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입사 평가위원의 “악역을 마치며”
[편지] 한겨레의 수습사원 선발 절차는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권태호 기자
지난 10월26일치 <한겨레>에 16기 신입사원 합격자 발표가 실렸습니다. 취재·편집 6명, 한겨레21 1명, 사진 1명, 경영관리직 7명 등입니다.

<한겨레> 경제부 기자인 저는 지난 10월16~17일 이틀동안 16기 신입사원 선발 합숙평가 평가위원으로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2003년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2년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선배들을 대신해 또한번 ‘합숙평가 후기’를 띄웁니다. 개인 프라이버시와 회사 보안과 관련된 사항은 밝히지 못함을 미리 양해바랍니다. 또 <한겨레> 합숙평가 포맷은 매년 조금씩 바뀝니다. 내년 합숙평가가 이와 똑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겨레>, 언론사 입사 희망자들 뿐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0. 1~2차 시험

<한겨레> 입사시험은 1차 필기(국어, 상식, 영어는 토익으로 대체), 2차 논문·작문, 3차 합숙평가와 임원 면접 등으로 진행됩니다. 이번 시험에는 기자직에만 1200여명이 지원했습니다. <한겨레>는 올해부터 지원서를 받을 때, 기획안을 제출하라고 했는데 이는 허수방지 목적이 컸습니다.

1차에선 합격자의 10배수를 뽑습니다. 모두 150명 정도 됩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2차 논문과 작문 시험을 치릅니다. 올해 논문 주제는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 사상을 중심으로 최근 부동산 정책에 대해 논하시오’, 작문 주제는 ‘침묵’이었습니다. 2차 시험에선 3배수를 뽑습니다. 그리고 3차는 1박2일 합숙면접입니다.

1차 합격자는 제로 베이스에서 2차 시험을, 2차 합격자 역시 제로 베이스에서 3차에 임하게 됩니다. 3차에 오른 수험생들은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습니다.

합숙면접은 기자직과 경영관리직을 나눠 다른 프로그램으로 별도 진행됩니다. 저는 기자직 면접위원이었습니다. 저 말고도 다양한 직급의 면접위원들이 여러분입니다.

1. 자기소개(오전 9:30~11:00)

<한겨레> 합숙평가는 블라인드 테스트입니다. 출신지역·학교는 물론 본인 이름도 모른 채 진행됩니다. 수험생끼리도 ‘별명’으로 불립니다.

자기소개는 스스로 붙인 별명과 함께 자기를 PR하는 시간입니다. 이미 ‘한겨레 면접장에선 별명을 쓴다’는 게 많이 알려져 미리 준비해온 이들이 많더군요. 자기소개가 합격에 별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첫 출발을 순조롭게 하면, 자신감이 붙을 것 같습니다.

2. 피처 기사 취재 및 작성(11:30~오후 7:00)

우선 평가위원 중 한 명이 수험생들에게 ‘피처 기사’가 뭔지, 그리고 어떻게 써야 좋은 점수를 받는지 설명했습니다. 2년 전에 비춰볼 때, 훨씬 친절해졌습니다.

주제는 ‘청계천’이었습니다. 수험생들은 청계천에 나가 취재한 뒤, 수유리 아카데미로 돌아와 교실에 비치된 노트북에 기사를 쓰고, 이를 프린트해 제출했습니다. 취재일지와 나눠준 취재수첩도 함께 제출합니다. 오후 7시까지 제출하면 됩니다. 대부분 5시~5시30분께 복귀하더군요.

면접위원들은 수험생들을 내보낸 뒤, 직접 청계천으로 나가봤습니다. 수험생들이 겪을 현장감을 함께 느끼는 게 평가에 도움이 될 듯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첫번째 청계천 나들이였습니다. 면접위원들이 피처 기사에서 보려는 건 ‘매끄러운 글솜씨’가 아닙니다.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를 통해 그 사람의 시각, 기자로의 장래성 등을 알고자 하는 겁니다.

1)‘무엇을’ 쓸 것인가?

처음 청계천을 나간 저에게 다가온 청계천은 우선 마치 미로 또는 감옥처럼 느껴졌습니다. 좋기는 한데, 일단 들어서고 나니 도대체 출구가 어딘지 알 길이 없고, 한 번 바깥으로 나가려면 징검다리 개울을 건너야 하고, 게다가 계단은 왜 그리 좁게 만들어 놓았는지,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매우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징검다리 개울은 보기엔 좋은데 유모차를 옮기려면 땀을 삐질삐질 흘려야 하고. 화장실도, 식당도 없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의문이 일었습니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겠죠?

