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정체불명의 뭔가를 계속 밟고 있었다. 소가 지나간 뒤 아래를 내려다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람이다! 골목 담벼락 옆에 쓰러진 사람이었다. 낭패감이 들었다. 설마 여기에 사람이 누워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설사 눈에 들어왔어도 한눈에 사람이라고 알아채긴 무리다 싶을 만큼 더러운 옷차림은 길바닥과 거의 같은 색깔이었다. 마치 넝마 뭉치 같았다. 사과하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나를 올려다보는 눈과 마주쳤다. 강렬하다. 거짓 없는 시선만이 살아 있다. 죽을 자리를 찾아 간신히 마라나시에 도착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당황한 나머지 그이의 손을 벌리고 5루피를 쥐어 주었다. 순간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욕지기가 치밀었다. 뭐가 신성한 소라는 거야, 불쾌감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40-1)
파시들의 직업을 훓어보면 법률가, 은행가, 무역인, 의사, 엔지니어, 교직자 등 지위가 높고 수입도 많은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이런 특징은 상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독특한 것은 영어화된 성이 많아서, 개중에는 직업명이 그대로 성이 된 사람도 있다. "내 이름은 드라부지 R. 엔지니어입니다." 호텔 프런트에서 이름을 대는 걸 보고 이해를 잘 못했는데, 아마 중조부쯤 되는 선조가 기술자였던 모양이다. 놀라는 내게, 그는 "닥터라는 성이나 프린터라는 성도 있다. 인쇄업을 했던 거겠지. 심지어 소다워터 씨나 레디머니 씨도 있다고."하며 웃었다. (137)
남쪽 고푸람 앞 골목길을 사흘간 배회하면서 거리 사람들과도 안면을 익혔다. 그 중 한 사람이 "이 집 옥상에서 고푸람이 아주 잘 보인다"며 안내해 줘서 2층에 있는 이 방을 들르게 되었다. 당연히 안내해 준 사람이 이곳 주인이려니 생각했는데, 그냥 근처에 사는 사람이었다. 부엌에서 노부인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르는 남자가 들어오니까 놀란 모양이다. 그래도 싫은 내색 않고 음식을 권하며 환대해 주었다. 이 스케치를 보고 재미있어 하며 "내일도 오세요." 한다. (197)
폰디엔 군이 울상을 지으며 "2시부터 4시까지는 그늘에서 쉬고 싶다."고 하기에 호텔에서 차를 전세 내기로 했다. ...... 그런데 호텔 현관에 옆구리를 갖다 댄 자동차 조수석에, 놀랍게도(!)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어야 할 폰디엔 군이 즐거운 듯 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이 차의 운전사가 친구다."하고 득의양양하게 말한다. (201)
딱딱한 나무 의자가 엉덩이뼈에 고통을 주었다. 내가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던 노인이 이부자리를 의자 방석으로 빌려 주었다. 옆자리의 아기 엄마가 기름에 튀긴 과자와 오렌지를 바구니에서 꺼내 권한다. 그래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2등차 사람들은 좋다. 짐을 순식간에 훔치려고 도전한 남자도 있었지만..., 그건 이쪽에 빈틈이 있어서 도벽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13)
그런데 2등차에 타고 놀란 게 있다. 차 안에 주전자를 든 커피 장수가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사모사 장수도 있다. 더구나 영업은 잊은 둣이 승객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216)
가이드인 `고자이마스` 씨의 이름은 K. 칸이다. 일본어를 인도인 선생에게서 두 달 배웠을 뿐이라며, "그 다음부터는 혼자서 공부했습니다." 한다. 그런 것치고는 어휘력도 풍부하고 정말 잘한다! 반드시 `고자이마스`를 붙이는 건, 이곳에 왔던 어떤 일본인이 "`고자이마스`를 붙이면 정중한 표현이 된다."고 가르쳐 준 때문이라고 한다. "사전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인이 오면 열심히 공부합니다." 일본어를 기억하려는 그의 열성에 끌려서 도와주기로 했다. (279)
달리는 차를 향해 손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차가 급정거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생각하는데, 문을 열고 모르는 남자가 올라탄다. 두 사람의 대화로 보아 아는 사이인 것 같다. 그런데 내게는 아무 설명도 안 한다. 이 택시를 돈 내고 빌린 건 난데, 그런 건 전혀 상관도 않는다. 그들의 논리로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한 명 더 태우는 게 뭐가 문제냐 싶을 것이다. 나도 인도식 합리주의를 꽤 이해하는 편이다. 물론 그것도 그 사람이 속한 계층에 따라 상당히 다르긴 했지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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