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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도시 - 비둘기부터 달팽이까지, 동네에서 자연을 만나다
나다나엘 존슨 지음, 정서진 옮김 / 눌와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주변에 대한 관찰력과 호기심, 그리고 보통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집중력을  보유한 저자가 말하는 도시와 자연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문명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파괴하고 그곳에 인간들만이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었다. 지금껏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며 살아왔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야생동물들의 땅 위에 도로를 내고,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로드킬 당한 야생 동물들을 볼 때면 자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땅에 인간이 침입한 것에 잠시간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문명을 떠나지 않고도 자연의 경이를 경험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연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진 곳을 배경으로 택하고 싶다. 내게는 그게 더 진솔해 보이고, 따라서 더욱 실용적이고 유용한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껏 지속되어온 문명과 야생의 대립구도는 그 갈등의 골을 현실적으로 메우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좋아한다면 야생의 세계로 들어가 문명과 등지는 삶을 택할 수 밖에 없으며,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삶을 산다면 자연과는 오히려 친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설마 자연과 문명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위에서 인용했듯 저자는 도시에서의 삶을 포기할 수 없다면 도시가 허용하고 있는 자연에 눈을 돌려볼 것을 제안한다. 도시라고 해서 자연을 철저히 배제한 것은 아닐테니 그 안에서 자연을 누려보자는 말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도시속 자연(우리가 몰랐던 도시), 즉 어엿한 도시의 일부인 자연은 모두 9개이다.

 

비둘기, 잡초, 다람쥐, 새의 언어, 은행나무, 터키콘도르, 개미, 까마귀, 달팽이

 

 

  동물과 식물을 망라했다. 대체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한국의 도시에도 있는 그런 자연물들이다. 저자의 관찰력과 호기심은 정말로 대단하다. 그리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집중력도 매우 뛰어나다. 여러 비둘기들을 관찰하면서 발을 다친 비둘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유를 끝까지 추적해나간다. 독자들과 호기심을 공유하며 여러가지 가정을 제시하고 그것을 검증해 나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심지어 저자는 잡초도 열심히 관찰한다. 우리가 흔히 무심코 지나치며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주변의 풀들과도 인간들이 관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는 잡초를 섭취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자연과 만날 수 있었다."

 

