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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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인 '나'는 소설가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화자에게는 엘리엇 템플턴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미술 거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한편 사교계에 선을 대고 있다. 본래는 미국인이지만 영국과 프랑스에 체제하며 귀족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등 속물적인 인물이지만 남을 돕기 좋아하는 일면도 있다.

'나'는 엘리엇 템플턴, 그의 여동생 루이자, 그리고 그녀의 딸 이사벨과 친교를 맺게 된다. 엘리엇과 루이자의 걱정은 딸 이사벨이 래리라는 청년과 약혼을 한 상태인데 그가 도통 직업을 얻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래리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고깃덩이처럼 변해버린 전우의 시체를 보고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었다. 그 후로 삶의 목적이라든가 악이 존재하는 이유 등에 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이런 이유로 래리는 프랑스 파리로 떠나고 만다. 엘리엇은 자신의 조카가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청년과 약혼했다는 것이 못내 못마땅했다. 

 

엘리엇을 만나러 루이자와 이사벨이 파리로 온다. 래리와 이사벨은 파리에서 서로의 견해 차이를 확인한 후 파혼에 이른다. 래리는 자신이 인생의 해답을 얻기 위해 정진하면서도 이사벨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사벨은 물질적인 풍요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 후 이사벨은 대부호의 아들 그레이와 결혼하고 래리는 프랑스의 탄광과 수도원, 독일의 농장,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떠돌며 구도의 길에 나선다.

 

마냥 계속될 것만 같았던 증권시장의 상승세가 1929년 대공황으로 폭락한다. 그레이는 파산하고 루이자 역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 엘리엇은 대공황 직전 교황청의 조언에 따라 주식을 모두 금으로 바꾼 덕에 훨씬 부자가 된다. 엘리엇의 권고로 그레이와 이사벨은 파리로 이주한다. 하지만 그레이는 파산의 여파로 신경쇠약과 극심한 두통을 얻게 되고 되고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래리는 화자인 '나'와 우연한 만남을 몇 차례 갖는다. 래리는 자신이 신비주의와 가톨릭 등 해답을 찾기 위한 경험과 공부 등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파리에 머무르던 어느 날 소피 맥도널드가 나타난다. 그녀는 래리, 이사벨, 그레이와 함께 자란 아가씨이다. 그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고 그 후로 심각한 타락을 거듭하다가 추문을 견디다 못한 시댁에서 쫓겨나 유럽에서 생활비를 얻어 쓰는 처지였다. 그녀는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된 상태였고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가졌다. 

래리는 어렸을 적 소피와 시를 읽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의 내면에 숭고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 래리는 결혼을 결심한다. 이 소식은 이사벨에게 충격을 가져다 준다. 이사벨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나'는 결혼을 반대하는 이사벨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다. 또한 그녀가 물질적인 풍요 때문에 래리를 버렸으면서도 겉으로는 자신이 대단한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인척 했고 래리에 대한 욕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사벨은 소피가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자신의 집에 초대한 후 술병을 남겨 놓는다. 그녀의 의도대로 소피는 술을 마신 후 결혼식 3일 전에 잠적하고 만다. 

 

래리는 인도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흰두교와 구도자들에게 매료된다. 5년간의 인도 체제를 마치고 돌아온 파리에서 래리는 소피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와 래리는 경찰서에 불려가 신원확인을 해준다. 래리는 자신이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을 발간한다. 그 책은 성공한 인물들에 관한 에세이였다.

래리는 인도 여행을 계기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신적인 성스러움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제 미국으로 건너가 그런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래리의 삶이 과연 얼마만큼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지 의문시하지만 래리는 아주 작은 변화라 할지라도 수면에 파문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사벨과 그레이 역시 엘리엇이 죽으면서 남겨준 유산으로 미국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 래리의 미국행을 전해 들은 이사벨은 자신이 이제 영원히 래리를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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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달과 6펜스>와 함께 서머셋 몸의 3대 장편소설로 꼽히는 <면도날>은 1944년도에 발간된 소설이다. 작품 제목인 <면도날>은 카타 우파니샤드에의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에서 인용된 말이다. 

소설의 중심 인물은 역시 래리이다. 그는 전쟁을 통해 죽음을 목격한 후 인생의 의미에 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동서양을 여행하고 많은 공부를 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미국을 유럽과 동양의 중간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제3의 가능성을 지닌 나라로 설정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패권국이 되기 전, 미국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물질적인 면에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신적인 가치관에 있어서는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된다. 유럽의 카톨릭이라는 완결된 형식의 가치관은 스스로 거부한 상태였고 동양적인 가치관 역시 마련할 여유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래리처럼 전쟁과 죽음을 경험한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엄청난 경험을 한 래리는 따라서 스스로 답을 찾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래리는 완결된 형식의 해답을 얻지는 못한다. '도를 아십니까'라는 역전 앞 사기꾼들의 질문에 '알고 있다면 그것이 도이겠느냐'라고 되물었다는 말처럼 한 권의 소설 속에서 인생의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제시될 수는 없다. 하지만 래리가 결국 동양적인 선(善) 사상을 받아들이는 부분은 역시나 서양적인 선입관이 작용된 바가 크다고 느낀다. 이러한 선입관이 결국 서양은 물질적인 면, 동양은 정신적인 면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적 구분을 낳고 제국주의적인 침략과 그 결과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 추구하는 바에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 래리처럼 인생의 근원적 질문에서 해답을 얻고자 노력하는 인물도 있지만 이사벨과 같이 물질적인 풍요와 욕정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엘리엇은 사교계와 귀족사회를 자신의 세대에서 다시금 부활시키고자 하고 그레이는 직업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고 싶어한다. 작가는 그들 모두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668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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