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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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항해하던 중 터키 함대에 사로잡혀 노예가 된다. 중노동을 면하기 위해 의학 지식을 내세운 '나'는 우연한 기회에 파샤의 병을 치료하게 된다. 파샤는 자신의 병에 차도가 나타난데다가 '내'가 여러가지 지식도 갖고 있는 것을 알고 호감을 표한다. 그는 만약 '내'가 무슬림으로 개종한다면 자유를 주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살해 위협 앞에서 '내'가 개종을 거부하자 파샤는 불쾌해 하면서도 '나'를 호자라는 남자에게 넘겨준다.

호자는 '나'와 외모가 놀랍게도 흡사했다. 하지만 호자는 그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 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만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내'가 가진 모든 지식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와 '나'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흘렀다.

호자는 파디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어했다. 파디샤는 동물을 사랑하는 군주였는데 호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호자는 천문학 지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예언자처럼 보이도록 꾸미기도 하고, 그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파디샤를 몰고 가려 한다.

 

그 즈음 이스탄불에 흑사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나'는 호자에게 흑사병의 두려움과 전염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호자는 좀처럼 '나'의 말을 믿지 않는다. 호자가 벌레 물린 자국을 보여주며 '나'를 위협한다. '나'는 그 자국이 혹시라도 흑사병의 징후가 아닌가 생각되어 섬으로 도망간다. 

호자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호자의 방문과 함께 깨어진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알고 있었다. 호자는 파디샤가 흑사병이 언제쯤 물러갈 것인지 예언하라는 명을 내리자 '나'의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나'와 호자는 힘을 합해 흑사병을 물리칠 방안을 연구하는 한편 흑사병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통계를 내가며 흑사병이 물러갈 날짜를 예측한다. 그 과정에서 '나'와 호자는 주인과 노예 관계에서 동지적 관계로 변모하고, 그후 '나는 왜 나인가?'라는 질문과 이에 대한 탐구의 일환으로 서로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과오를 고백하는 과정을 거친다.

 

파디샤는 흑사병이 물러간 날짜를 예측한 공으로 호자를 황실 점성술사의 자리에 앉힌다. 자신의 이상을 파디샤에게 투영시킬 기회를 잡은 호자는 강력한 무기를 개발할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갖은 어려움 끝에 무기를 완성시킨 호자는 파디샤의 출정에 따라나선다. 하지만 상황은 호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파디샤의 측근들은 그 무기를 불길하게 생각했고 적들의 작은 요새를 습격하는데 투입된 무기의 성능이 예상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자는 강박적으로 점령된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이 저지를 죄과를 실토하라며 가혹 행위를 일삼는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하얀 성에 대한 공략이 쉽지 않자 파디샤는 무기의 투입을 명한다. 무기는 제대로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분명해보였고, 파디샤의 측근들이 이교도인 '나'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호자는 파디샤와 긴 대화를 나눈 다음 새벽에 돌아온 후 '나'와 옷을 바꿔 입은 뒤에 베네치아로 떠난다. 쌍둥이처럼 닮은 외모에 서로의 어린 시절과 과오까지 공유한 둘은 누가 봐도 구분하기 어려워보였다. '나'는 호자 행세를 하며 파디샤의 측근에 머물며 황실 점성술사 행세를 한다. 하지만 파디샤는 시간이 흐르자 '내'가 호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암시를 한다. 

7년의 시간이 흐른 후 황실에서의 생활에서 위협을 감지한 '나'는 황실을 떠나 은거하며 지낸다. 어느 날 베네치아로 간 호자의 소식을 듣는다. 그는 '나'의 행세를 하며 그곳에서 터키에 관한 책들을 써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했다. 또 다른 '나'의 독자인 베네치아에서 온 손님에게 '나'는 이 이야기를 읽힌다. 모든 이야기를 읽은 손님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내'가 꾸며놓은 방은 베네치아의 어린 시절 집과 똑같은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다.

 

'닮은 꼴-쌍둥이' 모티프를 기반으로 쓰여진 <하얀 성>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 갈등하고 융합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화자 '나'와 호자는 닮은 외양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서로 다른 지식과, 그 지식에 대한 태도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공통의 해결과제인 흑사병 앞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힘을 합하게 된다. 

17세기 터키는 찬란한 영광을 뒤로 하고 그 위세가 점차 기울어가는 상황이었다. 호자는 그런 터키를 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야 하고, 그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나'의 지식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은 파디샤의 측극들에게 불길하게 받아들여졌고 무기 역시 실패하고 만다. 그는 계속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베네치아로 떠나고 그곳에서 자신의 조국 터키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한편 '나'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터키에 남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며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오르한 파묵은 1986년 판 제5쇄에 수록된 일종의 '작가 후기'를 통해 자신이 영향받았던 이야기와 아이디어,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말한다. 그는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에서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다"라고 말한 대목을 인용하며, 자신은 그러한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태도에서 벗어나 "동양은 동양이 되지 말며, 서양은 서양이 되지 말라는 바람을 내포했다"고 말한다. 동양과 서양, '나는 왜 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작가의 탐구가 담긴 이 작품으로 오르한 파묵은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2006년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9298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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