처음 눈에 보인 것이 실제적 문제였다면, 두번째로 다가온 것은 다분히 정서적이고 한편으론 감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지적됐지만, 지금 만들어진 청계천은 사실상 거대한 인공수로입니다. 진짜 청계천은 우리 눈에 보이는 청계천 저 아래 어두컴컴한 곳에서 구정물을 머금은 채 끊어질듯 졸졸 흐르고 있겠죠. 문득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에 배운 이은상씨의 편지글 ‘한눈없는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징검다리에 박아놓은 조명등도 왠지 인조인간처럼 섬뜩해 보였습니다. 자연미를 잃은 청계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겠죠?

세번째로 눈에 들어온 건 둘째번 이야기와 정반대로 ‘자연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비록 청계천이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하나, 오리떼들이 날아들고 드문드문 물고기들이 보이고, 물가로는 물풀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무엇보다 청계천을 찾아간 그날, 중학교 1학년쯤 돼보이는 계집아이들이 종아리를 둥둥 걷고 흐르는 물 속에 들어가 장난치며 노는 모습 등을 보며, ‘이렇게들 좋아하는데, 그것이 굳이 자연천이 아니면 좀 어떤가’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태초의 자연 뿐 아니라, 사람이 일단 만들어 놓은 이 자연(청계천)이 앞으로 1년 뒤, 2년 뒤에는 또 어떻게 바뀔 것인지, 그속에서 사람들은 또 어떻게 이 자연을 누릴 것인가 하는 점이 궁금했습니다.

그 다음 네번째에야 청계천 바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과거 새까많게 찌든 매연 때와 베란다 바깥으로 속옷들이 나부꼈던 삼일 아파트 자리에 롯데캐슬이 올라서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종로5가 아래쪽으로는 온통 공구상들인데다 낮은 빌딩들 뿐인데, ‘사회적 다이니즘’이 작용하듯, 이곳도 새롭게 재편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었습니다. 청계천 주변 땅값이 올라가면, 임대료가 올라갈 것이고, 그만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영세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또 그 자리에는 그만한 임대료를 물고서도 수익모델을 찾는 업종들이 들어서겠죠. 1차로는 외식·오락업체들이 줄을 이을 것이고, 2차로는 주상복합 건물들이겠죠?

그 다음 문제는 고층화입니다. 땅값이 오르면, 세입자 뿐 아니라 4~5층짜리 빌딩 주인들도 바뀔 것입니다. 자본력을 지닌 새 주인들은 토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고층빌딩을 지을 것이고, 이때 고려대상이 되는 것은 정부 또는 지자체의 규제(고도제한 등)와 수익성이겠죠? 어쨌든 청계천 주변이 고층화가 되면, 훤히 뚫려 시원한 청계천 하늘이 조각조각 나는 건 아닌가하는 엉뚱한 우려도 같이 들었습니다.

자, 그럼 수험생 입장으로 돌아갑시다. 수험생들에게도 저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상념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걸 다 조금조금씩 쓸 순 없습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 △남들이 덜 쓸 것 같은 주제를 잡으십시오. 조심해야 할 건 ‘다르게 쓰겠다’는 것에만 급급할 경우, 논리박약으로 글이 꼬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십시오.

첫번째 사안인 실제적 ‘불편’을 이야기해 봅시다. 이것은 현상이 널려 있습니다. 주변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됩니다. 상황을 세분화하면, 장애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것의 문제점은 너무 흔해 식상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첫번째 사안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면 시민들의 이야기보다 정책당국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를 꼬치꼬치 캐묻고, 관련 전문가 이야기도 함께 담아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수험생들이 어차피 똑같은 이야기하기 마련인 시민 A, B, C의 이야기만 줄줄이 늘어놓고 “시민들이 이렇게 불편해 한다, 당국은 각성하라”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정책당국자와 연결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통해 최소한의 성과라도 끌어낸다면, 그 수험생은 높은 점수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쓸 때는 ‘내 글을 읽을 면접위원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일 신문에 이 기사가 실렸을 때의 독자 반응’을 염두에 두십시오. 장애인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이런 생각을 할 지도 모릅니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평가받지 않을까?’하고. 그러나 ‘장애인 불편하잖아’하고 일방적으로 윽박지르기보다 ‘계단을 좁게 만든 이유가 뭔가’라는 궁금증(호기심)을 스스로 가져야 합니다. 기자란 높은 곳에 앉은 판관이 아니라, 전달자로서의 역할이 더 큽니다. 그 궁금증을 풀어주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비판은 절로 됩니다. 예를 들어, 정책당국자와 관계자들을 취재해 ‘계단을 좁게 만든 이유는 청계천 경관을 더 장엄하고 수려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를 끌어내면, 비판은 독자들이 하게 됩니다.

