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7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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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중앙 유럽, 북아프리카, 그리고 극동 지방을 여행하고 나서 18세기의 인물 드 로르봉 후작에 관한 역사 연구를 완성하고자 3년째 항구도시 부빌에 체류하고 있던 로캉탱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일기는 1932년 1월에 시작된다.

 

드 로르봉 후작에 관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끊임없는 의심이 고개를 쳐든다. 그는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 자체에 의문을 품기에 이른다. 여관 여주인과 단속적인 성관계를 맺거나, 미술관에서 초상화를 보거나,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독서광과 간혹 대화를 나눈다. 그는 독서광이 이야기하는 바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한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던지며 놀고 있는 아이들 흉내를 내려고 돌을 집어들다가 알 수 없는 구토감을 느낀다. 그는 그 구토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헤어진 연인 안니가 몇 년만에 편지를 보내온다.

로캉탱은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를 보다가 다시 구토를 일으킨다. 그리고 비로소 구토의 원인을 깨닫는다. 사물의 존재 자체가 원인이었다.

다시 만난 안니와 '완전한 순간'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안니는 새로 생긴 남자와 떠나고, 로캉탱은 안니에게 미련을 두지 않는다.

독서광이 어린 소년에게 성적인 접촉을 가한 사건이 일어난다. 로캉탱은 그것이 성적 접촉이 아니라 독서광이 휴머니스트이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드 로르봉 후작에 관한 역사책을 쓰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로캉탱은 부빌을 떠나 파리에 가기로 결심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은 후 그는 역사에 관한 논문이 아닌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내일 부빌에는 비가 올 것이다.

 

로캉탱이 조약돌을 집으면서 느낀 구토 경험은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로 이어지고 마침내 자신이 왜 구토를 느끼는지 깨닫는다. 

인간은 사물을 인식할 때 언어를 매개로 인식한다. 에스키모인은 눈 이름만 해도 수십 가지가 있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볼 때에 그 수십 가지 중의 하나로 인식한다. 하지만 남한 사람이라면 기껏해야 함박눈이나 진눈개비 등 몇 가지 범주의 인식밖에 할 수 없다. 

로캉탱은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를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언어를 매개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부여한 '연약한 기호'인 언어가 사라지고, '가공되지 않은' 날것 자체의 '존재'로서 마로니에 뿌리가 자신을 주장하기 시작하게 되면 로캉탱과 마로니에 나무 뿌리는 아무런 연관도 없이 동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마로니에 뿌리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누구도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은 '존재'할 뿐이며 부조리하고 우연적이다. 샤르트르는 있는 그대로의 것이고 자기 속에 안주하는 고정된 것이며 설명될 수 없는 사물을 '즉자존재'라 지칭한다.

반면에 로캉탱은 의식을 지닌 존재이다. 인간의 의식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다. 샤르트르는 인간을 '즉자존재'와 대비시켜 '대자존재'라 칭한다. '대자존재'는 자의식을 가진 존재이며 자기 자신을 항구적으로 '부정'한다.

사물인 '즉자존재'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고 어떠한 말로 가둘 수가 없으며 그 자체로 충만한 것이기에 의식을 가진 '대자존재'인 인간은 사물과 관계를 맺을 때 그 설명할 수 없음에 부조리함을 느끼며 구토를 느끼게 된다.

 

십여 년 전 삼중당 문고본에 붉은 볼펜으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지만 이백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이해불가를 선언하며 작파했다가, 문예출판사 판본으로 다시 읽는다. 역자는 두 권 모두 방곤이다.

이번 독서에서도 <구토>가 이야기하는 바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해의 피안 저쪽에 머물던 책을 조금쯤 내 쪽으로 끌어당긴 느낌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91639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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