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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 ㅣ 네버랜드 클래식 14
파멜라 린든 트래버스 지음, 메리 쉐퍼드 그림, 우순교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산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즈. 어렸을 때, '하늘을 나는 메리 포핀즈'라고 번역된 동화책을 읽고 난 뒤로 내게는 한 장면 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 동화였다. 난간이 있는 공공건물을 드나들 때면 나도 모르게 거기에 걸터앉아 주욱 미끄러져 올라가는('내려가는'이 아님) 상상을 하고, 배가 볼록한 가방을 보면 온갖 것들이 다 들어있는 메리포핀즈의 가방을 떠올린다. 조카들이 감기에 걸려 분홍빛 물약을 먹는 걸 보면 '딸기쥬스'라고 속삭이게 되고, 제과점에 가서 별모양의 과자를 보면 코리 할머니와 함께 그 별들을 하늘에 붙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어디 그 뿐인가? 내가 생각해도 심각하다 싶은 때는 돌 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이때는 바람들이 나에게 무어라고 하는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을텐데, 아쉬워 한다든지, 창문을 열고 길가를 내다보다가 혹시나 별을 찾아 헤메는 암소가 지나갈지도 모른다고 착각한다거나 하는 나를 보면 갑자기 머쓱해지기도 하지만, 곧 이어서 더없이 행복해진다. 나에게 아직도 어린이들만의 특권인 행복의 세계가 군데 군데 살아있음이. 메리포핀즈 말고는 아무도 누리지못했던 행복을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시공사에서 이 책이 다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장 한권 구입해서 가슴 두근거리며 새로 읽었다. 다시 만난 메리 포핀즈, 그리고 다시 만난 내 어린 시절... 책읽기의 즐거움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나는 어른인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했다. 위기철씨의 '생멸이 들려준 이야기'에 나오는 구분을 조금 빌려서 얘기하자면 '어른이 되기 위해 어린이로 살아온 사람들'과 '어린이로 살다보니 어른이 된 사람들'. 나는 늘 내가 어린이로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다고 느꼈었다. 아마 이 책을 지은 작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메리포핀즈라는 어린이와 어른의 세계를 이어주는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존재'를 생각해 내게 된 건 아닐까?
어른이 되기 위해 어린이의 삶을 잠시 거치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이 책에 펼쳐져 있다. 현실과 환상이 경계지어지지 않은 삶. 그러나 알고 보면 그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어린이들의 삶이다. 어린이들에게 현실과 환상이 따로이 존해했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왜 요즘 출판되는 현란한 상상이 가득한 판타지 동화들보다 이 책에 이끌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삶이라고 만들어진 판타지들은 이미 어른들의 사고방식이다.
어린이들의 세상에는 넘나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원래 없었다. 현실이 곧바로 환상이고, 환상이 곧바로 현실인 하나의 세상. 그것이 바로 어린이들의 세상이다. 그렇기에 메리포핀즈라는 존재도 환상세계의 사람다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 현실에서 어디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조금은 건방지고, 잘난 척 하기도 하고, 투덜대기 좋아하고, 쌀쌀맞기 그지 없는 여성. 그런 사람이 바로 메리 포핀즈인 것도 바로 우리의 현실이 바로 환상인 까닭이 아닐까. 어른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는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
어른이 되는 것, 그것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고. 귀를 열어 바람의 노래와 찌르레기의 수다를 들어보라고. 감기약 한 방울에, 우리 집 계단 난간에 나타나는 행복한 상상을 즐겨보라고. 분필로 그린 그림 뒤에 숨어있는 세상을 여행하고, 웃음가스에 취해 공중을 날아다녀도 보고, 나침반 하나로 전 세계를 여행하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고.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여라, 어린이들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