둘째 사안, ‘진짜 청계천’을 택했을 때를 한 번 봅시다. 첫번째 사안에 비해 조금 다른 시각이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사물의 현상이 아닌 이면을 본 것이니까요. 또 글쓰기 솜씨를 뽐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접근은 기사가 아닌 수필에 그칠 우려가 매우 큽니다. 수필은 자신의 감상만을 끄적일 뿐, 건설적 대안을 마련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현상황에서 ‘청계천을 걷어내고 자연하천을 제대로 복원하자’, 이런 주장을 할 순 없는 것 아닙니까? 결국 도입부에는 뭔가 있어 보이다, 결말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감상적 접근을 하더라도 건설적 메시지가 담겨야 합니다.

셋째 사안, ‘자연이란’을 택할 경우를 봅시다. 개인적으론 둘째 사안보단 셋째 사안을 택하는 게 차라리 더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면에 접근하는 또다른 시각과 그를 뒷받침하는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시민들 반응, 당국 계획·입장, 그리고 향후 전망 등. 비판의 칼날은 첫번째 ‘불편’ 사안에 비해 조금 무뎌보일 진 모르나, 긍정적 글쓰기와 현장감을 두루 접목시킬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비판을 좋아하는 신문’이란 선입관에 빠져, 부족한 점·모자란 점·실수한 점만 보려고 눈을 부릅뜨면 종종 이런 부분을 빠뜨리게 됩니다.

넷째 ‘경제 또는 계급’ 사안을 택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이는 공간에 대한 접근을 청계천이 아닌, 주변으로 확대하고, 청계천이 생태환경 뿐 아니라 경제환경 나아가 계급의 공간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사회과학적으로도 재미있는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회’ 이야기가 아닌 ‘경제’ 이야기로 나아가려면 좀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히 공구상 몇 명 취재하고, “청계천 복원돼 좋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살기 힘들고, 집세 올려달라고 해 걱정이다. 여기서 가면 어디로 가야하나”(한숨) 이런 식으로 쓰면, 최악입니다. 경제적으로 접근하려면 먼저 냉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 구체적인 팩트, 수치 등을 챙겨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종로6가 공구상 임대료는 평당 얼마이고, 길가 쪽은 얼마, 길 안쪽은 얼마다. 그런데 청계천 복원으로 앞으로 종로 5~6가 임대료가 물길 주변 쪽은 종각~종로3가 수준으로 오른다는 것이 부동산업계 전망(업계 이야기를 뒷받침해)이다. 이 정도 임대료를 내고도 버틸려면 월수입이 얼마가 되어야 한다. 이런 월수입을 거둘 수 있는 곳은 이러이러한 업종 밖에 없다’ 이런 구체적인 수치들을 근거로 자신의 논거를 읽는 이에게 차분하게 하나씩하나씩 설득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메시지가 담겨야 합니다. ‘이 사람들 어려우니까 도와주자’는 식의 이야기는 정말 곤란합니다. 공구상이나 만물시장 등이 이곳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면, 왜 그러해야 하는 지 설명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대로 그냥 놔두면 청계천은 도심의 미사리가 되고 만다. 청계천 주변 문화를 다양화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서울시가 청계천의 문화·경제 지도라는 밑그림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얼마간의 예산이 들더라도 그로 인해 시민들이 얻는 이점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낭비가 아닌, 투자 요소다’ 이렇게 논지를 풀어나가면 글을 전개하기가 훨씬 쉽겠죠? 그러나 어쨌든 ‘사회’ 문제가 아닌 ‘경제’ 문제를 짧은 시간에 다루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를 안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셋째나 넷째 식의 이야기를 쓴다면 더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겁니다.

2) 어떻게 쓰나?

