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안개비가 잠깐 뿌리다가 늦게 갰다. 선창으로 나가 쓸 만한 널빤지를 고르는데, 때마침 수장 안에 피라미 떼가 몰려들기에 그물을 쳐서 이천여 마리를 잡았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대로 전선 위에 앉아서 우후 이몽구와 더불어 술을 마시며 새 봄의 경치를 구경하였다. (52)
12일 맑음. 아침 식사 후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라고 분부하여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하지 않으셨다. (149)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의 평안하심은 알았으나. 또 면의 병세가 중하다고 하였다. 몹시 애타는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유상(유성룡)이 죽었다는 부음이 순변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는 유 정승을 질투하는 자들이 말을 지어내 훼방하려는 것이리라. 통분함을 이길 수 없다. 이날 저녁에 마음이 몹시도 어지러웠다. 홀로 빈집에 앉았으니, 심회를 스스로 가눌 수 없었다. 걱정에 더욱 번민하니 밤이 깊도록 잠들지 못했다. 유상이 만약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면 나랏일을 어찌할 것인가. (189)
비가 계속 내렸다. 홀로 앉아 아들 면의 병세가 어떠한지 염려되어 글자를 짚어 점을 쳐 보니, "군왕을 만나 보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아주 좋았다. ... 또 유 상의 점을 쳐 보니, ...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 왔다. 매우 길한 것이다. 저녁 내내 비가 내리는데, 홀로 앉아 있는 마음을 스스로 가누지 못했다. ... 비가 올 것인가 갤 것인가를 점쳤더니, 점은 "뱀이 독을 내뿜는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앞으로 큰비가 내릴 것이니, 농사일이 염려된다. (189)
20일 새벽 바람이 그치지 않았으나 비가 잠깐 그쳤다. 홀로 앉아 간밤의 꿈을 기억해 보니, 바다 가운데 외딴섬이 눈앞으로 달려와서 멈췄는데, 그 소리가 우레 같아 사방에서는 모두들 놀라 달아나고 나만 홀로 서서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참으로 흔쾌하였다. 이 징조는 곧 왜놈이 화친을 구하다가 스스로 멸망할 상이다. 또 나는 준바를 타고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이는 임금의 부르심을 받아 올라갈 징조이다. (205-6)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고 안으로는 계책을 세울 기둥 같은 인재가 없으니 더욱더 배를 만들고 무기를 다스리어 적들을 불리하게 하고 나는 그 편안함을 취하리라. (219)
어두울 무렵 항복해 온 왜인들이 광대놀이를 많이 벌였다. 장수된 자로서 좌시할 일은 아니었지만, 귀순하여 따르는 왜인들이 마당놀이를 간절히 바라기에 금하지 않았다. (329)
늦게 두 조방장과 충청 우후를 불러다가 상화떡(床花餠)[각주57]을 만들어 함께 먹었다. (335) [각주57] 상화병(霜花餠). 밀가루를 수로 반죽하여 발효시킨 다음 거피팥소를 넣고 쪄서 만든 음식. 상화는 고려 시대 때 원나라에서 유입된 것으로 조선 시대에는 중국 사신에게 대접하던 명물 음식의 하나였다. ... 제사에도 썼던 기록이 보인다. "여식이 제사 후에 상화병 한 상자를 얻었다." (496)
6일 맑음. 꿈에 돌아가신 두 형님을 만났는데, 서로 붙들고 통곡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장사를 지내기도 전에 천리 밖에서 종군하고 있으니, 누가 일을 주관한단 말인가. 통곡한들 어찌하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두 형님의 혼령이 천리 밖까지 따라와서 이토록 근심하고 애달파 한 것이니 비통함이 그치지 않는다. 또 남원의 추수 감독하는 일을 염려하시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연일 꿈자리가 어지러운 것도 형님들의 혼령이 말없이 걱정하여 주는 터라 애통함이 더욱 간절하다.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원통한 마음에 눈물이 엉겨 피가 되건마는, 하늘은 어찌 아득하기만 하고 내 사정을 살펴 주지 못하는가. 왜 어서 죽지 않는 것인가. (363)
비가 계속 내렸다. 아침에 출발하려다가 비가 이토록 오니 쭈그리고 앉아 고민하고 있을 때쯤 ... 길을 물어보자 출발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여 그대로 묵었다. 아침에 고을 사람들의 밥을 얻어먹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종들을 매질하고 밥한 쌀을 돌려주었다. (3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