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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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은 1844년 11월에 초고가 완성된 후 다음 해 5월까지 수정되었고, 탈고된 원고가 1846년 1월 <뻬쩨르부르그 선집>에 소개되었다. 그리고로비치, 네끄라소프, 벨린스끼 등은 새로운 고골이 출현했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하급 관리 마까르 제부쉬낀과 병이 든 고아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가 주고 받은 편지와 바르바라의 짤막한 수기로 구성되어 있다.

마까르 제부쉬낀의 가난함은 고골의 <외투>에 나오는 아까끼 아까끼에비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꼴을 갖춘 옷은 모두 저당 잡힌 탓에 단추가 모두 떨어져 나간 옷을 입었고, 구두는 발이 삐져나올 지경이다. 변변한 방에 세를 들 수가 없어 부엌에 칸막이 한 방에서 악취를 맡으며 살아간다. 월급은 벌써 몇달치를 가불해 썼고, 하숙비가 밀려 주인집 여자는 음식조차 주지 않는다. 그에게 유일한 낙이라면 먼 친척인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와 주고 받는 편지다. 

바르바라는 어릴 적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병이 들어 가세가 몰락하자 먼 친척인 안나 표도로브나의 신세를 지게 된다. 당시 그 집에는 폐병에 걸린 뽀끄로프스끼라는 대학생이 있었는데 바르바라는 그의 이지적인 면에 끌려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뽀끄로프스끼가 지병으로 죽고 어머니마저 사망하자 안나 표도로브나는 뚜쟁이처럼 바르바라를 부잣집에 시집 보내 한 밑천 잡을 궁리를 한다. 견디다 못한 바르바라는 하녀 표도라와 함께 그 집을 나와 하숙을 하며 곤궁한 생활을 하게 된다.

마까르 제부쉬낀은 가불을 하고 돈을 빌려 바르바라에게 보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탄을 맞게 된다. 바르바라도 바느질감을 맡아 약간의 돈을 벌어들여 마까르 제부쉬낀에게 보내지만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어 이마저도 불가능하게 된다. 둘 사이에 돈 이야기 외에 문학적인 의견 교류도 약간은 있었지만 마까르 제부쉬낀의 낮은 지적 수준으로 인해 원만히 진행되지는 못한다. 마까르 제부쉬낀은 고골의 <외투>가 권선징악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푸쉬킨의 작품에 대해서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 이웃의 삼류 작가 라따자예프는 훌륭한 소설가라고 생각했다.

미뤄 오던 파국이 눈 앞으로 다가왔을 즈음, 바르바라의 집에 비꼬프라는 부유한 지주가 찾아온다. 그는 바르바라가 겪고 있는 고통은 모두 돈으로 해결될 수 있고, 자신은 유산을 물려줄 아내가 필요하니 가부를 속히 알려달라고 한다. 만약 늦게 알려준다면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면서.

얼마 후 바르바라는 제부쉬낀에게 자신이 비꼬프의 아내가 되기로 결심했고, 이로써 얼마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는 편지를 보낸다. 제부쉬낀에게 몇 차례 편지가 더 온다. 모두 결혼식 준비에 필요한 물품 준비를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는 제부쉬낀이 그동안 보낸 편지를 모두 살던 집에 놓아 두고 떠날 것이며,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 씌여 있었다.

제부쉬낀은 바르바라에게 자신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었다는 말과, 그녀가 여행하기엔 날씨가 너무 험하다는 말과, 그 밖의 이치에 닿지 않는 말들을 횡설수설하는 편지를 쓴다. 그의 마지막 편지가 바르바라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도스또예프스키에 관해서는 '악마적'이라는 수식이 많이 붙는다. 막심 고리키는 그가 '러시아가 낳은 악마적인 천재'라고 했고, 토마스 만은 도스또예프스끼가 '불행과 악덕, 욕적과 범죄에 기독교적인 공감을 보인 작가'라고 했다. 꼰스딴찐 모출스끼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인간 지옥의 모든 계(界)를 통과하는데 이 지옥은 <신곡>의 중세적 지옥보다 더 끔찍하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서도 이러한 악마적 상황은 변함 없이 엿보인다. 얼핏 보면 이 소설은 가난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로 읽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끔찍한 지옥이 어른거린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편지에 쓰고 있지만 둘 사이에 편지를 주고 받는 행위 외에 이렇다 할 진전은 전혀 없다. 기껏해야 푼돈을 주고 받는 상호 부조 행위가 전부이고, 육체적인 관계도 없고, 미래에 대한 약속도 없다. 

제부쉬낀은 자신이 바르바라를 사랑하는 것이 '부성애'라고 애써 선을 긋고 있다. 자신의 욕망이 실현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부쉬낀의 욕망은 언제나 '이성에 대한 사랑'을 가르키고 있다. 파국을 늦추기 위한 제부쉬낀의 안간힘은 눈물 겹다. 월급을 몇달치나 가불하고, 상여금이 나오면 꽃과 사탕을 보내며, 사채업자를 찾아다닌다. 더 이상 파국을 늦출 수 없는 그 순간, 바르바라는 주저 없이 비꼬프에게 떠난다. 그녀는 편지에 슬픔에 관해 쓰고 있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난다는 흥분 역시 감출 수가 없다. 

기형적인 둘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난다. 제부쉬낀은 바르바라를 통해 자신의 비천한 삶이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같이 아름답고, 문학적인 소양을 갖춘 젊은 여성과 자신이 '가난'이라는 공통분모를 영유하며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서 환각을 맛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 환각이 깨어지는 순간 제부쉬낀의 지옥이 시작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17554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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