톤 에세이에 나왔던 내용이었고 이 책에 실린 에세이가 모두 새로운 에세이가 아님을 알아버렸다.


 

그 사실을 알고 책을 마주하는 내 눈빛에 생기를 좀 잃어버리긴 했지만 하루키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중복된 이야기일지라도 빨려들게 만드는 힘. 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힘 앞에 결국 두 호흡 만에 이 책을 완독했다. 몇몇 이야기는 낯이 익었지만 나머지는 새로운 이야기였고 어떠한 목적을 띠고 어떤 곳을 여행하든 그가 경험한 생생함이 남겨 있었다. 그래서 마치 단기간에 그 모든 장소를 다 여행한 것 같은 착각이 일었고 순식간에 그 모든 걸 경험하다 보니 인생이란 게 여행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달리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137쪽)’는 하루키의 철학처럼 여행지에서 봉착한 난관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풍경에 대해,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는 있는 그대로의 그 나라를 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여행기를 읽는 동안 나와 저자의 국적을 잊고, 단지 한 사람의 안내자를 따라 세계 곳곳을 누비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예능 <꽃보다 청춘>에서 잠깐 마주했던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부분이 좋았다. 신기하고 재밌는 나라였고 자연에 순응하며 최대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루키 스스로도 굉장히 개인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듯이 종종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말투를 쓰고 있긴 하지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 에세이가 아닌 경험을 기록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 안에는 새로운 곳에 가면 자신이 좋아하는 연결고리를 찾고(마라톤, 음악, 와인 등) 그것을 어떻게 즐겼는지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곳만 줄줄이 나열한 여행기라는 것이 애초에 하루키와 잘 연관이 되질 않지만(유명하지 않는 곳을 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곳에 가더라도 자신만의 색깔로 이야기 하기에) 현장감이 느껴져 그곳을 직접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다. 이상하게 저긴 꼭 가봐야지 하는 바람보다 하루키를 통해 이미 다 경험해 버린 기분이 들었다. 아마 내가 어떤 장소에 갔을 때 문득 ‘어, 이건 하루키 책 속에서 보았던 풍경과 비슷한데?’ 라고 생각하며 동질감을 끌어낼 그런 느낌을 가진 이야기들이었다.


 

어떤 이는 이 책을 읽고 당장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들 수도 있을 것이고 미래의 여행을 꿈꾸며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내가 여행을 한다면 이 책 속의 하루키와 어떤 공통점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건 바로 책이었다. 저자처럼 영어원서를 읽을 수 없으니 그런 경지는 아니더라도 번역된 훌륭한 작품들을 들고 여행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 저자가 여행지에서 자신의 좋아하는 연결고리를 찾았던 것처럼 그 장소에 어울리는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순간 스쳐지나가 멋쩍은 웃음이 났다. 그래서 좋은 호텔에서 느긋하게 책을 보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 깊었고 신혼여행 중 묵었던 풀빌라에서 남편은 혼자 수영을 하고 폭신한 침대에 누워 책을 보면서 각자 여유를 즐겼던 시간이 떠올라 이미 나도 그런 여행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도 신혼여행에서의 멋진 관광지보다 풀빌라에서 느긋하게 누워서 책을 보며 바라보던 바다, 책 읽기에 적합했던 폭신했던 침대(남편은 이 글을 보지 않을 것이므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남편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각자의 취향을 존중할 때 오히려 서로에 대한 여유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그런 여행을 또 경험해보고 싶다. 꼭 국외가 아니더라도 근교에서도 그런 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 여행 철학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비중이 크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는 여행은 일단 즐거울 것 같다.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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