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병, 평화의 길을 열다
사토 다다오 지음, 설배환 옮김, 한홍구 해제 / 검둥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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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전쟁은 왜 일어날까?


전쟁의 원인을 밝히는 일은 목숨 걸고 해야하는 일이다. 그래서 어렵다.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는 전쟁에서 이기려고 한다. 정치가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상대편을 적대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자국에 '아니, 상대 국가가 나쁜 게 아니라 우리 나라가 나쁜 건 아닐까?' 하고 조금이라도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으면 정치가는 이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느 시대 어떠한 전쟁에서도 외국을 침략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욕심이 많아서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나라는 정당한 데 비해 상대편 나라는 올바른 자기 나라의 주장을 듣지도 않고 멋대로 지껄이며 반항하기 때문에 이를 벌하기 위해 공격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2. 태평양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1941년 12월 8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은 미국, 영국, 중국 등을 상대로 대규모 전쟁을 치렀는데 당시 일본은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 했고, 전후에는 태평양전쟁이라고 불렀다.

당시 미국은 일본에게 중국 침략을 중지하지 않으면 일본에 석유와 철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석유가 나는 또 다른 나라 인도네시아 역시 네델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미국과 한 편이었다. 이 동맹을 ABCD 포위진(America, Britain, China, Dutch) 이라 한다.

일본은 당시 중국을 침략했으면서도 점령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중국 참략을 멈출 수 없었고, 석유가 바닥이 나서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느니 미국을 공격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3. 중일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조선에서는 동학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일본과 청이 각각 조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사를 보냈다가 전쟁이 일어난다. 일본은 청의 군대를 물리친 뒤 요동반도와 대만을 자국의 영토로 삼는다.

1904년부터 1905년까지는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도 승리한다.

당시 일본은 자신들이 중국인과 조선인을 지도하여 아시아를 침략하는 유럽 국가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메이지 지식인들 중 일부는 조선, 중국, 일본이 손을 잡고 유럽 열강에 대항하자는 인식을 갖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실제는 침략전쟁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한편, 당시 정치가는 군인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관동군이 그렇다. 1920년대 무렵 관동군 장교들 중 일부가 중국 등베이지방을 독립시킬 계획을 세우고 1931년 전쟁을 벌인다. 멸망한 청나라 황제 푸이를 데려다 황제 자리에 앉히고 이 지방을 만주국이라 칭했는데, 정치인들은 돌발행동을 하는 군인들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헌법에 일본 군대는 정치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천황의 명령을 따른다고 되어 있었다.

다른 예로는 1937년 7월 7일에는 베이징 교외의 루거우차오 근처에서 훈련 중이던 일본군이 중국군과 소규모 전투를 벌인 사건이다. 일본 정부는 군에 더 이상 전투를 확대시키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군은 남경을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파견한다.


4. 국가와 국가의 교류방법


아무리 큰 나라가 조그마한 나라를 자국의 위세에 따르도록 하려고 해도 갑자기 침략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 내세우는 구실은 그 나라에서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집단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 집단이 나쁜 사람들에게 참혹한 짓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서 지켜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며 군대를 보내는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 남부에 군대를 파견한 것이나, 청일전쟁때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것이나 위의 경우를 따른 것이다. 예는 이 외에도 많다. 1898년 아메리카 에스파냐 전쟁 당시 미국이 쿠바에 군대를 파견한 것 역시 비슷한 사례다.

혁명이든 독립이든 결코 이웃 나라의 힘을 빌려서는 안된다. 이웃 나라의 힘을 빌려서 이룬 혁명과 독립은 결국 그 나라로의 종속을 불러올 뿐 진정한 혁명과 독립을 일구어 내지 못한다. 또한, 똑같은 것을 반대 입장에서 말하면 어떠한 나라의 혁명과 독립에 이웃나라가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단정짓는 일들이 전쟁을 정당화 한다. 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1968년에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일이 그렇다.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한 일도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가 가장 우월하기 때문에 전쟁과 침략이 정당화된다고 멋대로 단정했다.


5. 군인은 전쟁을 멈출 수 없다


알제리 전쟁 당시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전쟁을 중단하고 알제리 독립을 인정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알제리 현지에 있는 프랑스군 일부가 자신들은 대통령의 명령에는 따르지 않겠다며 반란을 일으킨다. 더글라스 맥아더는 미정부의 정식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가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사령관직에서 해임된다.

군인은 정치가의 명령에 따른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정치가가 군인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경고했듯이 국산복합체의 등장으로 평화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전쟁 덕에 돈을 벌어들이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6. 2차 세계 대전은 왜 일어났을까?


전쟁에는 여러가지 명목을 붙일 수 있지만 승리하면 득이 된다는 점이 어찌 되었든 근저에 깔려 있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가지지 못한 자' 동맹이었다. 그들은 식민지를 갖고 싶었고, 군국주의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공산주의 반대 기치를 내걸고 미국과 영국, 소련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킨다.


7. 미국과 소련의 대립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과 소련이 대립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세력권을 이뤄 대립한 것이다. 스탈린이나, 매카시나 같은 방법을 써서 체제를 유지하려 했다. 공포 조장과 숙청이다.


8. 서로서로 돕자


어느 나라 종교에서든 신이라는 존재는 정의로운 자의 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신이라는 존재는 누구보다도 강하므로 신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면 당연히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정의로운 자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논리가 생긴다. 이 논리를 역으로 생각하면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정의롭다는 것이 된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쟁은 승리하기만 하면 옳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정의롭다는 것과 강하다는 것은 필연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족끼리는 강자가 약자를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 비해, 학교에 가게 되면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학습에서 경쟁하게 되고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어른이 된 후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배운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9. 종교와 전쟁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그 주변의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의 아랍인들

키프로스 섬의 그리스인과 터키인

미국의 흑인과 백인

1971년 일어난 방글라데시 독립과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전쟁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와 영국교를 믿는 영국

스리랑카의 싱할라인과 타밀인

국왕이 미국을 지지했다가 1979년 혁명이 일어난 이란

이란을 제지하기 위해 미국이 원조한 이라크, 그러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공격하여 벌어진 걸프전쟁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 그리고 무기를 원조했지만 탈리반에게 호되게 당한 미국


10. 인구 증가는 전쟁의 원인이 될까?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주로 국민이 충분히 음식을 먹고 있는 풍요로운 나라였다. 물론 급격한 인구증가로 실업자가 증가하여 그 불만을 다른 나라를 침략함으로써 돌리려고 하는 정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수는 있다.


11. 전쟁은 인간의 본능?


잘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무엇이든 본능이라고 말해 버리는 것은 깊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확실한 증거가 없는 말을 사용할 때는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


12. 평화를 위한 학습


평화와 관련된 것을 정치가와 학자들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치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것이므로 그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지 않은 국민이 그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가를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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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사토 다다오는 1930년생으로 14세의 나이에 소년병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이력이 있다. 그 뒤 철도와 전신전화공사에서 근무하다가 <영화평론>, <사상의 과학>등의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 1956년 평론집 출간 뒤 집필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한편, 영화 관련 일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1990년부터 '아시아 포커스 후쿠오카 영화제'의 제네럴 디렉터 직을 수행하고 있고, 1996년부터는 일본 영화학교장으로 재직중이다.

이 책은 작가가 1974년에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상념들을 정리했던 글을 2007년에 보완한 것으로 학문적으로 깊이 있는 글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함께 생각해볼 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읽는 동안 곰곰히 생각에 잠기게 하는 대목들이 있는데, 남한 역시 베트남과 이라크에 파병한 가해국가일 수 있다는 자기반성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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