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구) 문지 스펙트럼 9
박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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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어머니의 걱정을 뒤로 한 채 구보씨는 집을 나와 천변길을 광교로 향하여 걸어간다. 한낮의 거리에서 격렬한 두통을 느낀 구보는 '삼바스이'라고 하는 효험이 의심스러운 약을 떠올린다. 그는 귀 기능에도 의혹이 간다. 종로 네거리에서 몸 가는대로 걷는다. 전차를 탔다가 소개로 만난 여성을 우연히 본다. 객쩍은 마음을 느끼다가 조선은행 앞에서 전차를 내려 장곡천정으로 향한다.

다방에 들어가 가배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다 어정쩡한 관계인 남자를 보고 불편한 상황에 처한다. 골동점을 경영하는 친구를 찾아갔다가 허탕을 치고 다시 걷는다. 옛 동무를 우연히 만나는데 그는 자신의 영락한 처지를 의식한 듯 서둘러 구보를 떠나버린다.

남대문을 안에서 밖으로 나가던 구보는 황금광 시대에 관해 생각해본다. 이번엔 금전적으로 출세한 친구를 만난다. 그는 애써 나를 다방으로 이끈다. 곁에 있는 예쁜 여성과 성공한 친구가 서로 황금과 육체를 소비하는 공상을 한다. 친구를 떠나 조선은행 앞에까지 간 구보는 다시금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방으로 간다. 마침내 벗을 만나고, 둘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논하는 등 담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급한 약속이 있어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난다. 다시 만난 둘은 대창옥에서 식사를 한다. 구보는 과거 연애하였던 여성에 관하여 생각한다. 벗과 여급이 있는 술집에 가서 상념에 잠기던 구보는 상복을 입은 여성이 생활에 쫓겨 여급을 모집하는 광고에 접하여 당황하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오전 2시. 구보는 생활인으로서 좋은 소설을 쓰리라 다짐한다.

 

o 딱한 사람들

순구가 잠을 깨어보니 진수는 이미 방을 나갔다. 순구는 다섯 개 있어야 할 담배가 두개 밖에 없는 것을 보고 진수를 탓한다. 끼니 거르기가 일쑤인 요사이 둘은 대화도 줄어들고, 서로를 원망하는 마음마저 인다. 순구는 신문에서 구인광고를 보고 적당한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득 자신은 애초에 일할 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인광고를 보는 행위를 지속함으로서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한편 진수 역시 배를 곯다가 집으로 돌아가 따로 떼어둔 담배 한개비 순구와 나눠 핀다.

 

o 방란장 주인

변변한 집기도 없는 다방 방장장은 개업 첫 달에는 손님이 많았지만 다음달부터 손님은 줄어들고 이년여 경영하는 동안 빚만 쌓인다. 화가인 주인장은 미사에라는 점원을 쓰고 있는데, 그녀는 월급이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일과 가게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주인이 미안한 마음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주려 하면 도리어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여 쫓겨나나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였다.

주인은 수경 선생의 처지를 부러워하며 그를 방문하였는데, 실상 수경선생은 부인의 히스테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떠나는 주인은 문득 고독을 느낀다.

 

o 성탄제

영이와 순이 형제는 사이가 좋지 못하다. 순이는 카페 여급인 영이를 불쾌해 했으며 몸까지 파는 것을 비난하였다. 한편 영이는 순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가족들이 밥술이나 뜨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희생 덕분이며, 몸까지 파는 것을 모르는 척 하는 집안이 미웠다. 영이가 손님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카페에 나가지 않자 집안의 벌이가 끊긴다. 급기야 순이 역시 여급이 되자 영이는 순이를 한껏 비웃어 주고 싶다. 하지만 순이가 몸을 파는 날 방을 비우고 다른 방에 누운 영이의 눈에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o 최노인전 초록

최노인은 매약행상을 삼십여년 다닌 이다. 그는 본래 관비 유학생으로 동경에 유학하였으나 학업을 중도 작파하고 이런 저런 보잘것없는 일을 하다가 딸과 사이가 틀어진 후 결국 매약행상으로 낙착된 이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탄하며 얼른 죽어야 겠다고 하면서도 실은 윤치호 옹의 영구를 자신이 따라나설 것이라는 말을 자꾸 하며 내심 유치호 옹보다는 오래 살 것을 궁리하는 것 같다.

