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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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영국 정보부의 베를린 지부를 담당하는 리머스는 카를 리메크가 장벽을 통과하기 직전 사살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것으로 리머스가 담당하던 동독 내 영국 첩보망은 괴멸되었고, 리머스는 영국으로 소환된다.

현장 업무에서 제외된 리머스는 금융국에 배치되어 경리 업무나 다름 없는 일을 배정받고,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금융국에서 쫓겨난 리머스는 도서관 사서 보조로 취칙한다. 리머스의 무감동한 일상에 리즈라는 아가씨가 끼어든다. 리머스는 그녀에게서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 '평범한 생활이 가치 있다는 믿음' 등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리머스는 리즈에게 자신이 떠나게 되면 절대로 찾지 말라는 말을 한다.

리머스가 식료품점 주인과 사소한 다툼 끝에 그를 폭행하고 3개월간 수감된다. 출소한 리머스에게 정보를 사겠다는 자가 접근한다. 그는 리머스의 과거에 대해 1만 5천 파운드, 추가 질문에 대해 5천 파운드를 제시한다. 리머스는 1만 5천 파운드에 대해서만 응낙한다.

 

그들은 리머스를 네델란드로 데려가 심문을 시작한다. 리머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야기하는 중간 중간 정보부의 책임자인 관리관의 언급들이 떠오른다. 리머스가 어떻게 이야기 해야 그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지, 그리고 함정에 빠지게 될는지에 대한 언급들이다. 

리머스와 영국 정보부는 동독 첩보망이 문트에 의해 괴멸되었으므로 그에게 복수하고 싶어했다. 리머스는 거짓 전향을 위해 그동안 술을 마시고 민간인을 폭행했으며 정부에 불만을 품은 듯 행동했던 것이고, 그를 감시하던 자들이 마침내 입질을 시작했던 것이다.

심문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영국 내에서 리머스가 횡령 혐의로 수배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전에 합의된 사항이 아니었으므로 리머스는 당혹해한다. 심문하던 자들은 리머스를 동독으로 데려가 추가 질문을 하고 싶어했고 리머스가 이를 거절할 경우 의심을 사게 될 것이었다.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동독으로 간 리머스를 심문하게 된 자는 피들러였다. 그는 문트 다음가는 권력자였다. 피들러는 세심하게 리머스에게 질문을 던졌고 리머스 역시 주의 깊게 답변한다. 

리머스는 자신이 어떻게 카를 리메크를 포섭한 후 돈을 지불했는지, 첩보망이 붕괴된 후 금융국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답변한다. 피들러가 진정 알고 싶어했던 사항은 독일 내 또다른 배신자가 누구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살해당한 카를 리메크 보다 윗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 역시 새어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리머스는 자신이 베를린의 책임자였고 자신이 모르는 제3의 정보제공자는 있을 수 없다고 단호히 진술한다. 피들러는 리머스가 자존심 상해 하는 모습에서 진실성을 발견했다고 믿는다. 

 

피들러는 리머스의 진술을 바탕으로 영국정보부가 그려준 대로 그림을 그린다. 문트는 영국에서 첩보 활동을 하던 중 두 사람을 살해했다. 그 사건으로 영국 정보부는 문트를 수배하지만 문트는 너무나 손쉽게 동독으로 탈출한다. 피들러는 문트가 당시 영국 정보부에 체포당한 후 포섭당했다고 믿는다. 

그 근거는 중동 쪽에서 영국정보부에 고급 정보를 팔려고 했을 때 영국 정보부가 단호히 거절한 점이다. 이미 갖고 있는 자료를 살 이유는 없는 것이다. 또 리머스가 예치한 돈을 외국은행에서 누군가가 찾아간 시점과 문트가 출장간 시점이 일치하고 있었다. 피들러는 문트를 고발한다. 사문회가 열리고 피들러의 진술이 시작된다. 문트는 이제 조국의 배신자로 사형을 받기 직전이다. 모든 것이 영국 정보부와 리머스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듯 했다. 그들은 문트를 제거하기 직전이다.

문트의 변호인 측이 반격에 나선다. 그들은 증인으로 영국에서 리즈를 데려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리즈의 입을 통해 리머스가 스파이 업무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정황을 끌어낸다. 리머스는 식료품점 주인을 때리기 직전 리즈에게 작별인사를 했고, 그가 떠난 후에는 제3자가 방세를 갚아주고 리즈에게 지원을 해주었다. 모든 것이 영국정보부의 계획대로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계획은 실패한다. 문트는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되었고 피들러가 처형당하게 된다.

 

구금되어 있던 리즈를 누군가가 풀어준다. 그를 따라 나가자 리머스가 차 옆에 서 있다. 운전수는 그들이 어떻게 서독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들을 풀어준 것은 문트였다. 

리머스가 알고 있는 계획은 문트를 영국정보부의 첩보원으로 몰아가 그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리머스가 알지 못했떤 영국 정보부의 또 다른 계획은 문트에 대한 동독 내 의심을 말끔히 제거해주고 덧붙여 피들러까지 제거하는 것이었다. 문트에 대한 피들러의 의심은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다.

서독으로 넘어가는 도중 계획보다 일찍 서치라이트가 둘을 비추고 리즈가 총에 맞아 장벽에서 떨어진다. 총성이 멈춘다. 리머스가 넘어가도록 배려하는 것 같다. 리머스는 동독 쪽으로 떨어진 리즈의 시신 쪽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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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껏 읽어온 스파이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제3의 사나이>의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말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스타일리쉬한 문체와 분위기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그것에 비견할만 하고, 장르 문학이 가질 법한 한계에 머물지도 않았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리머스는 돌아가지 못한다. 자신이 제거 대상이라고 여겼던 문트가 사실은 영국에 포섭된 고급 정보원이었고 자신과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리즈가 영국 정부에 의해 소모품처럼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리머스가 돌아갈 곳은 없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마지막 장의 제목에서 다시 한번 사용되는데 그 장의 제목은 <추운 바깥에서 돌아오다> 이다. 마지막 순간 리즈는 '약속과 달리' 사살되었고 -그녀는 민간인이다-, 리머스는 여전히 필요한 장기말이었으므로 사격이 잠시 그치고 도망갈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리머스는 돌아갈 곳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리즈와 운명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이야기 하는 '추운 나라'는 소련과 동구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냉정한 세계, 곧 냉전세계와 그에 파생하는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를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에 반대되는 세상은 곧 피들러나 리즈가 추구하는 세계, 진실된 세계일 것이다.

리머스는 죽기 직전 유리창을 통해 쾌활하게 손을 흔들던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은 리머스가 아직 스파이로 활동하며 냉전세계의 논리를 내면화했던 시기에 본 모습이다. 과속으로 추월한 후 본 아이들의 모습과 리즈가 제시한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 '평범한 생활이 가치 있다는 믿음' 등이 추운 나라와 대비되는 나라이다. 리머스는 죽기 직전 돌아왔다. 

소설은 피들러, 리즈, 리머스를 모두 죽는 운명에 처하게 만든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냉전세계의 논리는 일개 개인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소설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6086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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