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노라 틴틴 다락방 4
앤지 스미버트 지음, 강효원 옮김 / 한겨레틴틴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언젠가 기억을 지우는 장치가 있어서 잊고 싶은 걸 잊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사람이 됐든, 내가 한 행동과 말 때문이든 괴로웠을 게 분명한데 지금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엄청난 상실감이 아니라는데 안도감이 들지만 만약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다음이라면 어떨까? 15살 노라는 엄마와 쇼핑을 즐기다 서점 폭발 테러 사건으로 눈앞에서 시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엄마는 즉시 TFC(기억 상실 클리닉)에 데려가고 의사는 고통스런 기억을 잊으라며 알약을 건네준다.

 

사람들이 겁을 먹으면, 훌륭한 시민이 되는 동시에 훌륭한 소비자가 되거든. 170쪽

끔찍한 사건을 목격했으니 알약을 먹을 법도 한데 노라는 알약을 삼키지 않고 몰래 쓰레기통에 버린다. 클리닉 대기실에서 만난 어떤 남자애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메멘토라는 글씨가 새겨진 깁스를 하고 있었고, 알약을 몰래 버리는 것을 목격한 노라는 기억을 지우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연히 엄마의 고통스런 기억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약을 버렸던 아이 미카를 만나면서 점점 추리적 성격을 띠어간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회는 테러가 일상이지만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고 나쁜 기억을 알약으로 지워버린다. 노라와 미카는 알약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스런 기억에 시달리지만 감시가 일반화 되어 있고 보안 등급이 매겨져 있어 TFC 포인트 없이 제대로 생활할 수 없는 사회구조에 저항하기로 한다. 미카는 그림을 그리고 노라는 말풍선에 대화를 만들고, 윈터는 그들이 만든 만화를 복사하고 배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아이들의 모습이 얼마 전에 읽은『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에서 히틀러에 저항했던 학생들 같았다. 스스로 전단지를 만들고 복사하고 목숨을 걸고 뿌렸던 모습이 겹쳐졌다. 분명 문제가 있는데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혹은 기억하고 저항하기 위해 아이들이 만든 만화 <메멘토>는 학교에 배포되자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금세 감시의 대상이 되고 우여곡절 끝에 지하조직의 도움과 경고를 동시에 받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테러가 일어날 때마다 검은 벤이 항상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배후를 추적하게 된다. 알 수 없는 세력에 의해 가족을 잃고, 그럼에도 고통스런 기억을 잊지 않고 저항하고 문제를 찾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긴장되었다. 하지만 서서히 배후 세력이 드러나고 궁지에 몰린 아이들을 보면서 비로소 단락마다 사건번호, 이름, 해밀턴 감시소란 장소가 왜 드러나는지를 알게 된다.

테러가 일어나는 일상, 기억을 지우는 알약, 보안이 잘 되어 있어야 안심할 수 있는 세상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 덕분에 그곳이 좀 더 평안해졌다고 믿고 싶다. 소비를 위해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치료 목적으로 이윤을 쌓는 회사. 의문을 품고 용기 있게 행동했던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소비자로만 전락했을 사람들이 정체성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미래 사회에서 찾는 행복한 일상의 모습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 사회도 끔찍한 사건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불신이 쌓여 가고 있지만 그래도 안심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철저한 보안이 아닌 만족감을 주는 각자의 울타리가 있다고 말이다. 문명이 주는 편리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행복을 향해가는 옳지 않은 방법들을 철저히 목도하며 이 순간이 주는 안락함에 감사함을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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