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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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나'의 가족이 트럭을 타고 광주로 이사를 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트럭에는 소가 함께 타고 있었다. '나'의 가족은 싼 값에 동승한 처지였다. 소가 부데끼면서 트럭 여기저기에 똥과 오줌을 갈겨댄다. 사람도 덩달아 여기저기 토하는 통에 트럭은 난장판이 되고 만다.

겨우겨우 가족이 도착한 곳은 광주 계림동과 산수동의 경계에 있는 판자촌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후미골, 또는 늴리리 동네라고 불렀다. 이삼백호가 모여사는 그곳에서 '나', 엄마, 은분이누나, 그리고 어렸을 때 침을 잘 못 맞아 '엄바, 밥쭤...' 정도의 말밖에 하지 못하는 은매누나가 둥지를 튼다. 아버지는 집에 찾아오지 않은지 오래였는데, 광주에 딴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엄마가 겨우 삯바느질감을 얻어서 생계를 꾸려갔지만 팍팍했고, 은분이 누나가 과자공장에 나가 살림을 보탰다. 그러나 누나가 벌어오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 뜨거운 갱엿물에 손을 데이기까지 한다.

'나'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배돌기만 한다. 말쑥한 차림의 여선생이 책상에 칼자국을 냈다는 이유로 '나'를 함부로 때려 얼이 빠지고 코피가 터지는 사건이 있은 뒤로 '나'는 학교를 툭하면 빼먹는다.

대신 동네사람들과 정서적 교류를 갖게 되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가 어딘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항상 바보처럼 웃기만 하면서도 '나'를 동생처럼 살뜰히 챙겨주는 양심이, 고고한 척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고오목양, 새나라이발관을 경영하는 안씨와 군출신 의리파 안씨 아내, 그리고 집이 가난해 매일 배급받은 빵을 집으로 가져가는 까마귀 귀옥이...

5년여의 세월이 흐른다. 그동안 은매 누나가 비를 맞아 몹시 앓은 뒤 가족의 곁을 떠나고, 칠만이 아저씨가 술에 취해 기차에 치어 죽는다.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속이 만신창이가 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은분이 누나와 '나'는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간다.

시간이 흘러 은분이 누나는 수녀가 되고, '나'는 외항선원이 된다. 선원이 되어 조금씩 끼적인 시들이 묶여서 책이 되어 출판되고, '나'는 예전에 사는게 너무 서럽고 힘들어 자살을 결심했던 등대 밑에 와서 술을 마신다. 그때, 별안간 '나'의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카랑카랑하게 들려온다.

 

'걱정 말아라. 얘야. 걱정할 것 하나도 없응께!'

 

유리알같이 맑고 투명한 별들이 밤하늘 가득히 좌르르 흩어져 반짝이고 있었고, '나'는 그 별들 중 하나가 어머니, 또 다른 별 하나가 은매 누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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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빨리 먹으면 45분 가량 시간이 남는다. 그 시간에 읽은 책이다. 좋은 책은 한꺼번에 많이 읽기가 어렵다. 조금 읽고 생각에 잠기고, 또 조금 읽고 어렸을 적 기억에 함께 아파하고... 그렇게 읽었다. 그러다가 은매누나가 죽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었다. 눈이 빨개져서 혼자 코를 훌쩍이며 울었다.

나는 어렸을 적에 광주에서 자랐다. 다른 식구들은 서울에서 살다 이사를 갔기 때문에 사투리를 쓰지 않았지만, 어렸을 적에 주변에서 들린 그 사투리들은 내 정서에 깊은 인상을 남겼음에 분명하다. 그래서 소설 속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들이 마치 내 어머니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들렸고, 가슴이 아렸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내 어릴 적 기억들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복도에서 뛰었다고 여선생이 내 뺨을 십여대 때렸던 기억, 나와 나이가 같은 조카가 물에 빠져 죽은 사건, 그리고 같은 반 친구가 혈우병으로 죽은 일, 고아원에서 다녀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던 쌍둥이 일호와 이호...그런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어쩐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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