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77년 동구에게 여동생이 생긴다. 아버지가 3대 독자이고 동구가 4대 독자이니 할머니는 남자아이를 바랬으나 여자아이가 태어나자 엄마에 대한 구박은 더욱 심해진다. 동생은 할머니의 짧은 한자 지식으로 인해 복자(福子)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될 뻔 하였다가 가까스로 영주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동구는 영주를 무척 귀여워하고 자랑스러워한다. 한편 할머니의 엄마에 대한 구박은 점점 도를 지나치게 되고 아버지는 중재 역할을 못한채 엄마의 희생만을 강요한다.

동구가 3학년이 되고 얼굴이 예쁘고 마음씨 착한 박영은 선생님이 담임이 된다. 박영은 선생님은 동구가 한글을 잘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난독증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박영은 선생님은 동구에게 방과 후 한시간씩 한글을 가르쳐주는데 동구가 고민하는 집안 일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알아 듣기 쉽게 설명해준다. 박영은 선생님의 따뜻한 가르침에 동구는 점차 자신감을 갖게 되고 그런 동구를 박영은 선생님은 귀여워한다. 이런 동구와 달리 영주는 세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한글을 깨우쳐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 즈음부터 신기하게도 할머니는 영주와 친해져서 둘은 사이가 좋아진다.

엄마와 할머니의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아버지는 수수방관하는 상태가 지속되던 1979년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시국은 어수선해진다. 중앙청 앞에 탱크가 있다는 소문에 동구는 친구와 함께 구경하러 갔다가 도중에 고시 공부를 하는 주리 삼촌에게 걸려서 탱크 구경도 못하고 주리 삼촌이 마시라고 준 소주에 취하고 만다. 주리 삼촌은 탱크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며 동구를 혼내고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한다.

1980년 4학년이 되고 박영은 선생님과 헤어진 동구는 새로운 담임으로 변태같은 오선생을 만난다. 그는 잘못한 아이들의 귀를 깨무는가 하면 겨드랑이 냄새를 맡게 하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일삼는다. 동구가 박영은 선생님과 공부하며 얻었던 자신감은 조금씩 사라져 다시 어눌한 동구가 되었고, 오선생은 동구를 이용해 박영은 선생과 엮여볼 궁리만 한다. 동구는 오선생이 박영은 선생님에게 추근대는 것이 싫어 생긴 고민을 주리 삼촌에게 이를 털어 놓는다. 주리 삼촌은 오선생을 만나 자신의 큰 덩치와 낮은 목소리로 위협하여 상황을 해결해준다.

박영은 선생님에게 호감을 느낀 주리 삼촌이 동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술자리가 마련된다. 그 자리에는 이태혁이라는 사람도 함께 하는데 박영은 선생님은 대학때 이태혁과 함께 운동을 하던 사이였고, 주리 삼촌의 후배였다. 박정희가 죽고 계염령이 발한 시국에 대해 주리 삼촌은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지만 이태혁은 군부 독재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박영은 선생님은 자신이 비겁해서 운동을 떠났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희망을 찾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엄마 몰래 서준 보증이 잘못되서 엄마는 적금을 모조리 깨야했고 할머니는 속이 상한 엄마를 더욱 구박한다. 방학이 시작되고 박영은 선생님이 광주로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 주리 삼촌은 선생님이 죽었을 거라는 소식을 전하며 운다. 영주에게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감나무에 달린 감을 만저보게 해주려다가 동구가 발을 잘못 디뎌 영주가 계단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만다. 영주를 예뻐하던 할머니는 엄마에게 '아이 잡아먹은 년'이라고 욕하고 엄마는 할머니 앞에서 장독을 패대기친 후에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박영은 선생님이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 고민하던 동구는 할머니가 엄마와 아버지를 떠나는 길밖에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하여 할머니께 시골에 내려가서 둘이 살자고 한다. 아버지는 동구의 이런 결정에 착찹한 심정이 된다. 동네에 유일한 3층 집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던 동구는 죽을줄로 알았던 곤줄박이 새가 살아있음을 발견한다. 동구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하며 섭섭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어린 동구의 눈을 통해 가족과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소설이다. 난독증을 갖고 있는 동구가 보는 아버지와 엄마, 할머니의 관계를 담담하게 그려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과 그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희생당하는지 보여주는 한편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군부독재 정권의 쿠데타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 자체는 그다지 잘 쓰여진 편은 아니다. 동구의 개인적인 삶과 주변부 인물의 삶이 당시 사회모습과 자연스럽게 배치되지 않았고 아름다운 정원과 곤줄박이 새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애매하다. 동구의 아름다원던 기억을 의미한다고 보기엔 사회 상황이 그렇지 못했고, 희망을 상징한다고 보기에도 이후의 군부독재 정권과 들어맞지 않는다.

동구의 시선으로 소설이 진행되었어야 하지만 주리 삼촌, 이태석, 박영은 선생의 만남과 대화들은 결코 동구의 시선이 아니다. 80년 광주를 이야기하기 위해 박영은 선생님이 광주로 가는 부분과 함께 작가가 '이야기해야 하는 부담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광주민주화항쟁은 나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1980년에 아버지의 이직으로 광주에 있었다. 당시 한일극장 뒤편에 살고 있었는데 군인들이 이곳 저곳에 서 있었고,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지금은 이름을 잊은 동네 아이와 2층에 있는 큰 통 속에서 우리는 군인 놀이를 했고, 내가 밖으로 나간 줄 알았던 엄마는 울면서 미친듯이 나를 찾아 헤맸었다. 통 속에서 발견된 나는 흠씬 두들겨 맞았던가, 그리고 다음 날부터 2층에 살던 가족들이 1층의 우리집에 내려와 지냈다. 총알이 2층으로 날아올지 모르므로 담이 있는 1층에 있어야 안전하다고 했다. 앞집 고등학생 형이 없어졌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3주일쯤 지난 후에야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고, 금남로에 여전히 불에 탄 자동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사람이 무수히 죽어나갔다고 들었고, 그 후에 사진과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한 후 우리 사회에 광주에 진 빚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 97세 된 나치 전범이 잡혔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접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광주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회가 분열될 우려가 있다며 외장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 축소, 혹은 사라질 그들의 기득권이다. 분열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회는 이미 분열되있으므로 '정치'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정치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실현하려는 단순한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그 욕망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488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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