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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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성적으로 프린스턴을 졸업한 파키스탄인 찬게즈는 기업 재정을 평가하는 언더우드샘슨에 입사 지원서를 낸다. 사장 짐은 찬게즈의 능력을 높이 사 그를 채용하고, 찬게즈 역시 회사의 기대에 부응해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럴싸한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안정된 미래를 약속받은 찬게즈는 자신이 미국에서 꽤 잘해냈음을 인식하고 우쭐해진다.

한편 찬게즈는 미국인 여성 에리카에게 매혹되는데 에리카 역시 찬게즈의 이국적인 면모에 호감을 느낀다. 에리카는 첫사랑 크리스를 잊지 못해 한동안 불안한 생활을 했었는데, 찬게즈를 통해 그런 아픔을 치유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즈음 찬게즈가 필리핀의 기업을 평가하기 위해 출장을 떠난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평가 대상 기업은 언더우드샘슨의 칼질 아래 난도질되기 직전이었다. 그때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된다. 찬게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붕괴되는 뉴스를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통쾌함을 느낀다. 그것은 찬게즈에게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는 미국식 교육을 받고 미국이 약속한 안정된 미래를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붕괴를 보며 미국인들의 죽음을 슬퍼하기 전에 미국을 무릎 꿇린 사람들에게 환호를 보낸 것이다.

사건 이후 미국은 강력했던 과거로 되돌아가기 위한 구호로 넘쳐나기 시작한다. 찬게즈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공항 검색이 강화되고, 인종적인 위협도 늘어난다.

파키스탄의 이웃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폭격 아래 놓이고, 인도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지원을 받아 파키스탄을 침공하려는 듯 보였다. 찬게즈는 자신이 파키스탄인임을 자각하게 되고, 미국이 제공한 것들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부사장과 함께 칠레의 기업을 평가하러 간 찬게즈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고 네루다 시인의 집을 방문한 직후 사표를 던진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에리카를 찾아 갔지만 그녀는 자살한 뒤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되돌아 온 찬게즈는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대학 강사 자리를 얻은 후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찬게즈는 반미분자로 분류되어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소설은 찬게즈가 파키스탄을 방문한 미국인 관광객에게 자신의 과거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독자는 찬게즈가 단순한 호객꾼으로 관광객에게 차와 음식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떠벌이고 있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점차 그의 이야기가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된다.

이야기가 계속 됨에 따라 독자는 찬게즈가 미국인이 무엇 하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 애를 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점차 긴장이 고조된다. 미국인의 양복 안주머니에 권총이 있을 수 있다는 암시 이후에 찬게즈가 반미인사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다시 미국인이 찬게즈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일 수 있다는 암시가 계속된다.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서 미국인이 권총을 꺼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가 권총을 꺼내 찬게즈를 암살하게 될지, 아니면 그들을 따르던 파키스탄인들이 역습을 가할지는 알 수 없다. 긴장은 끝내 해소되지 않는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은 에리카와 찬게즈의 연애담이다. 에리카는 America에서 취한 알레고리적 이름이고 찬게즈는 Chingiz Khan에서 따온 알레고리적 이름이다. 에리카는 찬게즈에게 호감을 갖지만 크리스라는 첫사랑을 잊지 못해 병을 얻는다. 에리카가 크리스를 잊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과거 경찰국가로 세계를 호령하던 시기를 끝내 잊지 못하는 것으로 읽힌다. 에리카는 끝내 찬게즈에게서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크리스로 화한 찬게즈에게 몸을 열 뿐이다. 반면 찬게즈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지 못한 채 크리스의 가면을 빌려 쓰고 에리카의 몸에 들어간다. 따라서 둘 사이에 최초의 성적 결합이 있은 직후 헤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공상 속에서 맺어진 관계가 현실 속에서 이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리카가 정신적인 붕괴 속에 자살하는 것은 미국이 곧 그러하리라는 작가의 예견일지도 모른다. 에리카가 이미 죽어버린 크리스 때문에 현실의 자기 몸과 정신을 망치듯 미국도 팍스 아메리카나의 환상 속에서 국가 지반의 붕괴를 못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붕괴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팍스 아케리카나의 환상을 지속시킬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찬게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붕괴에 통쾌함을 느꼈다고 술회하는 자신을 불쾌하게 바라보는 미국인에게 묻는다. "당신도 미국의 무기가 적의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비디오클립을 보면 즐겁지 않나요?" 모신 하미드는 이 질문을 통해 미국적인 시각이 절대선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절대선인 것처럼 통용되는 것은 미국이 전세계를 집적이며 반대 시각을 가진 곳에 폭탄을 떨구어대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9.11.테러와 관련된 여러가지 음모설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사건으로 가장 이득을 얻은 사람은 부시와 보수우익들이다. 그들은 엄청난 부를 거머 쥐었고, 원하는 모든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그들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있었지만 이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덮어 씌우기 위해 눈을 빛내는 부시와 보수우익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힘이 진보진영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205697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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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 2015-05-1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면으로 맞설힘이 없어서 라기 보다는 비겁해서 용기가없어서 그랬죠. 모신 하미드는 무슨힘이 있어서 이런 얘기한게 아니잖아요. 힘이 없으면 말이라도 해야되는데 침묵했었죠. 그때는.. 테러는 안좋다는둥,미국도 너무한다는둥 분명하게 얘기하지않았고 대다수사람들의 판단에 명확한 일침을 놓아주지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