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o 개똥벌레

14,5년 전 나는 극우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정체 불명의 재단법인에 의해 운영되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기숙사의 하루는 나카노 학교 출신이라는 소문의 기숙사 관장과 그의 조수 노릇을 하는 학생의 장엄한 국기 게양과 함께 시작된다. 룸메이트는 국토지리원에 들어가 지도를 만들고 싶어하고 병적일 정도로 청결한 것을 좋아했다. 룸메이트는 아침마다 6시에 일어나 라디오에 맞춰 체조를 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와, 친구의 여자친구까지 세 명이서 함께 만나곤 했다. 어느 날 친구와 네 게임쯤 당구를 쳤는데, 그날 밤 친구는 N360의 배기 파이프에 고무 호스를 연결해 자살한다. 유서도 없고 짐작 가는 동기도 없었다. '나'는 '죽음은 생의 대극(對極)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고 생각한다.

그 후 가끔 친구의 여자친구와 만나 데이트를 했다. 열 여덟이 지나고 열 아홉이 되었고, 2학년이 된다. 6월에 그녀가 스무 살이 되는 생일 날 그녀가 토하는 것 같은 자세로 울었고, 그날 밤 나는 그녀와 잤다. 그후 그녀에게서는 전화가 걸려 오지 않았고 7월 초에 짧은 편지가 온다. 그녀는 휴학 후 교토의 요양소에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편지를 몇 백번이나 읽었지만 읽을 때 마다 슬퍼졌다.

그 달이 끝날 무렵, 룸메이트가 인스턴트 커피병에 넣은 개똥벌레를 준다. 옥상으로 올라가 병 뚜껑을 열고 개똥벌레를 꺼내 놓고 한참을 기다리니 개똥벌레는 뭔가 생각해낸 듯이 갑자기 날개를 펴더니, 어둠 사이로 떠올랐다. 나는 개똥벌레가 사라진 어둠 속에 살며시 손을 뻗쳐보지만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고, 그 가느다란 빛은 언제나 손가락 조금 앞에 있었다.

 

o 헛간을 태우다

그녀는 팬터마임 공부를 하는 한편, 생계를 위해 모델일을 한다. 그녀는 '귤 껍질 까기'와 같은 팬터마임을 능숙하게 했는데, '거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된다'고 한다. 그녀가 북아프리카로 훌쩍 떠났다가 남자친구와 함께 돌아온다. 그녀는 나에게 남자친구를 소개시켜 주는데, 그는 헛간을 태우곤 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헛간들이 모두 그가 태워주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 끝에, 내가 살고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헛간을 곧 태우기로 했다고 말한다.

동네 지도를 사서 그가 태우고 싶어질만한 헛간을 표시하고, 표시된 헛간을 조깅하면서 관찰하지만 헛간은 언제까지고 그대로였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그를 우연히 만나, 헛간에 대해서 묻자 그는 이미 헛간을 태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도 매일 아침 후보지가 될 헛간 앞을 달리고 있고, 가끔 불에 타 허물어져 가는 헛간을 생각한다.

 

o 춤추는 난쟁이

꿈 속에서 나는 난쟁이를 만난다. 난쟁이는 북쪽 나라에서 왔는데 춤을 추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그와 함께 살면서 춤을 추는 것은 누구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한다.

춤추는 난쟁이에 대해서 노인에게 물어보자 춤추는 난쟁이는 혁명 전까지만 해도 매일 술집에서 춤을 추었다고 한다. 난쟁이는 황제 앞에서 춤을 추었고 좋은 대접을 받았는데, 혁명이 일어나자 난쟁이는 사라져버렸고 혁명군은 난쟁이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소문이 있었지만 정확한 것은 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코끼리 만드는 공장으로 간다. 코끼리는 좀처럼 새끼를 낳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코끼리를 잡아다가 1/5은 진짜이고 나머지 4/5는 가짜인 코끼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코끼리 자신조차 자신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다른 파트에서 일하는 예쁜 아가씨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아가씨는 거절했고, 난쟁이는 자신이 나의 몸에 들어와 춤을 춘다면 아가씨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한다. 둘은 계약을 맺는데 아가씨의 마음을 얻을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면 난쟁이가 몸 밖으로 나가지만, 한 마디라도 내뱉는다면 내 몸을 난쟁이가 갖는다는 것이었다. 난쟁이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은 나는 한 마디도 내뱉지 않는다. 하지만 난쟁이는 이걸로 끝이 아니고 언젠가는 내가 패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경찰관들에게 쫓기고 있고, 난쟁이는 매일 밤 꿈속에서 내 몸을 준다면 경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제안하곤 한다.

 

o 세 가지의 독일 환상

- 겨울 박물관으로서의 포르노그라피

착각이 아니라면 나는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하기로 정해진 일들을 별다른 노력 없이 해내고, 관장의 지시사항이 쓰여진 편지대로 일을 마치고 나면 섹스가 밀물처럼 박물관 문을 두들긴다. 나는 섹스를 생각하면 언제나 겨울 박물관에 있으며, 우리는 모두 그곳에 고아처럼 웅크리고 앉아 온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 헤르만 괴링 요새 1983

점심 때 텔레비전 탑 근처의 카페테리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나이가 나에게 헤르만 괴링의 요새에 관해서 설명해 준다. 동독 체제 비자가 12시에 끊기기 때문에 나는 S반 역으로 돌아가야 했고, 청년은 SS와 러시아군 탱크의 잔해를 보여주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나는 혼자 역으로 걸어가면서 1945년 봄에 헤르만 괴링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상상해본다.

- 헤르 W의 공중 정원

헤르 W의 공중정원은 세로 8미터, 가로 5미터 정도로 지상에서 15센티미터쯤 떠 있는 3류급 정원이었다. 그는 공중 정원을 더 높이 올린다면 동독 쪽 경비병들이 몹시 과민반응을 보일 것이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길 생각은 없다. 왜냐면 친구들도 그곳 크로이츠베르크에 살고 있고 제일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름에 또 오라며 나를 초대하고, 공중정원은 여전히 그곳에 15센티미터만 떠 있다. 

 

<개똥벌레>는 <노르웨이의 숲>의 단편 버전이라 할 정도로 하루키의 장편과 단편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루키는 장편을 쓰고 나면 막연한 후회가 남아 그것으로 단편을 정리해서 쓰고, 단편을 몇 개 정리해서 쓰고 나면 그것은 그것대로 안타까워서 장편에 착수하는 패턴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한다. <헛간을 태우다>는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 작품이었다. 나와 헛간을 태우는 그, 그리고 팬터마임을 하는 그녀가 서로 성긴 느낌이다. <춤추는 난쟁이>는 <1984년>이나 <브라질>의 느낌이 나는 단편이다. 황제도, 혁명군도 아닌 미지의 난쟁이와의 관계는 전공투와 우익 모두를 외면한 하루키의 반영 같다는 느낌이 든다.

1982년에서 1984년 단편들로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의 긴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최근 <반딧불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온 것으로 아는데 내가 읽은 것은 <개똥벌레>라는 제목의 개정 전 판본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448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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