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어 앉은 오후 - 제4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이신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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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중년여인 윤자와 20대인 은해의 이야기다.

윤자는 비행기 사고로 딸을 잃는다. 딸은 미술사를 공부했었는데 유부남과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다. 딸의 죽음으로 받은 보상금은 남편의 부도 직전인 회사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남편과 아들은 딸이 죽은 후에도 일상을 어찌어찌 꾸려가는 듯 보였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윤자는 상실감을 왜곡된 형태로 표출하는가 하면 필요치 않은 물건들을 훔치는 도벽이 생긴다.

은해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외양어선을 타는 아버지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집에 들렀고, 의붓오빠들은 공공연히 은해의 어머니를 화류계 여자 취급을 한다. 은해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은해에게 비뚤어진 성적 관념을 심어준다. 은해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반발로 포르노 영화의 더빙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하면 수영강사에게 아무런 감동 없이 몸을 내맡기기도 한다. 

은해와 윤자는 몇 번인가 만난다. 수영 강습을 통해서, 백화점에서, 둘은 스쳐가기도 하고 쇼핑을 함께 하기도 한다. 은해가 수영강사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윤자는 위태로움을 느낀다. 수영강사에게 몸을 내맡긴 날로부터 얼마 후 은해는 수영장에서 윤자와 만난다. 은해가 하혈을 하고 응급실에 실려간다. 윤자는 환자와의 관계란에 母라고 적어 넣는다.

 

소설의 주제는 상실의 극복이다. 윤자는 딸아이를 잃은 후에 딸이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알게 된다. 자신만이 슬픔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한 윤자는 남편과 아들에게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비뚤어진 복수를 꾀한다. 그리고 높이 뛰기 선수를 보며 자신도 땅에서 훌쩍 벗어나고 싶다는 탈출의 욕구를 느낀다. 하지만 어느날인가 엉망으로 취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딸의 죽음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 자신 혼자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윤자가 은해와의 관계를 母라고 적어 넣는 것은 그녀가 딸의 죽음을 고통스럽지만 극복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은해의 경우는 재취 자리로 들어와 화류계 여자 쯤으로 취급받던 은해의 어머니가 은해에게 과도하게 성적인 순결을 강조한 것이 화근이 된다. 억압되고 비뚤어진 은해의 성(性)은 기형적으로 표출된다. 그녀는 돈이 목적이 아니면서도 포르노 영화를 더빙하고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도 않은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다. 은해는 수영강사가 자신의 처녀혈을 보고 만족해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아버지의 가죽 장갑을 끼고 자위행위를 통해 처녀를 파괴하는 모습이 내게는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 어머니의 성적 억압이 아버지에 대한 성적 동경으로 왜곡된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흠이라면 인물의 형상화가 부족하고 아픔의 깊이에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십줄에 접어든 윤자가 딸을 잃은 슬픔이 관념적으로 흘러가다보니 사춘기 소녀의 그것과 비슷하게 읽히고, 은해의 트라우마는 구체성이 부족해 그녀의 아픔이 와닿지 않는다. 무겁고 진중하게 소설을 써내려가려는 작가의 노력은 이러한 흠결로 인해 독자에게는 가볍게 읽힌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88228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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