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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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낮과 밤, 아침과 저녁 해서 넉넉하게 스물네 시간이나 되는 하루가 다 가도록 아파서 죽거나, 자동차 사고로 죽거나 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문득 깨닫는다. 그 다음 날이 되어도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죽음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능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듯 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것이 축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오래지 않은 시점이었다.

곳곳에서 정체와 혼란이 시작되었다. 먼저 병원과 요양원의 방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장례업계는 당장 할 일이 없어졌다. 종교계 역시 당혹스러워했다.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는 것이고, 부활이 없으면 그 종교의 근간도 부정될 수밖에 없었다. 보험업계와 가입자도 곤란해졌다. 결코 죽지 않는다면 생명보험에 계속 돈을 지불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죽어가긴 하지만 죽지 않는 사람들이 차곡차곡 한 켠에 쌓이면, 연금도 고갈될 터였다.  

그 때 누군가가 국경 밖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데리고 나가면서 해결의 물꼬가 트인다. 국경을 나가는 즉시 죽음이 찾아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국경 밖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고, 이웃 국가들은 격렬히 항의했다. 마피아는 돈 냄새를 맡고 '죽어가는 사람 실어 나르기'를 독점적인 사업 영역으로 삼기 위해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죽음'이 방송국 사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보라색 편지에는 '죽음'이 일시 일을 멈췄었다는 것, 이제 다시 '죽음'을 가동시킬 것이라는 것, 대신 일주일 전에 통보해주겠다는 것 등이 쓰여 있었다. 보라색 편지는 우편배달부의 손을 거쳐 사람들에게 배달되었다. 사람들은 죽음을 예고하는 편지를 받고 불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음에게 편지 하나가 반송되어 되돌아오는 사건이 일어난다. 죽음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다시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편지는 되풀이하여 돌아왔다. 죽음은 편지 수신인에게 흥미를 느낀다. 그는 그저 그런 첼리스트였다. 죽음은 그를 스토킹하고, 그를 분석했다. 하지만 왜 그에게 죽음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죽음은 뼈만 앙상히 남은 자신의 모습을 살로 감싸 여자의 모습으로 변화시킨 후 남자 곁에 나타난다. 죽음은 남자에게 연주를 부탁한다. 연주를 끝낸 첼리스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이 그렇게 훌륭한 연주를 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여자를 바래다 주겠다고 했지만 죽음은 거절하고 남자와 몸을 섞는다. 남자가 잠든 후 죽음은 보라색 편지를 태워 없앤다. 죽음은 침대로 돌아가 두 팔로 남자를 안았다. 한 번도 잠을 잔 적이 없는 죽음은 잠이 자신의 눈까풀을 살며시 닫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의 눈이 멀고, 또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이 눈을 뜬 것처럼, 이번 <죽음의 중지>에서는 이유 없이 죽음이 사라졌다가, 별다른 개연성 없이 다시 나타난다. 


작가는 비트겐슈타인의 다음과 같은 말을 권두에 인용해 놓았다.


예를 들어 죽음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라.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언어적 영역과 마주치지 않는다면 정말 이상한 일일 것이다. 


죽음이란 존재의 종말이다. 존재의 종말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유전자의 명령대로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잉태하고 낳아서 기르지만, 어쨌든 개체의 소멸은 부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개체의 소멸은 그 자체로 존재의 無化로서, 알 수 없으므로 공포스럽고, 설명할 수 없으므로 절망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체의 죽음을 사회의 죽음으로 확장시킬 때, 죽음은 다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개체의 죽음이야 말로 사회의 영속성을 담보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의지했던 종교가 사실은 죽음을 전제로 구축된 불완전한 건축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죽음과 관련한 끊임없는 변증법적 아이러니가 반복되며 삶이 무엇인가 하는 역설적 의문이 솟아난다. 


무료한 토요일 당직을 이 책 덕분에 잘 넘겼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38872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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