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교과서 여행 : 중1 시 - 중학교 국어 교과서 수록 시 작품선 스푼북 청소년 문학
신보경 엮음 / 스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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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시간에 배우는 무슨 법이니, 운율이니 이런 말들은 다 버리고 시작하세요. 뭐 우리가 그런 걸 다 외우고 시인의 마음을 다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 마음을 알기도 힘든데 말이에요. 6쪽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온 시를 묶어 놓은 책을 펼치자마자 엮은이가 해주는 말이 참 좋았다. 괜히 ‘재미없겠구나!’ 싶었는데 안심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정말 그런 염려를 내려놓고 시를 읽었더니 시가 즐거웠다. 너무 재밌는 시도 있었고, 묘사된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하고, ‘시인은 역시 다르구나!’ 느끼면서 시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다.


나무들이/샤워하고 있다//진달래는 분홍 거품이/조팝나무는 하얀 거품이/영산홍은 빨강 거품이/보글보글 일고 있잖아//온 산이 공중목욕탕처럼/색색의 거품으로 부글거리고 있어 <나무들의 목욕> 중 _정현정

시의 일부지만 봄을 이렇게 거품으로 묘사하는 시인의 마음이 참 신선했다. 봄에 꽃으로 만발한 산과 들을 보면 이 시가 떠오를 것 같다. 움트다, 자라다, 맺다로 이뤄진 책의 구성을 바탕으로 시를 따라가다 보니 시를 통해 사계절을 모두 겪은 기분까지 들었다.


소낙비는 오지요/소는 뛰지요/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설사는 났지요/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이 바쁜 때 웬 설사> _김용택

한참 계절을 느끼며 시심에 젖어 있을 때 예기치 않게 이런 시를 만나면 피식 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바작(발채의 전라도 방언)도 알고, 저런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인물의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김용택 시인은 어머니 말을 베낀 시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당시의 상황이 더 사실적이고 급박(?)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너라고 불리고//너는 나로부터 당신으로 불리지만//그대는 같이 불러도 다르면서 또 같다.//이것을 가리키면 이것이 되어 버리고//저것을 가리키면 저것이 되고 마는//문장의 광장 안에서 우뚝 선 깃발인 너. <품사 다시 읽기 - 대명사> _문무학

“‘품사’를 사전적으로 풀면 ‘낱말을 기능, 형태, 의미에 따라 나눈 갈래’라는 의미를 갖는데, 그래서 품사를 낱말 사회의 씨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라며 9품사에 관한 시를 읽는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시의 소재는 무궁하구나, 그리고 품사에 인격을 부여할 때 새로운 대상이 되어 시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게 품사에 관한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역할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신기했다.

이 세상/온 우주 모든 것이/한 사람의/‘내’것은 없다. <밭 한 뙈기> _권정생

시를 쓰든, 인생을 살아갈 때든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세상을 좀 더 분별하며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교과서에 실린 시라고 해서 약간의 긴장과 지루함을 가지고 읽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시를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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