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군도 열린책들 세계문학 1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김학수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수많은 생물이 우주에 살고 있지만, 이 우주에는 생물의 수효만큼의 중심이 있다. 우리 모두도 각자가 우주의 중심이다.


솔제니찐의 기록문학 <수용소군도>의 첫 페이지에는 이와 같이 인간 존엄에 대한 선언이 씌여 있다. 그러나, 바로 뒤 이어 솔제니찐은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체포되었소!> 라고 속삭이는 음성을 들었을 때, 당신의 그 우주는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솔제니찐은 종전을 목전에 둔 1945년 2월에 장교로 복무 중 체포된다. 친구와 주고 받은 편지에 스탈린을 비난한 문구가 씌여 있었고, 이것이 편지 검열에서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재판도 없이 8년형을 언도받은 솔제니찐은 형기보다 긴 11년간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스탈린 격하 운동이 시작되자 1956년에 풀려난다. 1962년에 발표한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와 뒤 이어 발표한 <암병동>으로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데, 냉전시대에 소련의 실상을 고발한 점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소련은 이에1974년 2월 솔제니찐을 독일로 추방하고, 2년 뒤 솔제니찐은 미국으로 망명한다. 소련이 붕괴된 뒤인 1994년에야 그는 고국으로 돌아간다.

<수용소군도>는 1960년대 중반부터 씌여진 기록문학인데, 지인에게 맡겨 두었던 원고가 당국에 발각되는 등 여러가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 1973년 1~2부가 파리에서 출판된다. 3~4부는 1974년에, 5~7부가 1976년에 발표된다.

체포, 숙청의 흐름, 신문, 푸른 제모, 첫감방·첫사랑, 그해 봄, 기관실에서, 로 이어지는 각 장에는 227명의 수감자들이 겪었던 일들이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난 주 화요일과 수요일은 뉴요커 윈드햄 호텔에서, 목요일은 파이브 타운스 인에서 묵었는데, 잠들기 전 두 시간씩 이 책을 읽었다. <수용소군도>를 읽다 보니 아주 오래 전에, 집에 굴러다니던 책이 하나 생각났다. 지금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렸을 적에 <아이템플> 이라는 학습지가 있었다. 그 학습지를 사면 <공부 잘하는 법>이나 <유머 모음집> 따위의 책들을 부록으로 끼워 주었는데, 그 부록 중에 소련의 참상을 코메디처럼 엮어 놓은 책이 있었다. 내용은 이런 식이다.


한 사내가 친구와 보드카를 마시다 술 취한 김에 스탈린 욕을 했다. 친구도 맞장구를 쳤다. 그 다음날 사내는 체포된다. 친구가 고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뒤 친구도 잡혀 들어온다. 술집을 나와 바로 고발하러 오지 않고 날이 밝은 뒤 고발하러 왔다는 것은 일말의 동요가 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용소군도>는 이런 이야기들이 잔뜩 씌여 있다. 유머와 위트도 있고, 사실적인 묘사도 발군이다. 하지만 솔제니찐의 정치 의식은 그다지 정교하지 못하다. 레닌과 스탈린, 트로츠키, 후르시초프 등이 모두 소련이라는 하나의 범주에 묶여 절대악으로 취급되고, 그러다 보니 때로 짜르 체제에 대한 향수(또는 찬양)와 백색테러에 대한 미화, 서방세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 때문에 <수용소군도>는 냉전시대에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주의에 대해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중요한 증거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소련 역시 국가가 자본가계급을 대신한 사회는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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