무엇을 쓰는가보다,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 저는 채점을 할 때, 먼저 ‘이 친구가 몇 명을 인터뷰했나, 그리고 인터뷰한 사람 중 몇 명의 이야기를 기사에 인용했나’를 가장 먼저 눈여겨 봤습니다. 기사를 잘 쓰고 안 쓰고는 그 다음입니다. 어차피 그 자리는 ‘기사를 잘 쓴 기자’를 뽑는 곳이 아니라, ‘좋은 기자가 될 자질을 지닌 사람’을 뽑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사가 소설과 다른 점은 픽션이냐, 논픽션이냐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수필과 다른 점은 객관과 주관의 차이입니다. 객관을 밑바탕에 깔기 위해선 사실(fact)에 대한 접근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접촉은 없이, 그저 맨눈으로 휘휘 둘러보면서 자신이 느낀 감상이나 떠오른 생각들만으로 기사를 채우면 그 글이 아무리 유려하더라도 기사로서의 가치는 없습니다.

- 그 다음, 취재한 걸 다 쓰면 안 됩니다. 10을 취재하고 4~5를 쓰면 훌륭한 기사가 되지만, 10을 취재해서 10을 다 쓰면 중구난방, 중언부언이 되고, 5를 취재해서 5를 쓰면 헐거운 기사가 됩니다. 인터뷰한 사람을 다 적어넣으면 곤란하고, 멘트는 각각이 나름의 개별적 의미를 지닌 경우에 한해서만 기사에 실어야 합니다. 따라서 똑같은 인터뷰를 여기저기 계속 따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그래도 ‘내가 고생한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인터뷰 내역은 기사가 아닌, 함께 제출하는 취재일지에 적어넣으면 됩니다.

-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마감시간입니다. 첫날 피처 기사에서 마감시간을 넘긴 수험생이 5명 정도 됐습니다. 아마도 ‘마감시간’을 두고 글쓰기를 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약간의 감점을 하긴 했지만, 사실 합격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까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들은 모두 탈락했습니다. 이유는 마감을 넘길 정도로 쫓기면서 허겁지겁 쓴 기사였으니, 당연히 완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첫날 마감시간을 넘겼다는 것이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해 나머지 분야에서 ‘더 잘해야 한다’, ‘모험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도 모르게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상황이 더 꼬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날 마감시간을 넘긴 수험생 5명 중 3명이 다음날 인터뷰 기사에서 또 마감시간을 넘겼습니다. 아마도 그런 연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3) 수험생들의 피처기사

- 모두 23명이었습니다. 이중 7명이 ‘청계천의 불편’을 이야기했습니다. 장애인 이야기를 든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5명이 ‘청계천의 경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청계천의 양극화를 이야기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불쌍한(?) 공구상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명이 ‘청계천 복원하니, 시민들이 좋아한다’고 썼습니다. 이들 14명 중 2명 외에 다 탈락했습니다. 합격한 2명도 피처 기사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합격한 겁니다. 뻔한 이야기에 워낙 많이 나온 이야기였기에 임팩트가 약했습니다. 또 ‘경제’ 이야기는 촘촘하게 글을 엮지 못해 내용이 헐겁거나 논리적 허점이 단박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경제’ 이야기를 당사자 말만 듣고, 수치적 논거없이 막연하게 “예전보다 못하다”, “무지하게 잘된다”는 식의 이야기만 나열하면 곤란합니다. 이들의 탈락 요인이 ‘주제 선정’ 때문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불편’을 이야기하려면,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을까’하는 점에 주안점을 둬 그를 쫓아야 했고, ‘양극화’를 이야기하려면 더 촘촘하고 꼼꼼하게, 마치 핀셋으로 개구리를 해부하듯 접근해야 했습니다. ‘청계천 복원하니, 시민들이 좋아한다’고 쓰려면,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는 표피적 현상만 쓰면 곤란합니다. ‘왜 좋아하나, 앞으로도 좋아할 건가’ 등 늘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 심사위원들이 가장 주목했던 기사는 ‘삼일 고가도로와 교각 콘크리트 덩어리는 다 어디로 갔나’는 궁금증(호기심)에서 출발한 기사였습니다. 접근이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아쉬웠던 것은 이 기사는 마치 기사를 쓰다만 것 같았습니다. 이 수험생은 기본적으로 ‘그 폐기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비판적 예단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보니, 92%가 재활용되고, 8%는 수도권 매립지로 보내져 제대로 잘 활용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자 이 수험생은 그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러다보니, 글은 ‘교각 어디로’에서 출발했다가 시 관계자 설명듣고 고개 끄덕인 뒤, 엉뚱하게 ‘청계천에 남겨진 교각같은 동대문운동장 노점상들’ 이야기처럼 샛길로 마구 빠집니다. 그래서 이 수험생은 결과적으론 피처 기사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진 못했습니다. 꼭 잘못된 것만을 꼬집고 지적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데 말입니다. 92%가 재활용됐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어디에 쓰여졌는 지 좀더 뒤쫓아가 독자들 궁금증을 풀어주고, 개발시대의 삼일고가도로가 재활용되는 데 의미부여를 하고, 다른 거대 교각이나 폐기물 등은 또 어떻게 재활용되고 있는지 등을 덧붙인다면 훌륭한 기사가 됐을텐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 주목을 끌었던 또다른 기사는 청계천에 온 도림천 주민들을 통해 ‘청계천 복원이 작은 동네 하천의 복원 등 지역하천 복원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는 사회변화를 포착한 기사였습니다. 이는 사례 1~2개만 더 찾아 잘만 포장하면 그대로 신문기사로 만들어도 훌륭한 기획기사가 될 것 같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그렇게까지 하긴 힘들었을테고. 사회적 메시지가 도드라져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 ‘노점상 불쌍하니, 서울시 대책 세워라’는 투의 기사는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점상 문제를 다루더라도 문화적 접근, 또는 노점상이 아닌 노점상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다룬 것들은 오히려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즉 ‘노점상이 있으면 청계천 주변 문화가 더 풍부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노점상이 있어야 청계천 데이트가 더 즐거울 수 있지 않은가’ 등입니다. 문제의식이 약하고, 주제가 가벼운 감은 있지만, 사물을 보는 다양성의 한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늘 눈에 핏발만 부릅뜨면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이밖에 내용적으로는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광고카피처럼 ‘청계천에는 3색3무1티가 있다’거나, ‘청계천의 사계’ 등 단어 하나에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담은, 일종의 형식미를 갖춘 기사들도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젊은 부부, 어린이,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등을 각각 청계천의 봄·여름·가을·겨울에 비유해 하나의 이야기를 한 꼭지마다 담은 기사는 형식미가 지나쳐 좀 작의적인 냄새가 나기도 하고, 대학입시 논술 답안지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각과 진정성이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3. 집단토론(오후 8:00~9:30)