 

o 춘보

어느 날 임신한 아내가 모시조개를 넣은 냉이국을 먹고 싶다고 한다. 춘보는 모시조개를 사겠다고 벼르지만 벌이가 없어 겨우 쌀말이나 사댈 뿐이고, 몸까지 다쳐 며칠 벌이마저 끊기고 만다. 게다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궐 밑의 집들을 죄다 헐어낼 계획이라는 말까지 돌자 더욱 불안을 느낀다. 씨름씨름 앓고 있는 그에게 아는 이가 미장이 일을 따라 나서겠냐고 권하자 춘보는 몸은 고될 망정 안정적인 벌이가 낫겠다 싶어 그러기로 작정한다.

아내는 맹서방이 관을 욕했다가 잡혀간 이야기를 하며 춘보에게 술을 과하게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나 춘보 역시 술에 취해 관을 탓하는 말을 했다가 잡혀가고 만다. 포청으로 끌려가 간 속에 갖힌 춘보는 잠이 들었다가 자신을 흔드는 기색에 잠을 깨니 꿈이었다. 미장이 일을 나가면서 춘보는 딸아이에게 산에 가서 냉이를 많이 해오라고 일러둔다. 오늘은 기어코 모시조개를 사올 결심인 것이다.

 

최혜실의 해설이 정갈하여 여기 발췌해 둔다.

 

모더니즘은 원래 현실을 추상화한다는 개념에서 나왔으나 현대에 이르러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대체로 리얼리즘 문학은 현실 세계를 재현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모더니즘 문학은 인간의 정서를 중시 여기면서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나 덧붙이면 모더니즘은 근대 산업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바, 현대 사회는 기술과 산업의 복합체로 개인은 사회를 파악하지 못하고 낯설게 느낀다. 이에 작품에 나타나는 사회는 추상적이며 등장인물들은 상실감과 소외감을 드러낸다.

이런 징후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는 것이 도시와 군중의 관계이고,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잘 포착하고 있다. 경성은 1930년대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이는 한국인들의 생활 방식과 수준을 무시한채 진행된 것이었다. 지식인의 실업률이 심각하였고, 그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전반에는 '행복'과 '고독'이라는 두 대립축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바, 도시 생활에 열중하는 평범한 군중들의 의식이 '행복'인 반면 식민지 지식인인 자신은 '고독'으로 대비된다. 하지만 '행복'은 산업 발전이 가져다 준 제도적 운용 방법을 배움으로써 생활의 안정을 누리고 있으나, 그 제도 속에 빠져 진실한 의미와 모순을 자각하지 못하고 폐쇄성 속에 빠져버린 평균인에 불과한 행복이다.

한편 경성역은 근대화와 식민 통치의 양면적 의미를 띠고 있는 곳으로, 이곳은 물자와 문명이 들어오는 통로이자 몰락한 농민과 도시 실업자들의 집합소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구보는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이중적 위치를 잘 드러내고 있는 룸펜 인텔리겐차이다. 이런 유형의 지식인상은 <딱한 사람들>에서 순구와 진수로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방란장 주인>은 일종의 예술가 소설로 구인회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모델소설이며, 소설 전체가 쉼표만 사용 한 문장으로 처리되는 모더니즘적 실험이 드러나 있다.(방란장 주인의 모델은 소설가 이상이다) <성탄제>는 생활고로 자매가 여급으로 전락하는 비극을 그린 소설인데, 박태원은 여급의 문제를 다룬 소설을 많이 발표했다. 한편, <최노인전 초록>은 훗날의 역사소설의 싹이 보이는 작품이고, <춘보>는 비록 단편이나마 그의 후기 역사소설의 출발점이 된다.

박태원은 일제 말기 친일 행위에 가담한 적이 있었으나 해방 이후에는 좌익 활동으로 돌아 선다. 이는 그가 친일 행위에 어쩔 수 없이 가담하였다는 정황과,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을 하던 대다수가 좌익 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에 참가하였고 친구 이태준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는 데서 원인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후 그는 리얼리즘 쪽으로 창작 방법을 변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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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감사가 끝나고 본감사가 이번 주 월요일 시작되었다. 감사가 시작되니 요청하는 자료의 양도 많아졌고,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책을 읽을 경황을 만드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일제 강점기 소설을 읽다 보면 당시의 엘리트들이 얼마만큼 비상한 인물들이었는가 감탄하는 경우가 많다. 박태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에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일정한 주기로 리메이크 되며 현 세태를 반영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과연 박태원의 소설을 읽고 보니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내가 읽었던 버전은 최인훈의 것이었고, 박태원은 오히려 나중에 읽게 되었는데 읽던 중 구보가 친구와 더불어 <율리시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과연 당시에 번역은 누가 했을 것인가, 번역이 아니라면 원전을 읽었을까 여러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율리시즈>에 도전했다가, 그 난해함에 두 손을 들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6228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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