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나가사키에 사는 쉰 여섯살의 독신남. 기상​분석가로 일하는 남자의 삶은 단조롭다. 딱히 열광하는 것도 없고,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할 일도 없는 조용한 남자다. 남자는 어느 날 부터 자신의 삶에 꼬집어 말하기 힘든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감지한다.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마트 영수증은 착각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사다놓은 요구르트 중 한 병이 없어졌고, 쥬스 용량이 조금 줄어들었다. 남자는 웹캠을 설치해 누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는지 알아보려한다. 웹캠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남자 또래의 여자가 자신의 집에서 햇볕을 쬐며 차를 끓인다. 남자는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여자를 남자의 집 구석 방 벽장에서 발견한다. 벽장에는 갈아입을 옷과 생수병, 책 한권이 있었다. 여자는 일 년 가까이 남자의 집 벽장에 숨어서 생활했다고 진술한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남자는 여자에게 불리한 진술은 하지 않는다.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여자를 처벌해달라거나, 보상을 바란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남자에게 편지를 쓴다.

여자의 부모는 일찍 사망했고, 친척집에서 자랐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적군파에 가입해 과격한 활동을 했다. 졸업 후 직장을 얻었지만 나이가 들어 실직한다. 실직 후 집세를 내지 못해 짐을 챙겨 나왔고, 여기저기 배회하다가 남자가 사는 집 근처에 오게 된다. 남자는 혼자 사는 것 같았기에 아무도 없는 그 집에 들어가 잠깐 휴식을 취한다. 여자는 그 휴식이 주는 안온함을 조금만 더 연장시키고 싶었다. 남자의 집은 과거 그녀가 살았던 집이었다.

출소 후 여자는 남자가 집을 내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는 재판 중 자신에게 불리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젠 도무지 내 집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라고 진술했던 것이 기억났다.

 

프랑스 소설가가 피폭을 당한 도시에서 일어난 기이한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지던 날, 그곳에 출장을 갔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자신의 집인 나가사키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번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살아남는다.

우리 삶은 아무리 견고하게 유지하려 해도 외부로부터의 충격, 그 충격이 크든 적든 간에, 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삶이 송두리채 뒤흔들리는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고, 소설 속 독신남과 같이 알아차리기 힘든 미세한 균열이 가해질 수도 있다.

삶은 계속될 것이지만,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의해 그 사람의 삶은 변화할 것이다. 소설은 변화의 양상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저 사건 이전의 삶과, 사건 이후의 삶을 설핏 보여줄 뿐이다. 때론 '그저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정도로도 괜찮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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