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얽히는 것도 싫어한다. 하지만 사람이 아예 없는 것도 싫어한다. 늘 마음은 한적한 시골에서 유유자적하게 책이나 봤음 좋겠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적당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가끔 카페에서 책을 보는 것도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져서 들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나의 성향이 뚜렷함에도(최근에야 깨달은 거지만) 내 주변에는 적당히 얽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족한 것 같다. 완전히 얽혀있거나, 자주 부딪힘에도 전혀 얽히지 않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맨송맨송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표지 속의 좀 까칠해 보이는 저 아저씨의 이야기를 읽다 울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사람의 온기로 따뜻함을 느낄 줄 몰랐다. 책은 늘 곁에 두며 읽고 있지만 내 마음 속에 와 닿는 책을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무방비 상태로 오베라는 아저씨(호칭이 좀 애매하긴 하나 할아버지보다 아저씨가 나을 것 같아 그렇게 부르려고 한다.)의 이야기를 읽고 뭔가 정신이 똑바로 차려지고 자세까지 올곧아지는, 잔잔하면서도 포근한 마음을 느꼈다. 푸석푸석한 마음을 녹여 나를 좀 더 두루뭉술하고 여유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나이는 59세. 성격은 까칠하고 철저한 원칙주의자. 반 년 전에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런 아내를 따라가려고 늘 자살할 준비를 하고 있음.


 

  간단히 오베 아저씨를 소개하자면 이 정도다. 아내를 그리워하는 건 좀 짠하지만 그의 일상을 들여다봤을 때 딱히 정감이 간다거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주변에 저런 이웃이 있으면 피곤하다 싶을 정도로 이른 아침 동네를 시찰하고, 조금만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건 상관하지 않고 쏘아댄다. 그는 그렇게 모든 게 반듯(?)한 상태에서 아내 곁으로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앞집에 한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되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3살, 7살 딸아이와 운전부터 어떠한 손놀림에도 재능이 없는 멀대같은 남편과 이란 출신의 아내가 임신한 채 이사를 왔다. 오베 아저씨 입장에서 보자면 뭔가 신경 쓰이고 복잡한 가족임이 틀림없다. 번번이 아내 곁으로 가려는 행위를 방해하는 손재주 없는 인간들 때문에 골치가 더 아프다. 그런 골치 아픈 이야기들만 나열했다면 오베 아저씨에게 전혀 정을 붙일 수 없었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무뚝뚝한 원칙주의자였던 오베 아저씨의 지난 삶을 들여다보니 마음 찡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6살에 고아가 되었고, 직장에서 너무 과묵한 탓에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낡은 집은 불타버렸다. 그는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189쪽)’ 말할 정도로 희망이 없는 삶이었다. 아름답고 현명하고 발랄한 아내 소냐와 결혼하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아내와 함께 버스 여행을 갔다 사고를 당해 뱃속의 아이를 잃고 소냐는 하반신 마비가 되어 버렸다. 


 

  오베 아저씨가 절망하고 분노해 있는 동안에도 소냐는 모든 걸 받아들이고 삶을 이전처럼 이어 나갔다. 그리고 문제아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고 ‘하나님이 우리 아이를 데려갔어요, 사랑하는 오베. 하지만 수천의 다른 아이들을 주셨지요.(356쪽)’라고 말할 정도로 삶에 긍정적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아이를 잃고, 그럼에도 절망하지 않고, 그 아픔을 사랑으로 타인을 감싸는 소냐의 모습에 눈물이 참 많이 났다. 두 아이 모두 힘들 게 낳은 내 입장에서는 이런 그녀가 너무나 대단하고 멋지고 아름다워 보였다.


 

  이런 그녀였으니 오베 아저씨가 아내 곁으로 가려는 시도가 이해가 갈 정도였다. 그런데 과연 아내 곁으로 간다고 그녀가 좋아할까? 오베 아저씨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 없는 삶을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앞집의 새로운 가족 때문에 자신에게 서서히, 그렇지만 큰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걸 무시할 수 없었다. 누군가와 사귀고 그들과 가까이 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던 오베 아저씨는 때론 뻔뻔하고 당당하고 자신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부족한 그 가족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서서히 사람들과의 교류를 시작한다.


 

  ‘고양이, 과체중 알레르기 환자, 동성애자와’ 함께 아침 시찰을 하는가 하면, 앞집의 7살짜리 아이에게 선물할 비싼 아이패드를 사가지고 오면서 키보드도 공짜로 안준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오베 아저씨에게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들이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마을의 일들을 합심해서 처리하다 보니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가족이라는 따뜻함, 함께라는 기분 좋은 느낌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오베 아저씨는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 없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보기에도 그러할진대, 본인의 속내는 오죽할까 싶었다.


 

  원칙을 고수하는 고집불통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색깔이 또렷해서인지 종종 타인의 모습을 보며 생각을 드러낼 때 빵 터지게 만들어주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방심하고 있다 그런 문장을 만나면 혼자서 낄낄대고 웃었다. 옆에서 잠자던 아이가 놀라서 팔을 휘저을 정도로 혼자서 웃다가 괜히 눈물을 훔쳤다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좋다, 따뜻하다’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380쪽)


 

  오베 아저씨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 또한 이 말에 가장 큰 공감을 했다. 늘 내 곁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표현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것에 미안했고,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어느새 행동으로 옮길 용기가 없음에 잠시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베 아저씨를 만나고 나서 내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따뜻함과 가슴 먹먹한 찡함인지! 오베 아저씨와 이웃들이 함께 만들어갔던 이야기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듯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위로받고 웃고 고마워하는 이 마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내 주변에 오베 아저씨 같은 사람도, 그를 변화시켰던 이웃들도 없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면 설렌다. 그래서 타인과의 만남에 두려워하지 않고 좀 더 마음을 열기로 했다.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 용기가 없다면 적당한 섞임을 즐기고 그들과 관계 맺는 것을 즐거워하기로 말이다. 오늘은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내 마음 먹기에 따라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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