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3세기에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1908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동물학자(세균학자) 메치니코프도 "죽음은 장에서 시작된다."고 갈파하면서 체내 세균의 균형과 건강이 인간 수명에 직결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우리 몸 안에 해로운 세균보다 좋은 세균을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과 전문의인 지은이는 소화기관의 생태, 다시 말해 장내에 사는 다양한 미생물, 특히 세균의 구성(비율)이 우리의 뇌 건강, 정신 건강에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주장한다. 비만부터 천식, 자폐증, ADHD, 우울증, 불면증, 당뇨병, 암, 알츠하이머병에 이르는 현대의 다양한 질환과 증상이, 식이섬유가 적은 서구식 식단으로 병들고 고장 난 미생물군(microbiome) 때문에 생겨났을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보인다.

  지은이는 밀가루 속 글루텐이 어떻게 뇌 건강을 해치는지를 밝힌 『그레인 브레인』을 통하여 이미 이름을 널리 알렸다(저자 홈페이지 https://www.drperlmutter.com/ 가 아주 깔끔하고 풍부하다). 『장내세균혁명(Brain Maker: The Power of Gut Microbes to Heal and Protect Your Brain-for Life)』의 논지는, 원제에 잘 드러나 있는 것처럼 그보다도 훨씬 쉽고 뚜렷하다.

  인간의 몸에는 인체세포보다 10배 이상 많은, 약 100조에 달하는 미생물이 10,000종 이상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소화관에 살고 있다. 미생물군은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이래 인류의 진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함께 변화해 왔다. 원래는 자유롭게 살던 세균이었던 미토콘드리아가 우리 세포 안에 자리잡아 어머니를 통하여 유전되기에 이른 것처럼, 미생물군도 하나의 '기관'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까지 등장했다[심각한 불균형에 빠진 미생물군을 공격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변 (미생물) 이식술'이 쓰이기도 한다. 다음 기사를 참조. 박미라 기자, "대변이식술 장내세균 생태계 복원", 메디칼업저버(2017. 10. 16.)].

  12개 뇌신경 중에서 길이가 가장 긴 미주신경(迷走神經, vagus nerve, 끄트머리 정도의 의미를 가진 줄 알았는데, 이번에 보니 vagabond에서처럼 '나그네'라는 뜻이다. 소화관을 떠돈다 하여 한자 번역어도 '길을 잃고 헤매며 달린다'는 의미를 담았다.)은, 내장신경계(장에는 무수히 많은 신경세포가 있기 때문에 '제2의 뇌'라고도 불린다)와 중추신경계의 수억 개 신경세포 간에 정보를 전달하는 일차적 경로인데, 장내세균은 이 미주신경을 통하여 그들만의 언어(화학전달물질)로 뇌와 소통한다. 일례로, 뇌의 행복물질인 체내 세로토닌은 그 80~90%를 뇌가 아니라 장의 신경세포가 만들고, 장내 유산균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조절한다.

  장내세균이 균형에 맞고 건강하면 염증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이 몸과 뇌에서 덜 생산되어 염증을 기초로 발생하는 당뇨병, 암, 관상동맥질환,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질환을 줄인다. 뱃속 미생물은 장벽을 더욱 튼실하게 만들어 면역반응(염증)을 일으키는 장 누수를 막는다. 미생물은 또한,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치매 위험과 관련된 뇌성장 단백질), 비타민B12 같은 다양한 비타민과, 글루타민산염(인지, 학습, 기억 등 뇌 기능에 관여), 가바(불안을 억제하고 신경활동을 안정시키는 아미노산) 같은 신경전달물질 등 뇌 건강에 중요한 화학물질을 생산한다. 스트레스가 장을 괴롭히는 것처럼 장이 편안해야 기분도 편안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뱃속에 건강한 세균 생태계를 구축하고 가꿀 것인가. 식단을 바꾸면 된다. 바꾸어야 한다. 음식이 약이자 의사이고(食藥同源, 食醫同源),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의 말("Dis-moi ce que tu manges, je te dirai ce que tu es.")처럼 무엇을 먹는가가 나를 규정한다. 무엇보다도, 미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고(그러니까 채소를 많이 먹고), 좋은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를 복용한다.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 발효음식(김치도 "최고의 프로바이오틱 음식 중 하나"라며 언급된다), 저탄수화물 식품, 글루텐 프리 식품, 건강한 지방도 '장내세균혁명'을 위한 전투식량이 된다. 뱃속의 건강한 미생물군이 뇌와 몸의 건강을 지킨다.

  소화가 잘 안 되고 미주신경이 종종 고장을 일으키는 한 사람으로서, 많이 와닿았다. 문제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바로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책에 나오는 구체적인 식단표, 조리법까지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이후 식습관, 생활습관을 의식적으로 조절하고 있다. 책에 인용된 여러 학술지 논문들을 직접 찾아 확인해보고는 싶지만, 일단 아래와 같은 정도로만 정리해둔다(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에 요약본까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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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세균 혁명 - 생로병사의 비밀을 푸는 최후의 열쇠
데이비드 펄머터 지음, 윤승일.이문영 옮김, 윤승일 감수 / 지식너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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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OCR 테스트.
훌륭하네요!

"죽음은 장에서 시작된다." - 일리야 메치니코프(1845~1916)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된다." - 히포크라테스(c. 460 – c. 370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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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김대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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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책은 아니었고, 뇌과학 양념을 친 에세이.
책을 두루 많이 읽으신 분인 건 알겠다.
대한민국도 이제 어른스러워질 때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평소 갖고 있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메시지 자체에는 대체로 공감했다.

보름여 동안 뭘 아주 많이 읽고 썼지만, 단행본으로서는 오랜만의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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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볍게, 부담 없이 읽는 외계 지적 생명 찾기(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젝트 동향.

  편하게 읽히는데, 그래서 평범하다.

  지은이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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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님의 『다시, 나무를 보다』에 이은 따끈따끈한 신간.

  나무의 마음, 숲의 숨결, 우주의 음악을 들려주는 장엄하고 따뜻한 사유.

  켜켜이 얹힌 사진들도 멋져, 우주 자연에서 뭉치어 나온 지 반 년 남짓 되는 딸이 아빠가 책 보는 옆에서 관심 있게 본다.

  경향신문에 연재하셨던 「신준환의 꿈꾸는 나무」를 모으셨다.





  다음은 『행복한 나무』에 인용된 책들 + α






  환경, 생태 분야 책을 주로 내는 지오북 출판사도 흥미롭다. 모아놓고 보니 아는 책이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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