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양장본)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티브 잡스를 설명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바로 '나는 버림받았고 특별하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 '현실왜곡장'이다.

먼저 '나는 버림받았고 특별하다.'라는 키워드는 스티브 잡스의 개인사와 인성을 반영한다. 스티브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스티브 부부에게 입양된다. 이는 스티브의 개인사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는 버림받았음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없었고, 괴팍한 성격의 이면에는 늘 버림받았음에 대한 기억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버림받았음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버림받았음과 함께 맞물려 그를 독특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에 할애되어 있는 그의 가족관계, 친구관계 중에서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이다고 생각했던 대목은 바로 그의 대학 입학식 장면이었다. 그는 늘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대학 입학식에 부모를 참석하지 못하게 했는데, 아무런 연고 없는 고아처럼 보이고 싶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떠어떠한 성장배경을 가진 실체로서가 아니라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홀로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온 듯한 신비로움과 특별함을 가지고 싶었던 잡스. 어쩌면 이런 자아, 자기애는 버림받은 자아를 치유하기 위한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잡스의 성공 요인인 동시에 미래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이기도 하다. 저자는 인문학적 감각과 과학적 재능이 강력한 인성 안에서 결합할 때 발현되는 창의성이 바로 21세기에 혁신적인 경제를 창출하기 위한 열쇠라고 말한다.
스티브는 그 자신이 기술광이었던 덕분에 스티브 워즈니악과 같은 뛰어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하지만 그가 그 많은 기술광들과 달랐던 점은 바로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가 가지는 시대상도 스티브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 당시의 반문화, 히피, 무정부주의는 환경적으로 새로운 변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에 유리했다.
그가 가진 인문학적 기반은 애플이 만들어낸 제품에, 그리고 애플이라는 기업이미지에 그대로 투영된다. "맥"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맥"이란 예술, 예술가, 예술가적 이미지였다. 심지어 이는 내가 애플에 대해서 잘 모를 때,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잘 모를 때, 그저 "맥"이라는 컴퓨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였다. 실제로 유명한 예술가들은 맥을 많이 사용했고, 커피숍 등에서 보이는 예술가적 기질이 농후한 사람들이 쓰는 노트북도 맥 이었다. 이는 컴퓨터를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되었다. 제품 사양이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는 업계에서 제품 특성이 아닌 반기업적 정서, 창의성, 혁신적인 반항아적 기질 등이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디자인 감각과 편리한 인터페이스까지 갖춰지며 맥은 특별한 컴퓨터가 되었다. 애플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진부한 이야기이니 여기서는 접어 두기로 하고 인터페이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애플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직관적으로 느낀 대목은 콜롬비아 보고타 북부 시골지역의 6살짜리 소년 이야기였다. 이 6살 자리 소년에게 아이패드를 쥐여줬더니 아이는 몇 번 터치해 보고선 직관적으로 아이패드를 이용해 게임을 하더라는 것. 실로 놀라운 이야기이자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아무런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사용 가능한 디지털 기기. 이것이 우리 디지털 문화의 미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실왜곡장'. 현실왜곡장이란 스타 트랙에 나온 용어로, 그 사람이 나타나면 현실이 유연해진다는 것이다. 잡스의 카리스마 넘치는 수사와 굴하지 않는 의지, 그리고 어떤 사실이든 당면 목표에 부합하도록 변형하려는 열성이 현실왜곡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한마디로 말하면, 불가능한 현실 앞에 그 현실을 유연하게 만듦으로써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의지를 불러일으켜 결국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들 파악에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큰 그림을 보며 동기를 부여할 줄 아는 잡스는 이 현실왜곡장을 이용해 실로 많은 성과를 내었다. 다만, 이것이 안 좋게 작용하면 잡스가 스스로 만들어 낸 거짓, 술수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잡스 주위의 많은 사람이 공, 아이디어 등을 빼앗기기도 했고 이 때문에 상처받기도 했다.
늘 불가능한 과제를 내어주며 팀원들을 채찍질한 잡스. 그의 현실왜곡장에 갇힌 팀원들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러한 분투는 바로 '여정자체가 보상이다.'라는 말에 부합할 것이다. 실제로 수십 명의 동료의 입에서 나온 공포담 끝에는 그들 자신이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잡스가 하게끔 했다는 이야기가 붙었다.


잡스는 늘 두 가지를 꿈꾸었다.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회사를 구축하는 것'.
실제로 잡스는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위대한 제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혁신자의 딜레마를 이겨냈다는 것이다. 혁신자의 딜레마란 무언가를 처음 고안한 사람들은 대개 그것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스티브 잡스는 달랐다. 바로 이 점이 그가 진정으로 혁신가인 이유일 것이다. 누구나 한 시대를 새롭게 열 수는 있다. 하지만 한 시대를 새롭게 연 혁신가라 할지라도 자신이 연 새로운 시대의 문을 자기 스스로 닫고, 그 시대를 뛰어넘을 다른 시대의 문을 연다는 것은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위대한 기업들이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기는커녕, 새로운 시대에 적응조차 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잡스는 애플Ⅱ를 통해 PC 시대를 열었지만, 기존 PC 시대를 뒤로 하고 아이패드를 내놓았다. 아이팟으로 음악 시장을 선도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이폰을 내놓음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오히려 시대를 선도해 나갔다.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가 남긴 유산이다.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한 변혁, 이것이야말로 애플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잡스는 애플이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회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 괴팍한 성질에도 위대한 기업들에는 존경과 존중을 보였다. 월트 디즈니사와 대립하면서도 그는 월트 디즈니사가 갖는 위대함을 존경하고 존중했다. 그리고 그 기업이 계속해서 위대한 기업으로 남기를 바랐다. 실제로 잡스는 픽사와 월트 디즈니의 합병을 통해 픽사를 위대한 회사로 유지하는 동시에 디즈니 역시 위대한 회사로 남도록 도왔다.
이제는 애플이 위대한 회사로서 영구히 지속되는 일만이 남았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잡스이기에 잡스 사후의 애플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픽사에서 애플의 미래를 보았다. 잡스는 픽사에서 창의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주도권을 잡고 마음껏 기량을 펼치도록 허용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했다. 이제 애플은 자의 반, 타의 반이긴 하지만 애플의 수많은 창의적인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고 마음껏 기량을 펼칠 기회가 생겼다.
이 책의 뒷부분엔 잡스가 직접 쓴 글이 실려 있다. 일부분을 발췌하자면, "내게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전의 다른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고마움을 표한다. 나는 지금 사용하는 언어나 수학을 고안하지는 않았다. 내가 먹는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도 거의 없으며 내가 입는 옷도 직접 만들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노고와 우리가 올라설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 준 사람들의 성과에 의존한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 역시 인류에게 무언가 기여하기를, 그러한 흐름에 무언가 추가하기를 바란다. 이것의 본질은 우리가 각자 알고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 준 원동력이다."
잡스라는 거대한 빛에 가려 실제로는 자신의 성과임에도 그 스포트라이트를 잡스에게 바쳐야만 했던 수많은 혁신가들에 고한다. 부디, 애플을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위대한 회사로 만들어 달라. 이것이야말로 스티브 잡스의 유산을 물려받은 당신들이 전 생애에 걸쳐 지켜내고 또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사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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