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탑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
P.D. 제임스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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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서 이제 회복된 달글리시 경감이 옛 친구인 배들리 신부로부터 직업상 도움을 구하는 편지를 한 통 받는다. 신부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에 찾아갔지만 이미 신부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였다.

신부가 기거하고 있는 요양원의 책임자는 윌프래드 앤스티라는 사람으로 몸이 경직되는 병에 걸렸다가 루르드에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기적적으로 몸이 회복된 인물이다. 이후 그는 요양원을 건설하여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을 돌보며 매년 두 차례 루르드 성지순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정상태가 악화되어 요양원을 신탁회사에 넘기거나 매각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다. 요양원은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과거가 석연치 않은 종사원들이 고용되어 있는데, 의사 에릭 휴슨은 과거 16세의 여환자와 문제가 있어 협회에서 제명당한 적이 있는 인물이며, 그의 아내 매기는 요양원 생활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알콜 중독자이다. 한편 간호사 헬렌 레이너는 의사와 불륜관계이며, 간호부장 도트 목슨 역시 과거 환자를 학대한 이유로 병원에서 해고된 전력이 있고, 잡역부 필비는 전과자이다.

신부의 방을 조사하던 달글리시는 신부가 죽었을 당시에 영대를 두르고 있었다는 점(고해가 끝나면 영대를 벗는다), 책상의 시건장치가 파손되고 최근 일기가 없다는 점, 그리고 추악한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다는 점 등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신부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신부가 죽기 얼마 전, 빅터 홀로이드라는 환자 하나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데 이 사건 역시 전직 외교관인 줄리어스 코트가 남자 간호사인 데니스 러너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고 있어 자살로 결말이 나고 만다.

그후로도 요양원장인 앤스티가 검은탑에서 불에 타 죽을 뻔 하고, 환자 그레이스 윌슨이 사망하며 의사의 아내 매기가 자살한다. 어느것 하나 증거가 없고,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달글리시는 방관자적 태도와 직업적인 신념 사이에서 방황한다.

유산으로 받은 신부의 장서를 꾸려 집으로 돌아가려던 달글리시는 뒤늦게 신부에게 도착한 편지를 통해 신부가 자신과 상담하고자 했던 일이 범죄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음을 알게 되나, 신문에서 우연히 후원자 명부를 잃어버렸다는 앤스티의 광고에서 그레이스 윌슨의 사망 원인을 알아차리게 된다. 명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레이스 윌슨 뿐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헤로인 제조에 요양원의 생산시설을 이용하고 접선 루트로 루르드 성지순례를 이용하려 했던 줄리어스 코트와 그의 종범 데니스 러너의 소행으로 밝혀지고 달글리시는 다시금 자신의 직업으로 되돌아오지만, 헤로인 밀매와 범죄를 연결짓는 추리의 끈이 너무 허술해 아쉬움이 남는다.

 

1972년 작인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를 지난해 여름에 읽었는데 추리소설의 명쾌함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추천할 만한 책이 아니다. 주인공 코델리아는 탐정사무소를 물려받아 이제 막 일을 시작했을 뿐이고, 신출내기가 겪게 마련인 감정의 동요와 불안함을 작가는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추리 과정도 대단원을 향해 명쾌하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동업자의 자살과 그로테스크하고 도착적인 방식으로 죽은 사체 등이 다른 추리소설과 달리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제목 역시 원제인 An Unsuitable Job For A Woman를 직역하자면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정도가 될테니, 애초에 타고난 탐정의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었던 듯 하다.

지난해 여름 송도쪽의 지하철 역사 안팎에서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를 읽었을 때의 한가했던 기분을 맛보고 싶어, 1975년에 발표된 <검은탑>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분위기는 비슷하다. 400페이지에 걸쳐 작가가 집중하는 것은, 역시나 추리보다는 인간의 양면성 혹은 인간의 어두운 면이다. 예를 들어 요양원장 앤스티는 자신의 재산을 희생해 요양원을 운영하긴 하지만 자신의 침실은 쾌적하고 안락하게 꾸미는가 하면 도색잡지의 콜렉션을 가지고 있고, 환자인 에슐리 홀리스 역시 자신의 불치병으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가엾은 여자이나 남편의 미래를 빌어주기 보단 자신을 남편이 다시 받아들여 살아야 한다고 믿는 약간의 이기적인 면도 있다. 탐정 역시 날카로운 추리와 정의에 대한 신념을 가진 전형에서 벗어나 삶의 어두운 면에 괴로워하고 현재의 일에 회의를 품곤 한다. 책 말미의 역자 후기에서도 그녀가 자부심을 가지고 써내려가는 것은 '철저히 훈련받은 전문경찰관의 수완과 완전한 아마추어의 순수한 노력'을 중심으로 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본격문학으로의 미스터리라고 하니,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을 그녀의 작품에서 기대했다가는 대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555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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