- 이전에는 조별로 나눠 하나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진행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겨레> 지원자들의 논점이 그리 극명하게 차이가 나지 않아 토론이 겉돌거나, 변별력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 그래서 이번에는 주제별 토론이 아닌, 모의 편집회의를 벌였습니다. 조도 3개조로 나눠 참여인원을 7~8명으로 줄여 좀더 심도있는 토론이 되도록 했습니다. 당일날 아침 <한겨레신문> 편집국 회의자료를 주고, ‘1면 머리기사’, ‘정치·경제·사회면 머리기사’ 등에 대해 토론하도록 했습니다. 예상대로 각자의 생각을 이전의 주제별 토론에 비해 훨씬 다양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 이런 식의 토론에서 중요한 건 ‘내일 신문’이 모범답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신이 무엇을 주장하든(이것이 1면 머리가 되어야한다) 거기에 대한 뚜렷한 이유만 제대로 제시하고, 나아가 주변의 동료 수험생들을 설득시킬 수 있으면 됩니다.

- 힌트 하나만 드리자면, 연결·종합,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신경쓰라는 겁니다. 즉 단순히 나열된 항목 중 하나만 골라, ‘이걸 1면 머리로 올리자’는 것에 그치지 말고, ‘이것과 이것을 연결하고, 이렇게 꾸미면 어떨까’ 또는 ‘이것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건 왜 빠졌느냐’ 등을 지적할 줄 안다면 좋을 것입니다.

- 예를 들어, 이날 정치면에 단신처럼 ‘중부권 신당 창당’이 짤막하게 제목만 언급돼 있었는데, 한 수험생이 ‘이를 주요 기사로 올라있던 ‘10.26 재선거 점검’과 연결시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지역주의’라는 식으로 기사를 키우자고 제안했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또다른 수험생이 ‘그런 식의 신문만들기가 오히려 지역주의를 더 자극한다’며 반대했습니다. ‘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 또 ‘천정배 법무장관 단독인터뷰’라는 부분에 대해 한 수험생은 “사표를 낸 김종빈 검찰총장 인터뷰는 왜 없느냐”고 지적했습니다. 면접위원이 일부러 제외시킨 부분인데, 잘 포착했습니다. 신문이란 늘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듣고,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기본적인 균형감각을 갖췄다고 판단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4. 친교의 시간(오후 9:30~새벽 1:00)

- 이미 널리 알려진 터인지, 예전보다 편하게 맞는 듯했습니다. 그저 선배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경쟁자로 만난 낯선 동료들과 우의도 다지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듯합니다. 그 사이 친해진 건지, 3명의 수험생이 농담처럼 “우리 다 뽑아주시고, 우린 월급 3분의 1만 받으면 안되나요?”라고 물어볼 때는 ‘쿡’하고 가슴이 메어왔습니다.

