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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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근'이라는 이름을 가진 화자가 초등학교 시절 미군기지 캠프 세네카 주변으로 이사 와서 마흔이 넘어 그곳을 떠날 때까지를 술회하는 내용이다. 화자가 커나감에 따라 마을을 바라보는 어투와 안목이 바뀌는 점이 특이하다.

화자는 '재근'이지만,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화자의 아버지이다. 화자의 아버지는 재주가 많은 인물로 6.25 전쟁 전에는 남로당 활동을 했고 전쟁이 터진 후에는 한동안 인민군 지원 활동을 했다. 국군이 마을로 오자 한동안 부역자로 도피활동을 하였고, 이 와중에 고향에 두고온 부모님과 큰아들이 우익쪽 인물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부역 혐의를 벗기 위해 이번엔 국군 편에서 참전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부대에서 일을 한다. 

캠프 세네카가 들어서자 미군이 들어오기 전에 부대 앞에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약종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마을은 아무런 행정적 혜택을 받지 못했고 아버지는 마을에 학교와 보건소, 파출소 등이 들어올 수 있도록 애를 쓴다. 이 과정에서 미군 부대가 많은 도움을 주고 초등학교와 고아원은 미군 부대의 장비와 건축자재로 준공이 되어 미군부대장 이름을 세긴 기념비가 건립되기도 한다. 또 아버지는 국회의원과 관(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여당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생계를 미군이 오로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미군이 오래도록 주둔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마을이 제 꼴을 갖춰갈 무렵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 영향으로 미군은 캠프 세네카를 떠난다. 미군이 떠나자 주민들도 차츰 마을을 떠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는 과거사를 재근에게 유언하듯 말하고, 화자는 당숙을 찾아간다. 그리고 당숙으로부터 6.25전쟁 당시 좌와 우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들으며 자신이 이해하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역사의 이면을 알게 된다.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유추해 볼 수가 있다.

 

하나는 미군부대장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 공적비 이야기이다. 소설의 말미에 전교조 소속의 초등학교 교사가 초등학교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를 뽑아내는 대목이 나온다. 화자가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은 미군 부대장을 찾아가 초등학교 건립에 도움을 주길 청하고, 부대장은 인도적 차원에서 미군의 물자들을 지원하여 초등학교가 건립된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부대장의 이름을 기념비에 세겨 넣고 미군 부대장은 무척 감격한다. 하지만 전교조 소속 교사는 학교가 외국인의 도움을 받아 지어졌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자주독립 정신을 배우기는 커녕 사대주의 정신을 배우게 될 것이며 '아, 미국 사람들은 우리를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이구나'하고 생각할 것이 소름끼친다고 말한다. 화자는 무언가 반박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입에서 나온 말은 '공적비가 우리 마을 사람들의 것이고 선생님의 것이 아니다'라는 엉뚱한 말이었다.

 

다른 하나는 화자 아버지의 행적과 당숙의 이야기이다. 화자의 아버지는 남로당과 인민군 활동을 했는가 하면 국군 편에서 참전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기지촌 부근에서 미군들의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얻어 생계를 꾸리고, 여당 활동을 하기까지 한다. 또한 당숙은 우익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당숙모는 여맹활동을 한 죄목으로 잡혀들어가 있다.

 

먼저 공적비에서 화자가 발언한 '우리 마을 사람들의 것'과 '선생님의 것' 사이의 차이가 의미심장하다. 화자는 엉뚱한 말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엉뚱한 것 만은 아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의 것'이라는 의미 속에는 전쟁 후에 아이들을 키우고 살아가기 위해 미군의 도움을 받은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으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부대 물자와 인력을 내어준 미군부대장에 대한 고마움도 거짓이 아니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상황과 생활과 더 나아가서는 마을 사람들의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반면에 '선생님의 것' 은 바로 전교조 교사의 관념 속 개념을 말한다. 전교조 교사가 보기에 미군은 미제국주의의 첨병이며 미제국주의자가 6.25 전쟁의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적비는 나쁜 것이라고 관념속에서 결론 짓는다. 따라서 선생은 공적비를 '그릇된 물건' 치우는 차원에서 버린 것이다. 하지만 화자와 마을사람들에게 있어 공적비는 그들의 삶과 역사가 담겨있기에 '미군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 이상인 것이다.

 

다음으로 아버지와 당숙의 진술 부분이다. 아버지와 당숙의 진술에 따르면 좌익활동도, 우익활동도 시대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했던 측면이 있다. 소설에서는 기지촌 색시들에 대해 '너희들이 기지촌 색시들을 뭐라고 하지만 색시들이 있기 때문에 너희 아내와 딸들이 강간당하지 않고 맘 편이 살 수 있는 것을 왜 모르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엥겔스가 공창제도가 부르주아 가족 제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결국 전쟁중 좌우 이념 대립과 그후 정치권의 부정부패 속에서 아버지의 삶의 행적이 일관성 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관념 만으로 옳다 그르다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94년에 이 소설이 나왔을 때에 한총련 주류들이 대단히 불쾌해 했던 이유는 자명하다.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미군부대장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고마움, 미군이 더 머물러 준다면 생활이 생활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진술 등은 대단히 불편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당숙의 진술이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매우 특수한 경우라면 그들의 불편함에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술이 우리 역사 속에서 오히려 보편적인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복거일의 보수적인 견해(그는 자유 민주주의의 신봉자인 듯 하다)가 내 견해와 다르다는 점은 별도로,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은 그 자체로 고민할 거리를 안겨 준다. 같은 맥락에서 '홍위군 운운'의 이문열과는 또 다른 느낌의 보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5760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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