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개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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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68년 2월 17일 베버리힐스에서 살던 로맹 가리의 집에 회색 셰퍼트 종 개가 들어온다. 원래 키우던 개 샌디가 주인 잃은 이 셰퍼트에게 우정을 보이자 동물끼리의 우정은 믿을만 하다고 판단하여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개가 '흰 개' 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흰 개'는 남부 백인들이 흑인들만 물어 죽이도록 조련한 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가리는 아내 진 세버그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 지 곤혹스러워한다. 그녀는 흑인 인권 운동에 과도하리만치 집착하고 있었고, 그녀의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죄다 흑인이었던 것이다.
가리는 개를 '치료'하기 위해 '노아의 목장' 잭 카루더스의 동물원에 데려간다. 카루더스는 흰개의 피에 아로새겨진 조련의 흔적은 안락사 이외의 방법으로는 지울 수 없다고 했다. 흑인 조련사 키스(Keys)가 일단 개를 맡기는 했지만 변화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 와중에 국내외 상황은 가리에게 끊임 없이 어느 편인지를 묻고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전쟁이 벌어졌고, 조국 프랑스에서는 68 혁명이 한창이었다. 와츠에서는 흑인 폭동이 일어나 약탈과 방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진 세버그를 찾아오는 흑인인권운동가들은 그녀의 스타성과 돈, 그리고 육체에 더욱 관심이 많아 보이는 사기꾼 같은 자들이었고, 가리는 어느 하나의 주장에 자신을 내던져 무리를 지을 수 없는 '타고난 소수자' 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었다.  
흑인인권운동가 레드는 베트남전에 반대하기는 커녕 자신의 아들을 베트남전에 보내 백인들과 대항해 싸울 수 있는 전투기술을 배워오길 바랐다. 가리는 그 전쟁에서 백인들이 훨씬 많이 훈련받게 될 것이고, 사실 백인과 흑인은 공통의 고난 때문에 어쩌면 전우애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흑인인권을 위해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진보인사연 하던 자는 가리의 개가 '흰 개'라는 사실을 알고 흑인 폭동으로부터 자신의 집을 지키는데 이용하려 했고, 획기적인 시위를 계획하는 대학생들은 '흰 개'를 공개적으로 불태워 죽여 그 상징성을 이용하자는 주장을 했다.

아내 진 세버그는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고, 살해 위협의 주체는 다름 아닌 흑인 활동가들이었다. 그들은 진 세버그가 자신들이 가진 저항의 권리를 이용해 스타가 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가리는 아내에게 경찰에 신고를 하든, '흰 개'라도 데려다 자신을 보호하든 무슨 짓이라도 해보라며 다툰다. 아내는 흑인들을 고문하고 죽인 경찰에게 신고할 수는 없다고 응수하고, 가리는 그녀가 진정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가리는 "개자식은 흑인이기 때문에 개자식이 아니라, 개자식이기 때문에 개자식" 이라며 흑인과 백인의 피부색이 곧 진보나 정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며 항변하지만 진 세버그의 순진성과 열정은 가리의 충고에서 등을 돌리게 만든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가리가 '흰 개'를 다시 보러 간다. 그곳에서 가리와 친구 로이드가 '흰 개'에게서 공격받는다. 키스는 '흰 개'를 '검은 개'로 바꿔놓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며 가리에게 '정당방위' 운운한다. 가리는 키스에게 '증오에 가담해서 형제들을 배신하는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흑인은 이길 가치 있는 유일한 싸움에서 패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흰 개'는 로이드를 문 후 도망쳐 가리의 집으로 간다. 개는 진 세버그의 품에 안겨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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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자전적인 이야기로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관계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지, 흑인인권운동과 진보적인 운동들에 로맹 가리가 주저하는 태도로 때로 냉소를 날린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진 세버그가 블랙팬더즈 일원의 아이를 뱄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돌았고, 태어난 아기는 2일만에 사망한다. 그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리는 자신이 FBI에게 끊임 없이 감시받고 도청당했다고 주장했지만, FBI는 그 주장을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이후 가리는 영화에서 실패하고, 문단에서는 고루한 작가 취급을 받는다. 그는 필명을 바꿔가며 세상을 희롱한다. 에밀 아자르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이 콩쿠르상을 수상한다. 한 인물이 두 번 상을 수상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에밀 아자르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문단에서는 가리가 신예 작가 에밀 아자르의 작품을 표절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1979년 진 세버그가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다. 가리는 FBI 개입을 주장한다. 1년 뒤 가리 역시 자살한다. 그는 유서 첫머리에 진 세버그와는 관계가 없다고 썼다. 그의 사후에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 인물이었음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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