- 2차로 노래방에도 갔습니다. 면접위원들끼리 미리 약속을 했습니다. 일부 수험생들이 분위기에 젖어 ‘3차’를 가자고 하더라도, 응하지 말기로. 다음날에도 집중력이 요구되는 평가가 계속 되는데, 컨디션이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튿날>

5. 인터뷰와 사진 취재(오전 10시~낮 12:30)

- 이전에는 현장으로 내보내 스트레이트 기사를 써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지적돼, 이번에는 홍세화 선배를 내세워 모의 인터뷰를 했습니다. 수험생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기에 교실에 홍 선배가 들어서자 수험생들이 약간 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홍 선배가 새책 출간기념 형태로 간단한 내용을 설명하고, 수험생들이 기자가 돼 질문을 하고, 홍 선배가 대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사진기자 수험생들은 기사 대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실제 기자회견과 거의 흡사하게 진행됐습니다.

- 평가를 제대로 하자면, 누가 어떤 질문을 하는가도 봐야겠지만, 이번 평가에선 질문내역보단 제출한 인터뷰 기사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 인터뷰 기사를 쓸 때, 가장 점수가 낮은 건 ‘진행순서대로 그대로 일문일답으로 쓰기’입니다. 일문일답으로 써도 괜찮으나, 그때도 흐름을 따라 써야 합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먼저 쓰고, 조금씩 연관되는 것을 물 흐르듯 이어쓰면서(마치 둘만 앉아서 마주보고 이야기한 것처럼), 마지막에는 소감이나 전망 등을 이어쓰면 될 터입니다. 또 일문일답을 할 때는 질문과 답변을 모두 짧게 하는 게 좋습니다. 단순한 일문일답보다는 어차피 이 자리는 평가 자리니까, 인터뷰 내용을 새롭게 재편성해 자신의 글(기사)로 풀어쓰는 것입니다. 이게 일문일답보다 더 어렵기에 당연히 더 좋은 점수를 받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다 쓰려고 하면 안됩니다. 핵심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사진기자직 수험생들에게는 홍세화 선배의 인터뷰가 시작 되기에 앞서 회사에서 미리 준비한 컬러슬라이드필름 2통씩을 나눠 주었습니다. 본인들이 합숙평가에 참가하며 미리 준비해 온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난 뒤 홍세화선배 인터뷰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이것은 사진기의 여러 메커니즘 중 플래시를 사용해 실내 인물 촬영을 얼마나 잘 하는 지를 보려는 의도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사진기자가 되면 취재하는 사진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을 플래시를 사용해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실내 인터뷰 사진 촬영을 마친 4명의 수험생들에게 다음 과제로 주어진 것은 수유리 4.19국립묘지 종합촬영이었습니다. 신문이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전환되었고, 각 언론사마다 기획화보를 중요한 기사로 처리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맞춘 것이었지요. "지금 여러분들에게 신문의 1개 면을 드릴 테니 수유리 국립 4.19묘지를 화보로 꾸밀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 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이야기 한 후 함께 동행한 평가위원이 화보 사진 취재시 유의할 점을 간단히 설명한 후 약 2시간 정도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이렇게 촬영된 필름은 현상 후 사진부장과 사진부의 평가위원이 함께 면밀히 살펴보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지금 현재 사진을 얼마나 잘 찍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지, 사진을 찍기 위해 대상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등이 더 중요한 평가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수험생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4.19 묘역을 화보용으로 취재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주제였더라도 모두에게는 공평했다는 것입니다. 시위나 집회 현장에 가서 결정적인 한 장의 사진을 취재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진기라는 네모 창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지 그 생각과 정체성이 보이는 사진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6. 평가위원 면접(오후 2시~6시)

- 마지막입니다. 면접에 들어가기 전, 면접위원들은 그때까지 수험생들이 쓴 피처·인터뷰 기사를 검토하고, 토론에 대한 점수도 각자 나름대로 매긴 상태입니다.