  먹을 수 있는 잡초도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잡초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저 식탐이 심한 사람의 가벼운 농담이 아니다. 내 주변의 자연을 알아가는 '관조적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충분히 가져볼 만한  관점이다. 저 풀들 중에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이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풀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기지 않겠는가. 집주변을 산책하는 시간에 보던 것들이 이제부터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다람쥐가 영리하다는 것, 새들은 노래를 통해 대화를 하며 인간과 교감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 까마귀의 두뇌가 뛰어나며 그들에게도 문화가 있다는 것 등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수많은 사실들을 알려준다.
  저자는 결국 직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우리가 훨씬 현실적으로 자연과 교류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야생지역만을 찬미하는 대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윤리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인간들은 도시에서 자기들끼리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연은 그저 인간들 옆에서 겨우 연명하는 존재라고 여겼다. 진짜 자연은 저 너머 산속에나 있는 것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존의 이러한 인식이 틀렸음을 지적한다. 문명화된 도시속의 자연도 분명한 자연의 일부이며, 그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도 엄연한 도시의 일부임을. 도시와 자연은 대립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바로 이곳에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에 발딛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풍요로운 세상을 꿈꾸는 저자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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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일이다. 5살에 떠난 자신의 조국을 평생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이. 왜 그런걸까. 이란을 떠나 프랑스로 가서 살면 프랑스 사람이 되어 프랑스어를 말하며 살고... 그러면 아무 문제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인가.
그녀는  프랑스에 정착을 하지만 조국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부모가 모두 이란 사람이며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도록 요구한다. 프랑스 학교 아이들도 이국적으로 그녀를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도 이방인으로 자신을 인식한다. 주위 환경이 자신이 태어난 이란을 자신과 떨어뜨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는 망명자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더이상 후퇴할 곳이 없다.
5살에 떠나온 조국이지만 그때까지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했으므로 이란에 대한 인상은 쉽게 흐려지지 못했다. 그럴만도 하다. 이란혁명의 와중에 태어났다니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녀의 부모는 혁명가의 피를 지닌 열혈 청년들이었으니. 이런 저런 여러가지 이유로 그녀는 어릴적 떠나온 조국와 자신을 분리할 수가 없는 삶을 살았다. 자신이 원해서 조국을 버린 것이 아니었으므로 조국은 언제나 그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조국으로의 물리적, 정신적 귀환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 놀랍지 않다. 우리도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배운 언어는 인간의 뇌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사고 전체를 지배하는 언어로 뇌의 가장 중심부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인가. 그 언어를 떠나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 언어습득 능력이다. 가장 먼저 습득한 언어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러한 본능적 이유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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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본 적이 있는 미국영화 한 편을 책으로 다시 읽은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면 앞으로 보게 될 미국 영화를 미리 읽은 것인지도. 아무튼 대도시와 떨어진 섬에 사는 미국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들은 참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지금 현재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가장 소중하다. 그것을 그토록 확신할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가 우리에겐 별로 없는 것 같다. 나중에 자기 생각이 틀렸더라도 그 당시에 맞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으며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면 모두 해결되는 건데 왜 우리는 잘 안될까. 우리는 그래서 너무 신중하다. 앞뒤 전후 모두 고려해서 생각하고 판단하여 결정을 내린다. 신중한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따지다 보니 진짜 자신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까봐 겁이 난다는 말이다. 그때의 내 감정과 생각보다 더 진실한 건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에이제이나 어밀리아나 마야나 경찰관이나 모두 다 행복해 보인다. 그들이 겪은 여러가지 고통과 시련에 공감은 되지만 그들 인생 전체를 보니 정말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감정을 속이거나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다. 위법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위선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여러가지 것들 때문에 진짜 나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나중에 어리석은 것이라 판정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해야한다.
태멀레인이 사라진 것과 마야가 갑자기 나타난 일 등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아주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반전도 있어 꽤 짜릿했다. 소소한 묘사는 충분치 않았지만 쿨하게 진행되는 서사 전개가 매력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인간이 쓴, 책을 좋아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읽고 나니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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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사람마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만,
고종석 선생의 도시에 대한 기억이 궁금했다.
다 읽고 보니 몇 수 배운 느낌이라 좋다.
어서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나 봐야겠다.

p.16~17
그렇게 도시들은 닮았다. 그러나 닮았으면서도 엄연히 다르다. 그 다름은 오래된 건축물이나 박물관의 유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다름은 비슷한 듯 보이는 일상 속의 도시인들, 그 시민들의 ‘영혼‘속에도 있다. 서울의 중심부와 도쿄의 중심부가 비슷해 보이고 서울 사람들의 일상과 도쿄 사람들의 일상이 닮았어도, 그 도시의 내면, 시민들의 내면까지 꼭 닮은 것은 아니다. 특정한 도시의 공간은, 그리고 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내면 속에 ‘세계화‘의 동화력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 어떤 고갱이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도시들이 제가끔 겪은 역사의 중량 덕분이다. 역사의 울타리 속에 간직된 그 고갱이가 서울을 서울로 만들고, 서울 사람을 서울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세계화로 환원되지 않는 그 고갱이를 그 도시의 ‘영혼‘이라 부르려 한다.
그러니, 영혼은 촌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도 있다. 사람들이 파리에서 무수한 화가들을 떠올리고 빈에서 무수한 음악가들을 떠올리는 것은 상투적인 만큼이나 정당하다. 빈의 영혼은 그 무수한 음악가들의 영혼이고, 파리의 영혼은 그 무수한 화가들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 영혼은 그 도시들의 미술관이나 극장 둘레만 배회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광장에, 지하철에, 아파트에, 카페에, 호텔 객실에, 택시 좌석에, 기차역에, 사람들의 발걸음에 깃들여 있다. 그 영혼은 그 도시를 찾은 이방인의 영혼과 교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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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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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의 번뇌의 근원은 시간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모두 시간이다. 시간 개념이 없다면 세상 모든 존재는 결국 같은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우주의 한 원소가 된다는 이 말은 시간의 흐름을 전제한 것이다. 만약 인간의 이 시간을 영겁과도 같은 우주적 관점으로 본다면 그것은 찰나와도 같을 것이다. 거의 0에 가까운 시간, 무에 가까운 시간인 것이다. 이처럼 시간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힘든 일들은 사라진다.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다.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으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다.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계는 매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다. 이 세상을 다른 어떤 세상과 비교하지 않고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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