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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하는 종 - 경쟁하는 인간에서 협력하는 인간이 되기까지
허버트 긴티스.새뮤얼 보울스 지음, 최정규.전용범.김영용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제목에서 말하는 ‘협력하는 종‘은 누굴까. 그렇다. 바로 인간이다. 동의하는가. 이 책은 하나의 논문이다. 그것도 500페이지가 넘는 매우 방대한 분량의 증명이다. 이 속에 제시된 여러가지 모델과 시뮬레이션, 수식 등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중간 중간에 보이는 복잡한 수식은 이 책이 수학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한다.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과학적 분석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이기적 존재 VS 협력하는 존재‘
이 두가지 중 하나로 인간을 바라본다면 우리 대부분은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윈과 그의 뒤를 잇는 도킨스와 같은 학자들이 주장했으며 그것에 기초해서 이루어진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의 ‘이기적 속성‘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저자는 협력하는 인간들의 본성을 수많은 논문과 사례, 여러 시뮬레이션과 모델들을 보여주며 인간이 ‘협력하는 종‘임을 증명하려 한다.
협력이라는 것은 인간이 아닌 다른 종들에게 있어서도 보편적이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는 가까운 친척들의 범위를 넘어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협력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 규모에 있어서도 사회적 성향을 갖는 일부 곤충을 제외하고는 가장 크다는 사실을 1장에서 제시한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다.
‘인간은 협력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유전자는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시카고 갱들처럼 이기적이다.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127쪽)
저자는 인간은 ‘협력적‘인 동시에 ‘이기적‘이라는 모순되는 듯한 말을 한다. 책의 앞부분에서 인간의 협력적 본능을 강하게 주장하고 여러 사례를 들어 증명하다가 슬그머니 후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현재 인간은 지구 위의 그 어떤 존재보다 협력을 잘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 그렇다. 처음부터 저자는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인간(협력하는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왔던 것이다.
저자는 책의 중간 중간 말한다. 인간의 협력(이타성)은 ‘상대방의 보답‘ ‘상호적 기대‘, ‘보상을 바라는 개인의 목적‘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라고.
‘개인들이 기부를 하더라도 그 기부가 상대방의 보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도록 하면, 내부자 집단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기부를 하는 편애 현상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발견.‘(103쪽)
‘이타적 협력과 배신자에 대한 이타적 처벌에는 행동에 대한 제약이 아니라 보상을 바라는 개인의 목적이 담겨 있다.‘(108쪽)
뿐만 아니라 협력은 집단 차원에서 바라볼 때 집단의 경쟁력을 높인다. 협조적 행동의 진화는 집단간 갈등, 집단의 소멸, 승자 집단에 의한 패자 집단의 정복 등을 설명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협력을 잘하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경쟁력이 있으며 오래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 때문에 인간은 비록 이기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타인과 협력하기를 즐기는 종이 된 것이다.
협력에 대한 논의는 더 나아가 사회 제도와 문화로 까지 확장된다. 이 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 부분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과감한 주장을 펼친다.
˝유전자-문화 간의 공진화(共進化)˝
사회제도나 문화에 맞추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진화이다. 공정한 보상, 분배가 이루어지고 신뢰가 구축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 유전자는 그에 맞추어 상호 협력적으로 진화해갈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사회 문화적 구조라는 ‘프레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 유전자의 진화와 문화,제도를 연관 지어 공진화로 정리한 것은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쉽게 말하면 성공적인 집단의 유전자와 문화가 살아남아 공진화해 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럽의 민족 국가와 같은 성공적인 제도는 그만큼 많은 복제자들을 낳고 성공적이지 못한 제도들은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다.‘(273쪽)
이 책이 결국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공정함‘, ‘신뢰‘, ‘복지‘, ‘생존 보장‘이 잘 갖추어져 있는 사회는 구성원들의 협력하는 유전자와 함께 공진화를 이루어낼 것이며 그런 집단(사회,국가,체제)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더 오래 지속되고 유지될 것임을 암시한다.
‘제도 없이 이타주의는 좀처럼 진화하지 못했다.
...
시뮬레이션 결과 이타주의 없이 제도들만의 진화는 불가능했다.‘(305쪽)
현재 한국 사회에 공정한 절차와 분배에 대한 논의가 강렬하게 일고 있는 시점에서 이 책은 매우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 협력하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협력 하려는 마음은 나의 협력에 정당한 보상을 해주려는 사회 문화가 그 뒤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 줄 것이라는 신뢰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풀어갈 해법이 이 책 안에 있는 것 아닐까.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문화와 제도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며 개인을 억압하는 사고방식이 현대 사회에 용인될 수 없는 이유이다.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공정한 절차를 준수하며 정당하게 분배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협력 유전자가 점점 진화할 것이다. 개인간 협력이 집단간 협력으로 확대되고 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정치의 몫이지만 정치는 국민의 주권행사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