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5
마틴 에이미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영국에서 잘 나가는 CF감독. 런던 서부에 살고, 자동차는 비싼 피에스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항상 담배를 물고 있는 상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운동부족으로 과체중이며, 잇몸에 염증이 있어 치과의사의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함. 술을 입에 대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시고, 자위를 하든 섹스숍을 가든 욕구를 강박적으로 해소해야 함. 여자친구 셀리나 스트리트는 전형적인 금발 미녀인데, 절친 알렉 루엘린에 따르면 그녀는 오래전부터 바람을 피워오고 있다고 함. 대충 이 정도가 주인공 존 셀프를 소개하는 단편적인 문장들이다.

존 셀프의 집안은 어떤가. 부모는 존이 어릴 적에 이혼했고, 그의 아버지는 양육에 들어간 돈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제기한 전력이 있다. 존이 2만 프랑을 쥐어주어 소송은 흐지부지 되었는데, 존의 아버지는 그 2만 프랑을 밑천으로 - 경마에 몰빵해서 운 좋게도 술집 하나를 차릴 정도로 딴다 - 지금은 젊은 스트리퍼 브론과 결혼했다. 


어쨌든 존 셀프가 비행기에서 우연히 영화제작자 필딩 구드니를 만난다. 스물여섯의 필딩 구드니는 존에게 있어 "전주이자, 연락책이며, 친구" 이다. 필딩 구드니는 존에게 그럴싸한 영화를 한 편 제작하자고 제안한 뒤, 작가 도리스 아서를 고용해 시나리오 작업을 맡기고,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와 인기배우를 캐스팅 한 뒤, 존이 느끼기에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돈을 대준다.

존은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와 관계를 맺다가, 헤로인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져 난투극을 벌이고, 그 결과 한 사람이 죽는다"는, 자전적인 요소를 잔뜩 가미한 영화를 찍고자 했다. 하지만 배우들이 저마다 자신의 배역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데다가, 존 역시 술과 여자에 빠져 허우적 대는 통에 작업은 별다른 진척 없이 질질 늘어졌다. 시나리오 역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사람이 마틴 에이미스라는 작가였다. 존은 도리스 아서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를 영화 작업하기 적합하게 고쳐 달라고 마틴에게 부탁한다. 마틴은 기존의 시나리오는 그대로 둔 채 몇몇 대사만 추가했는데, 뜻밖에도 배우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 배우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들을 기존 시나리오 중간 중간 삽입해줬던 것이다.


그럼 이제 시나리오 작업이 끝났으니 영화가 잘 진행되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존 셀프의 개인적인 일들이 자꾸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먼저 여자친구 셀리나가 존을 떠난다. 존의 주변엔 제대로 된 인간이 딱 하나 있었는데, 마티나 트웨인이라는 오랜 친구였다. 그녀는 교양있고, 점잖았다. 그녀의 남편이 오시였는데, 셀리나는 오시와 오랫동안 불륜관계를 맺다가 마친내 그의 아이를 임신하는데 성공한다. 셀리나는 이를 빌미로 오시에게서 거액의 돈을 뜯어낼 수 있게 되자 존을 헌신짝 버리듯 떠난 것이다.

그럼 남편이 바람난 마티나 트웨인과 존의 관계가 진전되었을까? 그것은 그것대로 잘 되지 않는데, 관계가 끝장난 뒤 우연히 만난 셀리나와 존이 호텔방에서 관계를 맺다가 마티나 트웨인에게 목격당하기 때문이다.(셀리나의 계략이었다)

또, 존은 아버지의 법률적 부인인 브론과도 어쩌다 관계를 맺는데, 그 장면도 아버지에게 들켜 친구처럼 지냈던(사실은 의붓형제) 뚱보 폴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이 사건으로 존은 그가 친부가 아니며, 자신의 친부는 뚱보 빈스였다는 사실(milkman's son 느낌)을 알게 된다.


인간관계가 파탄난 뒤에는 재정적인 파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주 필딩 구드니는 사기꾼이었고, 지금까지 흥청망청 쓴 돈은 죄다 존 자신의 돈이었다. 그가 술에 절어 사인한 내용은 모두 존의 돈으로 지불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서였다. 존은 바닥을 친 자가 으레 하듯, 자살 노트를 쓴다. (자살은 실행되지 않는다)

그 뒤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긴다. 조지나라고... 뚱뚱하고, 힘도 세서 존이 예전에 그러하듯 두들겨 패서 말을 듣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일도 시작했고, 친부 빈스도 만났다. 거지로 오인받을 정도의 몰골이긴 하지만, 지혜라든가 생활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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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이미스는 1949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킹슬리 에이미스 역시 작가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전력이 있으며, <럭키 짐 Lucky Jim> 은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마틴 에이미스 역시 스물 네 살에 쓴 첫 번째 장편소설 <레이철 페이퍼스(73)>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했으니, 부자 모두 같은 문학상을 수상한 드문 사례이다.

<돈 혹은 한 남자의 자살 노트>는 1984년에 발표되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필치와 기교를 보여준다. 거친 입담과 외설스러운 말투 이면에 숨겨진 블랙 코미디는 주인공을 밉지 않게 그리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한 자락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다보면 1991년에 발표된 브렛 이스턴 엘리스의 <아메리칸 사이코>가 연상되는데, 아마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말초적인 욕망들이 대상화된 물건들, 담배나 술, 의류, 자동차, 들이 홍수처럼 책속에서 쏟아지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의 입담이 맘에 들어 <런던 필즈>도 추가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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