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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은 할아버지
한태희 글.그림 / 한림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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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겨울은 추워도 어지간히 추워야지, 이래서야 어디 봄이 오겠는가 싶을 만큼 혹독하고도 길었다. 그 와중에 사십 평생에 그렇게 눈이 많이 온 건 처음 봤다 싶을 정도로 눈도 유난히 많이 내려 아이들은 다른 해보다 더 자주 눈 놀이를 즐겼다. 아이들이라 그렇다 쳐도 어른들에게 폭설은, 집 앞의 눈 치워야지, 출퇴근 때 빙판길을 걷거나 운행하느라 신경은 곤두서고 시간은 더 걸리는 등 고충의 연속이었다. 기다리다 보면 절로 올 봄이지만 어디쯤 와 있는지 알기라도 하면 버선발로 달려가서 후딱 잡아끌고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지난겨울이다.

 처음 이 그림책을 볼 때는 '한태희'라는 작가를 생소하게 여겼는데 작가 소개 글을 찾아보니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도깨비 아부지>라는 동화책의 삽화를 그린이다. 더구나 지난달에 <도솔산 선운사>,<아름다운 모양>을 구입해서 다음에 막내랑 같이 볼 요량으로 책꽂이에 꽂아둔 상태. 작가가 누구인지 미처 눈여겨보지 않고 화풍이며 내용이 마음에 들어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책들이었던지라 뒤늦게 작가의 작품 목록을 보고서야 같은 이의 작품임을 알고는 내 머리에 꿀밤을 한 대 주었더랬다. 그러면서 이 작가의 작품과 인연의 끈이 이어지려고 새삼 그 두 권이 끌렸던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원색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느낌을 주는 빨강을 흩뿌려 놓은 듯한 꽃나무가 그려진 표지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 그림책은 할머니를 위해 봄을 찾아 나선 할아버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외딴집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집 안에서 무료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차에 할머니가 빨리 봄이 와서 꽃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하고, 이에 할아버지는 봄을 찾아오기 위해 길을 떠난다. 기다리면 올 것이라며 할아버지를 만류하던 할머니는 주먹밥 몇 덩이를 넣어 주며 가까운 곳만 찾아보고 돌아오라고 한다. 
 
- 방안 풍경을 두루 살피다 보면 벽에 걸린, 붉은 꽃과 나비가 그려진 족자가 고즈넉한 방안 분위기에 활력소 역할을 하며 시선을 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뭇가지를 잘라 화병에 꽂는 장면을 보면, 나뭇가지에 새순 혹은 꽃망울이 자리 잡은 듯하여 작품 말미에 어떤 변화가 있는 형태로 다시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끝자락에 노부부가 집 앞 매화나무 아래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그린 장면에는 방문이 닫혀 있어 안을 살필 수 없는 형국이어서 아쉬움으로 남았다. 할머니가 하고 있는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그린 것인지, 작가의 의도가 궁금.


  
 이곳저곳을 헤매던 할아버지는 짐승들이 더 잘 알지 모른다는 생각에 먼저 겨울잠을 자고 있는 곰을 찾아간다. 곰이란 동물은 긴 겨울동안 동면을 하다가 봄이 오는 것을 어찌 알고, 시기에 맞춰 잠에서 깨어나지 않던가. 그것이 할아버지가 짐승들 중에 곰을 먼저 떠올린 이유일 게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도 주먹밥 하나를 꿀꺽 삼킨 곰은 봄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며 날짐승을 추천한다.

   할아버지에게 주먹밥을 건네받아 맛있게 먹은 꿩은 자기도 모른다며, 강물에 사는 이무기에게 물어보라고 말하지만 오래 산 이무기 역시 봄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한다. 이처럼 전래 동화에 흔히 등장하는 형식도 취하고, 옛날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인 이무기를 내세워 옛이야기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자락에서 이무기의 대사 처리를 좀 더 나이에 걸맞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명색이 천 년을 산 이무기인데 아이 같은 말투-몰라요/말이에요- 대신 "모른다오/말이오" 같이 연륜이 묻어나는 말투를 썼으면 어땠을까.

 


  지쳐 쓰러진 할아버지 위에서 내리는 눈발을 꽃송이처럼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어서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울 만큼 달콤한 꽃향기를 풍기는 아이의 등장과 함께 작품의 분위기에 한결 따스한 기운이 퍼져나간다. (꽃향기가 아이에게서 풍겨 나온다고 하여 놓고 다음 장면에 꽃향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고 표현한 점이 거슬리긴 하지만...) 할아버지가 다다른 곳에 모습을 드러낸 매화꽃 한 줄기. 매화는 아직 눈발이 날리는 겨울에 모습을 드러내며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꽃이다.



 홍매화가 이리도 붉던가! 온 가지마다 붉은 꽃을 활짝 피운 매화나무가 양쪽 책장을 꽉 차게 매운 이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곱다는 느낌보다는 새빨간 꽃들이 발산하는 강렬한 생명력은 앞서의 아쉬운 부분들을 상쇄시킬 만큼 아름답고 뇌쇄적이다. 붉은 꽃들이 만발한 나무 아래에서 꽃의 정취에 한껏 취한 듯 흥겹게 팔을 휘저으며 춤을 추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집에 매화나무는 없지만 자그마한 빨간 꽃들을 쉼 없이 피워 올리는 기린초(꽃기린) 화분이 있어 매일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크다. 꽃을 보면 가라앉았던 기분도 살아나는 것이, 삶에 큰 활력이 되어준다.


  
  


 채색 수묵화의 화풍에 더하여 (아이들이 붓글씨 쓸 때 사용하는 화선지 같은) 종이의 가로 결을 살려 놓아 옛이야기의 정취를 한껏 살려 놓았다. 내지 그림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이 책의 볼거리 중의 하나. 앞내지의 그림을 보면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어 정적이 내려앉은 고요함 그자체이다. 반면 뒤내지에는 더할 나위 없이 화사한 봄이 찾아 와 있다. 본문의 매화나무가 강렬한 붉은 색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면 뒤내지의 분홍과 노랑이 산천을 물들인 파스텔 톤의 풍경은 부드럽고 은은하다. 아, 본문에 등장했던 꿩 부부와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얼음이 녹으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거라던 이무기는 못 찾겠다. 혹 이미 승천해서 자취를 감춘 건가? 꼬리 끝자락이라도 살짝 보여줄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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