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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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새벽 후계자로 지명된 이가  침실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알바니아 텔레비전 방송국은 후계자가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발표를 한다. 그러나 후계자의 사망이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해서는 소문이 무성했다.

후계자는 죽기 전날 아침 여덟 시에 깨워달는 말을 아내에게 남겼다. 표면적으로 그는 다음 날 정치국 최종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고 그 회의에서 자아비판을 거친 뒤 잘못을 용서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는 지도자가 종종 사용하는 방법인지도 몰랐다. 지도자는 언제나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 회의를 연기했고 비판의 대상이 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후계자는 어쩌면 딸의 약혼 때문에 지도자의 신임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딸 수산나는 반동적인 집안의 사내와 약혼을 했었다. 약혼식 날 지도자가 후계자를 방문했다가 일찍 돌아갔고 수산나는 사내와 헤어지길 강요받는다. 그러나 약혼을 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후계자의 부검은 2인자인 내무부장관 아드리안 하소베우의 지휘 아래 시행된다. 하소베우는 후계자가 반동적인 이유로 자살했다고 결론이 내려진다면 자신이 후계자로 지명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하소베우는 정치국 회의 결과 숙청된다.

한편 후계자의 집을 개축한 건축가는 내밀한 비밀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는 후계자의 집 지하 통로가 지도자의 집과 이어져있고 그 문은 지도자의 집 쪽에서만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타살이라면 범인들은 지도자의 집을 통해서 왔을 것이다. 정신병원에 갖힌 건축가는 자신이 후계자를 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후계자의 저택을 지도자의 저택보다 더 아름답게 개축함으로서 지도자의 질투를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후계자가 왜 죽었는지,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밝혀지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지도자 마저 후계자의 죽음과 관련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영매들은 저승에 있는 후계자와 접촉했다며 단편적인 사실들을 중얼거렸지만 그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바니아의 독재자 엔베르 호자의 총애를 받던 후계자 메메트 세후가 1981년 12월 14일 새벽 총에 맞은 시신으로 발견된다. 공식적인 발표는 자살이었지만 이 죽음을 둘러싸고 무수한 소문과 의혹이 나돌았으며 끝내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스마엘 카다레는 이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를 집필했다.

 

카다레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한 사건들은 인류의 기억이라는 샘,

우리가 사는 시대를 포함해 언제라도 다시 솟아날 수 있는

이 영원한 기억의 샘에서 길어올린 것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실제 상황 및 인물들과의 유사성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특정 시대와 정치 권력을 지칭하지 않으면서도 유사이래 반복되었던 제국의 속성을 형상화해낸 것과 같이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역시 공포정치, 독재, 권력에 대한 본질을 날카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나 마지막 제7장에 나오는 후계자의 발언, "나는 '나중에 오는 자'였다.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미리 지명된 자. 지도자 동지가 이 사실을 모두에게, 우선 자기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언젠가 그는 더이상 그 자리에 없을 것이며, 반면에 나는 계속 존재할 것임을...지도자 동지가 어떻게 이 사실을 견뎌낼 수 있는지 의아했다." 이 한 문장은 권력과 독재에 대한 촌철살인의 한 마디이다.

언젠가 권력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권력자에게 있어 가장 큰 공포이다. 게다가 그것이 독재적인 형태라면 그 공포는 가히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 공포의 안전판이 바로 후계자이다. 권력을 내려놓은 자신, 혹은 사후의 자신을 보위해줄 구체적인 담지자로서 후계자는 필요하다. 하지만 바로 같은 이유로 후계자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자신의 권력이 영구불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자신이 차지한 꿀과도 같이 달콤한 권력을 양도받을 자가 있다는 것, 그가 그 시기를 앞당길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의심만이 아니라 언젠가는 권력을 이양받을 자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질투심은 권력자를 분열 상태로 몰아 넣는다. 그리하여 소설 속에서도 내무부장관은 후계자가 되지 못하고 숙청되며 제3의 인물이 후계자가 된다. 후계자를 내친 마당에, 새로운 후계자 자리는 그걸 받을 만하다고 여겨지지 못했던 자에게 물려줄 때에 충성심이 배가 될 것이다.

결국 후계자는 '우리는 우주의 대질서 속에서 생겨난 오류의 자손일 따름' 이라고 말한다. <누가> 죽였는가에 대한 답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오류의 자손들이 통치를 하고 있고, 사람들은 <누가> 죽였는가를 궁금해할 뿐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9148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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