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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그 첫 5,000년 - 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불만으로 시작하겠다. 이 책은 너무 두껍다! 그런데 책이 약하게 제작되었는지 아니면 내가 실수로 펼쳐진 책을 세게 눌렀는지 읽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책이 두 개로 분리될 기미가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생각한다면 이런 불만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이 방대한 내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우선 많이 오해가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것으로 시작한다. 시장은 결코 자기규율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현대의 학문인 경제학 그리고 자본주의는 시장이 규제를 받으면 최적의 효율성을 발휘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원래의 경제학 그리고 정치경제학은 시장이 국가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 책은 바로 이 대목을 매우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그냥 국가가 아니고 폭력, 전쟁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막후의 배경이다.
책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물물교환의 신화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인간들은 심지어 지금도 경제학에서 말하는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산주의'적 요소가 여전히 인간 삶의 중요한 양식이라고 말한다.
빚은 갚아야 하는가. 일견 대답은 명확해보인다. 누군가 내 돈을 빌려갔으면 당연히 갚기를 기대한다. 나도 어디에서 돈을 빌리면 당연히 갚으려고 노력하고, 제 때 갚지 못하면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부채를 갚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경우가 당연히 많았고, 많은 경우 부채는 탕감되었다. 그래야 사회가 굴러가기 때문이다.
또 처음부터 절대 갚지 못할 빚이 있다. 신에 대한 빚, 부모에 대한 빚 같은 것들을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종교와 부채의 관계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일상의 언어 생활에도 빚이나 금전 거래와 관련된 어휘들이 많은데 이미 고대부터 부채는 인간을 괴롭히는 문제였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 자연스럽게 부채의 언어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이후의 금융 위기 때문에 이 책이 더 주목받았을 터인데, 기대대로 책은 말미에서 현재의 금융위기에 대해 진단한다. 5천년 인류 경제사를 다루는 저자인만큼 현재의 금융 위기는 결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등장과 자본주의만이 진리라는 환상이 만연한 것, 그리고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파기한 이후의 달러 중심의 국제경제체제가 이미 재앙을 잉태하고 있었다. 채권자의 이익만을 강조하는 풍조, IMF의 존재 모두가 자본주의의 위기를 더할 뿐이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내용도 적지 않고, 인류학 내용이 많아 소화 불량이다. 더 제대로 흡수한 이후에 리뷰를 강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