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깊이에의 강요>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젊은 여인이 평론가로부터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가는 신문에 실리고 사람들은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론가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화가 스스로도 자신에게 '깊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그녀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 좌절감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던 그녀는 결국 자살하고 평론가는 그녀의 그림에서 '깊이에의 강요'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처음과는 정반대의 평가를 내린다.

 

예술작품의 주체인 예술가와 이를 수용하는 객체인 독자, 혹은 관람자 사이에 평론가가 있다. 예술가와 관람자 사이에 존재하는 평론가가 수용자에게 불필요한 잣대, 혹은 자신만의 색안경을 들이밀 때 주체와 수용자의 관계에 왜곡이 일어난다.

 

<승부>

8월 어느 날 초저녁, 룩상부르 공원에서 체스 게임이 벌어진다. 한 사람은 동네에서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70대의 왜소한 남자 장, 도전자는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젊고 매력적이며 시니컬한 표정의 젊은이이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젊은이가 장을 꺾어주길 바라고, 이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젊은이의 한 수 한 수는 파격적이기만 하다. 젊은이가 자신의 말들을 희생시키며 두는 수들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환호한다. 장 역시 젊은이와의 승부에 점점 압박감을 느끼고 더욱 신중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젊은이는 자신의 킹을 스스로 쓰러뜨림으로서 패배를 자인한다. 누군가는 젊은이에게 '자네는 지지 않았어'라고 얘기하기까지 한다. 장은 어쩐지 자신이 혐오스러운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며 두번 다시 체스를 두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체스에 미숙했고, 그래서 격식에 맞지 않는 수를 두었을지도 모를 젊은이에게 환호하는 군중들은 자신들이 장과의 승부에 이길 능력은 없지만, 젊은이를 엉뚱한 우상으로 만들어 그의 행동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여 해석한다. 심지어 헛된 바램이 깨어진 순간 조차 젊은이의 행동에 또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그가 승리자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한다. 어쩌면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보수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단편이었다.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

18세기 금세공 장인인 뮈사르가 책과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될 무렵, 우연히 세상이 조개껍질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계속 연구를 계속한 그는 세상이 점차 석회화 하여 조개껍질처럼 변하고 있고 심지어 사람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조개껍질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빗물을 마셔가며 석회화를 늦추고자 하나, 비밀을 알아챈 뮈사르는 다른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석회화 과정을 거쳐 결국 사망하고 만다.

 

세계가 돌조개로 점점 들어차 결국 석회화 되고 말 운명이고, 마찬가지로 유연하게 행동하고 사고하던 어린아이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딱딱한 돌조개와 같이 몸도 마음도 굳어가 결국 사망한다는 독특한 설정의 소설이다.

 

<문학적 건망증>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에세이로 과연 문학을 읽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책들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하더라도 수년이 흐르면 책의 내용은 물론, 그때 받았던 인상마저 잊어버릴 것이 자명한데 문학을 계속 읽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한다.

어쩌면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어쨌든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483452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