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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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진과 영실 사이에 묘도가 나고 그 묘도가 낳은 딸이 미실이다. 미실의 집안은 대원신통으로 색공지신(色供之臣)이었다. 

지소는 태종과 상간하여 세종을 낳았고 후에 입종갈문왕과 정식 혼인하여 태후가 된다. 세종은 진군의 위를 갖게 되며 진흥제와 형제가 된다. 지소태후는 세종이 성장하였으므로 여인을 알게 하였고 세종이 선택한 여자가 미실이었다. 세종은 미실과 상통한 후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된다.

한편 미실의 이모가 되는 사도황후는 진흥제의 정식 부인으로 시어머니 지소태후의 심한 견제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미실에게 방책을 묻는다. 미실은 진흥제만이 사도황후의 지위를 보존해주리라 간하고 사도황후는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다. 지소태후는 미욱한 사도황후에게 꾀를 내준 사람이 미실이었음을 알고 그녀를 궁에서 쫓아낸다. 미실은 울며 쫓겨나고 세종은 그날로부터 미실을 잃은 슬픔과 괴로움에 잠긴다.

쫓겨난 미실은 화랑 사다함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사다함이 전쟁에 나가기 전 둘은 혼인을 언약한다. 하지만 상사로 죽을 지경에 이른 세종을 구하기 위해 지소태후가 미실을 다시 불러들인다. 하지만 세종을 향한 미실의 마음은 이미 식어있었다. 미실이 궁으로 돌아갔음을 안 사다함은 깊은 슬픔에 잠기고, 자신을 사모하는 무관랑이 죽자 그 뒤를 따라 명을 다한다. 지소태후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갖게 된 미실은 사도황후의 권고에 따라 동륜태자를 유혹한다. 

어느 날 진흥제가 미실을 보고 한눈에 반하고 미실은 진흥제에게 색공을 바치게 된다. 이후 진흥제는 미실에 취해 미실 이외의 여자가 눈에 차지 않는다. 미실은 사다함의 동생 설원과 상간하여 설원을 손에 넣는다. 한편 동륜태자가 진흥제의 품으로 간 미실을 잊지 못해 때때로 미실에게 관계해줄 것을 요구하여 미실은 자신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미실은 동생 미생에게 동륜태자를 여색에 빠지게 만들어 관심을 돌리도록 한다. 계교는 성공했으나 동륜태자가 보명에게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보명궁을 지키던 개에게 물려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륜태자의 죽음을 캐던 진흥제는 미생과 미실의 이름이 수시로 나오자 분노한다. 미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또 다시 궁 밖으로 나간다. 미실은 진흥제가 모든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고, 시간이 흐른 후에는 자신을 다시 찾을 것이라 믿는다. 

세종이 다시 미실을 찾아와 함께 지내기를 간청한다. 세종은 미실의 마음 방향과는 무관하게 곁에 있을수만 있다면 족한 상태였다. 미실은 세종에 대한 미안함에 그렇게 한다. 진흥제가 미실의 예상대로 다시 찾아오고 미실은 세종과 함께 궁으로 돌아간다.

세월은 진흥제만 비껴가지 않았고 진흥제가 기력을 잃기 시작하고 마침내 자리보전하기에 이른다. 미실과 사도황후는 금륜태자를 색으로 회유하기로 한다. 하지만 막상 보위에 오른 금륜태자는 미실을 내치고, 미실은 속 깊은 앙심을 품는다. 금륜태자는 선대왕의 위업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다가 막상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게 되자 색에 빠져들고 만다. 

세종에게는 문노라는 강직한 화랑이 수하에 있었다. 문노는 미실이 남자를 미혹하여 독을 뿜는 존재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세종에 대한 의리와 충성심으로 미실이 금륜태자를 폐하는 거사에 참여한다. 금륜태자는 폐위되어 유폐되고 진평이 제위에 오른다. 미실은 진평제에게 색공을 올린 후 궁을 떠난다. 떠나는 미실을 따른 것은 설원이다. 미실이 병에 걸려 오랫동안 앓다가 꿈을 꾼 후 가까스로 몸을 추스린다. 미실은 설원이 남은 생을 자신에게 주고 생을 마감했음을 알게 된다. 설원의 관 뚜꼉을 덮는 미실은 법구경의 한 구절을 읊조린다.

 

이 집 지은 사람 이제 보았으니

너는 다시 집을 짓지 마라

너의 모든 서까래는 부서지고

기둥과 대들보도 내려앉았다

이제 내 마음을 짓는 일 없거니

사랑도 욕망도 말끔히 사라졌다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미실이라는 여인이 김별아의 손 끝에서 되살아났다. 유가적 성도덕이 채택되기 이전의 미실은 철저히 현세적이고 즉자적인 가치관에 충실하다. 사실 소설 속 미실이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김원일은 "여성 인권 신장에 한 켜를 보탠 혁신적 성과"라 하였고, 성석제는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자유혼, 모성의 관능을 느끼게 해준다"고 하였지만 나는 이러한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미실의 행적은 단순히 말하자면 방중술을 익힌 총명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여색을 무기로 한바탕 신명난 삶을 산 궤적이며, 그 궤적이 공교롭게도 왕실과 닿아 있었던 까닭에 권력을 능히 손아귀에 쥔 과정이다. 이러한 미실의 삶이 여성 인권이나 자유혼과 어떤 연관을 갖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심사평을 쓴 소설가와 평론가들은 미실의 삶을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해석하나 미실의 삶은 제한된 선택권 중 가장 권력과 근접한 것을 택해온 삶에 다름 아니다.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사다함을 미실이 버리는 장면이야 말로 이를 웅변한다. 그녀는 자유로웠던 적도 없고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적도 없다. 다만 권력과 색욕이 시키는 바에 충실했을 뿐이다. 유교적 성도덕이 채택된 이후의 여인들과도 다른 점이 없다. 그 이후로도 왕권의 주변에서 색을 무기로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여성은 존재했고, 그런 여성에 대해 여성인권이니 자유혼이니 하는 것은 우습다. 남성이 가진 것을 여성이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고 하여 그것이 곧 여성인권이나 자유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조악한 페미니즘이다. 

작가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서문에 나오는 미학에 충실하다. "아름다운 사물에서 추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아무런 매력 없이 타락한 인물이다"로 시작되는 그 현세적이고 즉자적인 미학 말이다. 

그래서 미실이 마지막으로 설원을 묻고 법구경을 읊조리는 장면은 뜬금 없다. 결국 미실이 깨달은 것이  공(空)이란 말인가. 알 수 없는 결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실이라는 인물을 재구성해내는 작가의 솜씨는 발군이다. 찬사를 보낸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723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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