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기다리다 - 제13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토야마 아키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o 바다에서 기다리다

 

'나'는 고탄다에 갔다가 마키하라 후토시, 통칭 후토(太)짱을 만난다. 

 

후토짱은 입사 동기로 처음엔 조금 통통한 정도의 체격이었으나 이름 값을 하려는 것처럼 뚱뚱해지더니 나중에는 거대해진다. 도쿄 출신의 '나'와 후토짱은 후쿠오카로 발령이 결정되자 발령지에 불만을 품고 우울해 했으나 막상 가보니 도시가 의외로 밝고 깨끗해 머쓱한 기분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한다. 버블 경제의 막바지 무렵이라 둘은 야근을 밥먹듯 하며 일에 매진한다. 

얼마 후 단호한 면이 엿보이는 베테랑 사원 이구치씨와 느슨한 분위기의 후토짱이 결혼을 한다. 이구치씨는 '루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둔다.

버블 경제는 붕괴 되었지만 여전히 일은 많았다. 예전에는 납기에 맞추느라 바빴다면 이제는 경쟁사와 고객을 놓고 경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후토짱도 각기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예전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게 된다. 도쿄에서 후토짱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나'에게 후토짱이 '누가 먼저 죽게 되든 상대편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망가뜨려 주자'고 제안한다. 

어느 날 후토짱이 집에서 나오다가 자살하는 사람과 부딪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는 약속대로 후토짱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망가뜨린다. 

후토짱의 장례식에 갔다가 이구치씨가 건내준 대학노트를 보게 된다. 거기에는 조잡하지만 후토짱 다운 시들이 적혀 있었다. 애써 망가뜨려준 하드디스크드라이브에는 그 시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노트에 죄다 남겨 놓았으니 쓸데 없는 짓을 한 셈이다.

 

고탄다에서 만난 후토짱은 그러니 유령이다. 후토짱은 예약을 하고 간 치과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는 상태 같다고 말한다. '나'는 후토짱에게 후쿠오카에 처음 갔을 때가 기억나는지 묻고, 후토짱은 기억한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덧붙일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o 노동감사절

 

나가다니가와씨는 이웃으로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준 분이다. '나'의 엄마와 나가다니가와씨 모두 과부였고 그런 사정으로 둘은 상당히 친했는데, 백수로 시집도 못가는 '나'를 염려해 나가다니가와씨가 맞선을 주선해 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주선자의 입장을 생각해 나간 맞선 자리에 나온 남자는 '폭탄' 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그는 '일을 취미로 갖고 있는' 남자였고 지저분한 식사 매너에 더욱 나쁜 것은 백수에 시집을 못간 나를 '마케이누(싸워서 진 개 : 결혼하지 않은 30대 미혼 여성)'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참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나'를 엄마는 차마 말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엄마에게 집적댄 부장을 맥주병으로 내리쳐 회사에서 퇴직하게 된 '나'의 성깔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같은 회사에 다녔으나 이제는 퇴직하여 여행사에 다니는 미즈다니를 시부야로 불러 술을 마신다. '나'는 버블 경제 당시 학력 역차별로 입사해 이렇다할 비전도 없이 여성다운 일을 강요당하다가 퇴직한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제는 그저 다루기 어려운 아줌마로 애써 배운 영어 따위 써먹지도 못하는 것 등을 떠올린다.

그때 미즈다니가 누에 이야기를 한다. 누에는 어렸을 때 새하얗고 통통한데다가 가느다란 명주를 토해낼 때엔 너무너무 사랑스럽지만 어느 날 나방이 되면 자기가 나온 새하얀 고치에 오줌을 싸고 흉하고 보기싫은 털까지 있어 완전히 엉망이다, 이제 우리들이 그런 누에나방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요지의 말을 한다.

미즈다니와 헤어져 집 앞 술집에 들른다. 술집 주인은 장사가 잘 안되는 것을 걱정하는 나에게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뿐, 안되면 그 때 가서' 라고 말한다. 화장실에 들른 나는 생리가 시작된 것을 알게 되고  여자라는 사실이 싫어진다. 집으로 가면서 나는 '안되면 그 때 가서' 라고 생각한다.

 

표제작 <바다에서 기다리다>는 2006년 13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그러나 여러가지로 허술한 작품이다. '나'와 후토짱 사이에 딱히 연대의식이 싹틀 만한 사건도 없이 그저 동기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대학 다닐때에 '동기사랑 나라사랑' 하는 정체 불명의 구호가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정말 싫었다. 동기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은 둘째 치고 그것이 곧 나라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도 우스웠다. 그런데도 '동기사랑 나라사랑' 운운의 말은 NL 계열의 전략적 지원을 받기라도 한 듯 그 후로도 몇 년간 회자되었다.

<노동감사절>은 131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인데 이쪽이 더 마음에 든다. 백수이자 시집을 못 간, 소설 속에서 '싸워서 진 개' 의 위치에 있는 노처녀의 섬세하고도 유머러스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김애란의 <성탄특선>이 떠올랐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669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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