- 이때까진 면접위원들끼리 서로 의견교환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각자 머리 속에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상태입니다. 면접 전, 면접위원들끼리 약속했습니다. 블라인드 면접이긴 하나, 필요할 경우 나이와 전공 정도는 물어보도록 하자, 다만 선입관 배제를 위해 출신대학과 출신지역은 묻지 말자고.

- 2003년 면접에서 수험생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악역을 맡았던 저는 처음 몇 명에 대해선 2003년과 비슷한 형태의 면접태도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차별적 ‘압박’이 합격예상자나 탈락예상자의 색깔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던 측면은 있었던 데 반해 그 압박면접으로 인해 ‘안전권’ 합격자가 ‘탈락’되거나, ‘탈락 가능성이 높은 수험생’이 기사회생하는 역할은 적었던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몇 명이 지난 뒤에는, 자연히 ‘탈락 예상자’에게는 질문을 잘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면접관들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복기를 해본다면, 면접시간이 길면 길수록 합격가능성에 더욱 근접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면접위원들은 ‘이 친구가 지금까지는 성적이 좋은데, 내 판단이 제대로 된 것일까’라는 생각에 자꾸 질문을 내뱉고, 약점을 찌르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제가 참여한 평가와 면접 이후에도 또 다음단계에서의 면접과 평가도 진행되었고, 최종적으로 한겨레 새 식구가 될 후배이자 동료들이 정해졌습니다.

7. 불합격한 수험생들에게

2년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시험이라는 게 누구를 뽑아야 하고, 누구를 떨어뜨려야 하는 가혹한 제도입니다. 3차에까지 올라온 이들이라면, 누구를 뽑아도 무리가 없다는 게 평가위원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불합격한 몇 명에 대해선 평가위원들이 많이 아쉬워한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너무 상심치 마십시오. 어쩌면, 당신들은 치열했던 1박2일의 ‘한겨레 탈락’을 평생 울궈먹을 쓰린 추억거리로 얻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파야,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한겨레>와의 올해 ‘인연’은 여기까지였나 봅니다.

<한겨레>에도 실렸던 조선시대 화가 윤두서의 시조 한 수를 위로삼아 띄웁니다.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바려시니/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고야/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 듯이 있거라.”

8. 언론사 또는 취업준비생들에게

- 주제넘은 짓인 줄 알면서 감히 한 말씀만 드립니다.

- 취업난이 단군 이래 최악인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떡하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그 장벽을 스스로 넘던지, 아니면 아예 ‘블루오션’을 찾아 창업을 하던지. 나이들면 제 밥벌이는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 합숙면접을 마치고, 우연히 언론사 준비생들의 다음카페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준비를 할 때는 이런 카페가 없었기에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카페지기에겐 미안하지만, ‘처음 준비할 때가 아니라면, (수험생이) 이곳에 들어와선 안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 힘들고 어려워서 그러겠지만, 자기연민 투의 글이 너무 많고, 또 그걸 보며 동병상련을 느끼며 의지하려는 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연민’이란 구질구질한 감정은 속을 곪게 만듭니다. 기자나 PD직 지망생들은 감수성이 풍부한 이들이 많기에 쉽게 감정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우울할 시간에 책 한 자 더 보십시오.

- 언론사 시험과목인 국어, 영어(토익), 상식은 나중에 기자가 되었을 때 아무 도움 안 됩니다. 따라서 언론사 준비기간은 인생에서 그냥 버려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겨우 10명도 안 뽑는 언론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수험생들의 작문·논문을 일일이 체크할 시간도,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언론사는 서류전형을, 그리고 <한겨레>는 객관식 시험을 치르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평가가 전혀 무가치하다고는 생각지 않는 것이, 최소한 ‘성실성’에 대한 잣대는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언론사 시험을 국어·영어·상식이 아니라 수학·과학으로 대체하더라도 합격자 결과는 비슷하게 나올 겁니다. 카페에서 몇몇 글을 읽어보고선, ‘아, 이 친구는 글도 잘 쓰고, 기자든 PD든 무엇을 하든 참 잘할텐데, 이렇게 하다간 아마 1차 시험 벽을 넘기 힘들 것 같다. 차라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1차 시험’은 순전히 성실성으로 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성’은 기자 또는 PD, 사회인의 기본조건입니다. ‘성실성’은 때론 ‘체제순응’과 혼동되긴 하나, 창의력, 비판의식 등도 성실성이 밑바탕되지 않는다면, 바람불면 날아갈 잘난척이나 하는 쭉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대학입시나 국가고시도 마찬가지이지만, 장기간에 걸친 공부는 흔들리지 않는 ‘지속성’이 생명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주변환경(집안·연애·친구 등)이 깨끗해야 하고, 그 다음 생활이 단순해야 하고, 그리고 머릿속이 늘 맑아야 합니다. 최소한 수험기간 동안은 단순한 인간이 되십시오. 생활도, 생각도. 기계처럼 사십시오. 심지어 이성친구도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십시오. 1주일에 하루를 만나든, 매일 만나든. 그래야 수험기간을 단축시킵니다.

