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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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구로, 시로, 아오, 아카, 그리고 다자키 쓰쿠루는 완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균형을 유지하는 동아리를 이루었었다. 다섯은 성적인 관심을 배제한 채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일체감을 느끼며 생활해 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자키 쓰쿠루만 도쿄에 소재한 공대에 입학하고 나머지 넷은 나고야에 소재한 대학을 선택한다.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한동안은 고등학교 시절의 일체감을 확인하며 소식을 주고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다자키 쓰쿠루가 고향으로 돌아가 네 명에게 연락을 했을 때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감지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분탓이라고 생각했지만 네 명이 의식적으로 자신을 피한다는 것이 점차 명백해졌고, 급기야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다자키 쓰쿠루는 이유도 듣지 못한채 동아리로부터 팽개쳐지고 만다.

한동안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게 된다.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만이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경도되어 아슬아슬한 한계선을 넘기기 직전인 날들이 이어진다. 가까스로 삶으로 되돌아오지만 다자키 쓰쿠루의 외모와 성격은 이전보다 날카로와진다.

그 즈음 하이다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하이다는 능숙하고 절제된 폼으로 수영을 하는 친구였는데 아버지가 젊었을 적에 떠났다는 여행 이야기와 라자르 베르만이 연주한 리스트의 <순례의 해> LP 3장 세트를 남긴 채 쓰쿠루의 곁을 홀연히 떠나고 만다. 다자키 쓰쿠루는 자신이 색채가 없는 텅 빈 그릇 같다고 느낀다.

 

소원했던 대로 역사를 만드는 일을 갖게 된 서른 여섯의 다자키 쓰쿠루는 과거의 상실감을 묻어둔 채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아간다. 여자친구 사라가 어느 날 다자키 쓰쿠루의 과거 이야기를 듣더니 그에게 치유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타인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지 못하는 것 같다며 네 명을 만나볼 것을 권한다. 16년만에 다자키 쓰쿠루는 과거의 친구들을 찾는다.

아오와 아카는 각기 다른 분야지만 나름대로 성공을 향해 착실한 걸음을 딛고 있었다. 다자키 쓰쿠루는 자신이 동아리에서 추방된 이유가 시로의 충격적인 발언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로는 자신이 다자키 쓰쿠루에게 강간당했다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아오와 아카는 다자키 쓰쿠루가 강간을 하지 않았음을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믿을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시로는 누군가에게 참혹하게 살해 당했고, 구로는 핀란드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핀란드로 가서 구로를 만난 다자키 쓰쿠루는 구로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좋아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시로가 정신의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이상하게 되어버린 이야기들을 듣는다. 

 

도쿄로 돌아온 다자키 쓰쿠루는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로가 완벽한 균형을 유지했던 동아리의 균열을 감지하고 이를 견디지 못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행동했던 것은 아닌지, 혹은 절제된 성적인 부분들의 영향은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핀란드로 떠나기 전 중년 남성과 걸으며 웃던 사라의 모습을 떠올리며 질투심보다는 물리적인 고통을 느낀다. 

사라에게 다른 남자는 없는지 직설적인 질문을 던진 다자키 쓰쿠루는 어찌되었든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보여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한다. 자신이 할 일은 어쨌든 특별한 역사를 만드는 것이고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차차 고쳐갈 수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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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는 미묘한 차이점이 느껴진다. 고통과 상실감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다자키 쓰쿠루는 과거에 입었던 상처와 이로 인한 상실감을, 비록 사라라는 여자친구의 권유이긴 하지만, 직시한려고 노력한다. 이전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 방식이다. 더 나아가 사라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지고자 노력한다. 

기존 소설에서였다면 다자키 쓰쿠루는 흘러가는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나 조용히 관조하고, 원치 않는 결말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인 방식은 아닐 지라도 이번 소설에서는 질투심에 근접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새벽에 전화를 거는, 무라카미 하루키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감에 대한 관조적 태도 덕분에 그만의 스타일을 획득했는지도 모른다. 중견 칭호를 얻은지 오래 전인 그가 새삼 그만의 스타일을 버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향후 그의 작품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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