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구) 문지 스펙트럼 28
왕멍 지음, 이욱연.유경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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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견고한 죽

4대가 모여사는 집에서 식사를 담당한 것은 쉬 누이이고 아침은 언제나 죽과 짠지가 나온다. 고기를 채로 썰지 덩어리로 썰지, 탕을 끓일지 말지는 할아버지에게 물어서 결정하는데 그 결과에 모두들 대만족이다.

그러던 어느날 정부에서 낮잠 자는 것을 폐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갖가지 개혁 개선이 시작되자 죽과 짠지를 먹는 집안의 식단에도 개선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분위기가 생겨난다. 막내 아들과 같이 햄과 버터를 주장하는 서구파에서부터 민주를 주장하지만 현실과는 유리된 민주파, 기존 죽과 짠지를 주장하는 보수파까지 이전투구를 거듭하나 혼동만 발생했을 뿐이고 결국 모두 죽과 짠지를 다시 먹게 된다.

 

o 밤의 눈

천따이는 문화대혁명시기에 우파로 지목되어 시골로 내려가 생활하는 작가이다. 베이징에 좌담회에 참석을 위해 온 천따이는 친한 지도자 동지가 부탁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베이징에 있는 당 간부의 집을 찾아간다. 당 간부는 휴양 중이고 당 간부의 아들은 천따이에게 거만한 태도로 뇌물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목적을 이루지 못한 천따이는 야간 작업을 나가는 노동자들이 탄 버스에 오른다.

 

o 나비

젊은 시절 당의 간부였던 장쓰위엔에게 하이윈이라는 열여섯 먹은 미션 스쿨 학생자치회 회장이 연설을 부탁한다. 서로 사랑에 빠진 둘은 장쓰위엔이 서른, 하이윈이 열여덟인 나이에 결혼한다. 하이윈은 고등학교 졸업을 포기하였고 1950년에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하지만 조선에서 전쟁이 발생하고 여러 중요한 일이 겹쳐 집안을 돌보지 못하는 사이 아이가 아파서 죽고 만다.

서먹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장쓰위엔은 하이윈을 대학에 보내고 다시 아이가 생긴다. 아이의 이름은 똥똥(冬冬)이라 짓는다. 하지만 하이윈은 대학으로 되돌아가길 원하고 그곳에서 불미스런 소문이 들려온다. 그녀가 같은 반 남학생과 좋아지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이윈이 1957년의 반우파투쟁에서 적발당하자 장쓰위엔은 그녀에게 '이렇게 까지 타락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공적인 입장으로 대하고, 하이윈은 이혼하자고 제안한다.

하이윈과 이혼한 후 메이란이란 여성과 재혼하지만 그녀에게 장쓰위엔은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메이란은 합리적인 행동만 할 뿐이다. 반우파 투쟁에 앞장 서던 장쓰위엔은 어느 날 자신이 우파로 몰려 홍위병들에게 붙들려 대중들 앞에 돌림을 당하고 자신의 아들 똥똥에게 따귀를 맞는다. 메이란은 가산을 챙겨 이혼 수속을 밟는다.

장쓰위엔은 이후 똥똥이 내려가 살고 있는 산촌으로 가서 생활한다. 정식으로 재판을 받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월급은 여전히 많이 받고 있었지만, 정식 직위는 없는 상태에서 당비를 납입하며 산촌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그리고 그곳에서 40세의 의사 치우원을 만난다. 그녀의 남편은 우파로 몰려 노동개조소에서 일하고 있다. 똥똥과의 의견 차는 여전하고 서먹서먹하다.

어느 날 자동차가 그의 집으로 와서 복직되었음을 알려준다. 9년만에 복직된 그는 부부장의 자리에까지 다시 오른다. 그리고 2년만에 산촌으로 되돌아가는 여행을 한다. 비서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과 같이 험난한 여행을 하여 도착한 산촌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허물없이 대한다. 똥똥과의 대화, 치우원과의 대화를 통해 장쓰위엔은 자신의 생각이 여전히 수정되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임무는 완수했느냐는 부장의 물음에 "거의, 거의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내일은 이전보다 더 바빠질 것임을 느낀다.

 

1934년 베이징 출신의 왕멍은 어린 시절부터 지하 당 조직의 혁명 교육을 받고 14세에 공산당에 가입, 19세에 처녀작 <청춘만세>를 발표한다. 1956년에 <조직부에 새로 온 청년>을 발표하는데 이 소설은 조직부에 새로 파견된 청년이 관료주의에 물든 조직부 간부와 갈등을 빚는다는 내용으로 1957년 반우파투쟁에서 우파로 몰리는 계기가 된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1979년 복권되기까지 그는 베신장과 베이징 인근 농촌에서 노동개조를 받는다.

그는 "혁명에 충성을 바치려면 문학을 배반해야 한다. 그런데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을 하자면 혁명 진영 입장에서는 수치스러운 배반자가 된다"라는 언급을 하며 정치가이자 작가인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언급했다. 왕멍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을 지내고 중국 정부 문화부 장관을 지내다가 1989년 천안문 사태 발생 후 장관직에서 물러난다. 당시 장관 등 고위 인사들이 천안문 시위 진압을 위해 동원된 군부대를 위문하기로 했었는데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80년대 중국이 처한 현실을 죽과 짠지를 먹는 식습관 개선에 빗대 코믹한 필치로 그린 <견고한 죽>에 나타난 문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문체이다. 웃어가면서 읽었다.

자전적 내용을 통해 원래 순수하고 헌신적이었던 혁명 전사들이 정권에 참여하여 관료와 간부로 변신한 뒤 "이기적이며 냉혹하고 자아도취에 빠진 존재"로 변하는 현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밤의 눈>과 <나비>는 대학 때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아직 있다면)에게 권해주고 싶은 소설이었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5228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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