- 구체적으로 들어갑시다.

- 첫째, 일어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 나아가 밥먹는 시간까지 일정하게 유지하십시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좋습니다.

- 둘째, 공부시간은 하루 10시간으로 일정하게 유지하십시오.(아침 9시부터 점심·저녁시간을 빼고 밤 9시 또는 10시까지 하면 됩니다)

- 셋째, 흐트러지면 안됩니다. 하루 10시간 공부를 한다고 할 때, 1주일을 그냥 놀면, 일요일을 빼고도 60시간의 공백이 생깁니다. 60시간의 공백을 메우려면 2달 이상을 하루에 1시간씩 더 공부해야 합니다. 한 달을 그냥 놀았다면, 그 해 시험은 포기하십시오.

- 넷째, 수험기간을 정하십시오. 가장 위험한 게 ‘될때까지 한다’는 겁니다. 무슨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것 같지만, 이는 반대로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한겨레>를 포함해 일부 언론사들이 잇따라 ‘나이 철폐’를 표명했고, 그런 추세가 일반화될텐데, 명심할 것은 그런 구색 맞추기에 들러리가 되지 마십시오. 각 언론사들이 ‘나이 철폐’를 외치는 건 사회적 요구와 명분을 따른 것이긴 하나, 어차피 ‘나이 상한선’ 두지 않아도 나이 많은 사람이 들어오기 힘들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1~2살 가량 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역할은 하겠지요. 너무 나이 들어 입사하면, 아직도 ‘나이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신입사원으로 지내기도 그리 쉽진 않습니다. 그러니 ‘1년’ 또는 ‘2년’ 정도로 못박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언론사가 자신을 몰라주면 미련없이 떠난다’는 결의를 갖고 덤벼드십시오. 개인적으로 언론사 준비에 ‘2년’을 넘기는 건 인생낭비라 생각합니다.

- 다섯째, 신문은 종이신문으로 보십시오. PD 지망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제가 종이신문에 몸담고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종이신문을 통해 그날의 여러 사건들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지를 익혀나가십시오.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우는 겁니다. 물론 고리타분한 기성 신문을 보면서 비판하십시오. ‘이렇게 중요한 뉴스를 구석에 처박다니, 늙은이들 같으니라구’ 하고 마음껏 조롱해도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종이신문을 봐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면, 연예뉴스 등 선정적인 부문으로 빠져 1~2시간 ‘시간 도둑질’ 당하기 일쑤입니다. 말씀드렸죠? 하루 1시간 손해보면, 그를 벌충하기 위해 얼마를 애써야 하는지.

- 마지막으로, 반복되는 말입니다만, ‘자기연민’에 빠지지 마십시오. 기자든, PD든 ‘남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지, ‘자기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꼴불견입니다. 주제넘습니다만, 여러분들보다 몇 년 더 산 형으로서 감히 이야기하자면, ‘삶은 모 아니면 도’도 아니고, ‘아, 이젠 모든 게 끝났구나’ 하는 순간, 또다른 길이 한쪽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억지로라도 조금만 ‘쿨’하십시오. 홍세화 선배가 경구로 삼는다는, 그람시의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말을 한 번 되뇌여 보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 늘 건강하십시오. 꿈이 있을 때, 사람은 늙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05. 11. 2(수) <한겨레> 권태호 올림 ho@hani.co.kr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RINY 2005-11-03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긋기]
우울할 시간에 책 한 자 더 보십시오.
‘1차 시험’은 순전히 성실성으로 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성’은 기자 또는 PD, 사회인의 기본조건입니다. ‘성실성’은 때론 ‘체제순응’과 혼동되긴 하나, 창의력, 비판의식 등도 성실성이 밑바탕되지 않는다면, 바람불면 날아갈 잘난척이나 하는 쭉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소한 수험기간 동안은 단순한 인간이 되십시오. 생활도, 생각도. 기계처럼 사십시오.
신문은 종이신문으로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